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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에세이·최성주> 스탈린의 악행, 후손들 반면교사 삼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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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에세이·최성주> 스탈린의 악행, 후손들 반면교사 삼아야

최성주 고려대학교 특임교수·전 주 폴란드 대사
37)스탈린과 대한민국·폴란드

게재 2021-08-16 14:04:34
최성주 고려대학교 특임교수·전 주 폴란드 대사
최성주 고려대학교 특임교수·전 주 폴란드 대사

20세기 들어 인류에게 가장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2명의 독재자는 스탈린과 히틀러다. 공산독재의 화신인 스탈린의 '스탈'은 러시아어로 '강철'을 뜻한다. 스탈린 집권 시절, 한인(고려인)에 대한 강제이주 조치는 엄청난 희생과 고통을 초래했다. 스탈린은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국제질서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동유럽은 물론 한반도 운명에도 깊숙이 관여한다. 1945년 2월 얄타회담에서 소련의 극동 참전이 결정되며 결국 한반도의 분단으로 이어진다. 미국 원자폭탄 공격을 받은 일본이 8월15일 항복하기 불과 1주일 전 소련은 대일 선전포고를 한다. 스탈린은 북한의 김일성이 1950년 한국전쟁을 일으키도록 승인하면서 각종 무기를 대규모로 지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78년 흑해 연안의 조지아에서 출생한 스탈린은 어머니를 무자비 하게 폭행하는 아버지 밑에서 성장한다. 이는 어린 스탈린에게 정서적 불안감을 준다. 당시는 제정(帝政) 러시아 말기였는데 1904년 러일 전쟁의 패배로 러시아의 국내외적 입지는 더욱 취약해진다. 청년 스탈린은 공산주의자로서 본격적인 대정부 투쟁을 벌인다. 볼셰비키의 지도자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권위를 위협하는 경쟁자를 철저히 응징하고 제거한다. 1917년 11월 공산혁명 당시 스탈린의 위상은 경쟁자 트로츠키보다 못했다. 그럼에도 트로츠키는 스탈린의 도발적인 적개심으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느낀 나머지 1937년 멕시코로 망명한다. 그러나 그는 스탈린이 보낸 자객에 의해 1940년 손도끼로 암살된다. 필자는 멕시코에서 근무할 당시 트로츠키가 살해된 코요아칸 소재 주택을 방문, 당시의 손도끼를 본 적이 있다. 스탈린은 자신의 권력을 안정화하기 위해 대대적인 숙청과 처형을 자행했다. 1937-38년 악명 높은 '대숙청 사건'을 일으켜 반대파 및 지주와 지식층 등 수 백만 명을 학살한 바 있다.

일제의 핍박을 피해 소련 극동지역에서 생활하던 한인들은 1937년 스탈린의 지령에 따라 카자흐스탄 및 우즈베키스탄 등지로 강제로 이주된다. 극동지역을 무대로 하는 일본의 간첩 활동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일본이 1931년 만주를 장악하고 1937년 중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자 러시아는 극동지역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느낀다. 갑작스런 이주 결정으로 17만 명이 넘는 한인들은 강제로 기차에 태워져 '듣도 보도 못한' 중앙아시아로 옮겨진다. 이들의 초기정착 과정은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 그 자체였다. 중앙아시아에 도착한 한인들은 영하 40도에 달하는 혹독한 겨울추위를 급조한 땅굴 속에서 버텨낸다. 한민족의 저력은 이러한 극한상황 속에서도 2세교육을 위한 학교부터 설립한 데서 나타난다. 불모지에서 벼농사를 시작해 대규모 농장으로 확대, 발전시킨다. 의병장 출신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도 1937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된 후 1943년에 그곳에서 사망한다.

마침 올 광복절에 장군의 유해가 본국으로 봉환돼 다행스럽다.

필자는 수년 전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출장 시, 전통시장과 길거리 곳곳에서 마주친 한인 후손들과 인사를 나눈 적이 있다. 그런데, 스탈린의 반(反)인도죄를 거론하면서 그가 폴란드에 저지른 악행을 함께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1917년 공산혁명 이후 러시아(소련)는 1919년-1921년 간의 내전기에 폴란드를 공격하지만 바르샤바 점령 직전에 패배한다. 서유럽에 공산주의 혁명을 수출하려던 소련의 붉은 야심이 좌절된다. 당시의 패전상황을 기억하고 있던 스탈린은 2차 세계대전 초기에 폴란드를 점령한 데 이어 '카틴 숲'에서 장교와 교수, 의사 등 2만 명이 넘는 폴란드 인사들을 학살한다. 스탈린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남과 동시에 폴란드 및 헝가리 등 중동부 유럽국가들을 소련의 위성국가로 만든다.

유럽과 아시아에서 각각 독일과 일본을 격퇴하기 위해 소련의 참전이 절실히 필요했던 영국(처칠 수상)과 미국(루스벨트 대통령)은 얄타회담에서 드러난 스탈린의 야욕을 묵인한다. 동아시아의 한국과 중부유럽의 폴란드는 이러한 스탈린의 야심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나라들이다. 고통스런 과거를 극복한 폴란드는 오늘날 러시아를 최대의 안보 위협(주적)으로 인식하고 미사일 방어기지(MD) 설치는 물론 미국과 군사동맹 심화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다. 한반도의 경우 일찍이 스탈린이 뿌려놓은 '악의 씨앗'인 북한 정권이 아직도 건재한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후손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 것인지는 분명하다. 미국과 동맹을 강화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 폴란드로부터 배워야 한다. 우리 세대의 역사적 책무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한미동맹 강화다. 이를 위한 전제조건은 진영논리에 따른 '갈라치기'를 버리고 국론 통합을 달성하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