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레의 발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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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펠레의 발길질
  • 입력 : 2022. 01.25(화) 16:46
  • 이용규 기자
태평양의 하와이는 열점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화산 섬이다. 이 섬에는 불의 여신 펠레가 살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전설에 의하면 타이티에서 태어난 펠레는 언니인 나마카오카하이와 싸우며 4000㎞ 떨어진 하와이 군도까지 쫓겼다. 그녀는 섬에서 섬으로, 북서에서 남동으로 헤엄치면서 분화구와 산을 만들었다고 한다. 피신을 끝내고 정착하게된 하와이 섬에는 킬라우에아를 남겼고 할레마우마우 분화구를 만들었다. 하와이 주민들은 이 곳의 화산 활동을 성미가 급한 펠레의 발길질로 분화구를 열어 젖히는 것으로 생각했다. 펠레에 대한 존경심과 두려움으로 해마다 예복을 입은 주민들의 분화구 가장자리에서 경배 의식은 연례행사처럼 진행됐다. 그런데 경외의 대상으로 여긴 펠레에 대한 도발적 사건이 1824년 발생했다. 기독교를 믿는 추장의 아내가 분화구에 돌을 던져 펠레를 자극했던 것이다. 전통 신앙을 따르는 주민들은 펠레의 저주가 있을 것이라고 긴장했지만 평상시 처럼 잠잠했다. 이 사건 이후 많은 주민들이 기독교로 전향했다. 시간이 흘러서도 전통신앙을 숭배하는 주민들의 펠레에 대한 존경심과 불안감은 여전했다. 1881년 용암류가 하와이 힐로시를 위협할 때 주민들은 하와이 공주 루스에게 "펠레를 달래 달라"고 호소했다. 루스의 호소로 용암류는 힐로의 바로 앞에서 멈춰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다고 한다. 자연적 현상은 주민들의 신앙을 지배하는 도구로 활용됐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난 1월15일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통가 해저에서 커다란 화산이 폭발, 전세계에 깊은 충격을 주었다. 2016년 리우데자이네루 올림픽,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전통 의상을 입고 근육질 몸매를 과시했던 기수 타우파토푸아의 나라이다. 해저 1.5㎞에서 폭발한 화산 구름이 상공 20㎞, 반경 260㎞까지 분출물을 쏟아내 섬의 양 귀퉁이만 온전할 만큼 생채기가 깊다. 아직도 화산 주변 상공은 자욱한 화산재와 연기가 뒤덮여 비행기 이착륙을 하지 못하고 있다.

통가 해저 화산의 규모는 5~6단계에 해당된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학계에서는 1,00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위력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 수치라면 21세기 발생한 가장 강력한 화산 폭발일 수도 있다는 예상이다.

국제적십자연맹은 이번 화산 폭발로 통가 주민 8만 명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통가 인구가 2020년 기준으로 10만 5,697명인데, 전체 인구의 75.7%가 피해를 본 상황이다. 통가와 연결된 해저 통신 케이블이 끊어져 외부와 연락이 어려워 정확한 피해 집계도 어려운 실정이다.

전 세계에서 통가를 향한 온정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3년전 일본의 운젠화산 피해지를 취재한 경험으로 볼때 통가의 피해 현장이 상상된다. 하루 빨리 통가의 상황이 잘 수습되고 더 큰 피해가 생기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이용규 논설실장



이용규 기자 yonggyu.lee@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