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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향기·심명자> '감기 걸린 물고기'는 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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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향기·심명자> '감기 걸린 물고기'는 되지 말자

심명자 (사)대한독서문화예술협회 대표

게재 2022-01-25 12:55:51
심명자 (사)대한독서문화예술협회 대표
심명자 (사)대한독서문화예술협회 대표

십자군 전쟁 때 서구에 프레스토 존의 소문이 퍼졌다. 인도에 기독교가 있었고, 불세출의 사제왕 요한이 십자군을 지원해주러 군대를 몰고 티그리스강까지 왔다가 회군했다고 전해진 것이다. 이를 계기로 위기에 처한 서구는 교황 중심의 유럽 단합을 촉구하며 에우제니오 3세가 제2차 십자군을 소집하지만 실패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제왕 요한이 동로마 제국의 황제인 마누일 1세 콤니노스에게 보냈다고 하는 편지가 전해진다. 서구인의 방식으로 써진 이 문서는 격식도 갖추지 않았을 뿐더러 요한의 이름을 빌려서 유럽의 상황을 질타하는 정치적 쇼인 셈이다. 동로마에 적개심을 가진 한 작자가 가짜 편지를 유포했지만, 그것을 가공하고 활용한 것은 교황을 포함한 당대 권력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인들은 수 세기 동안 프레스토 존을 찾아 헤맸다. 전쟁으로 불안감이 극대화되고, 위기감을 느낀 민중들은 여과 없이 이 소문을 믿고 따르며 자신들의 미래를 맡길 정도로 숭배했다.

최근 K교수가 한 언론사와 '한국의 어른을 믿지 마라'는 내용으로 인터뷰를 했다. 제목만 보면 그야말로 도발적이고 사회분열적이며 발칙(?)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상의 불평등 사회이고, 능력주의라는 이름으로 1등을 끝없이 오만하게 만들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부유층들은 일찌감치 'SKY'에 입학하기 위한 학습 기반이 마련돼 있다. 빈곤층은 교육 불평등으로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말은 어록에서나 살펴볼 수밖에 없는 일이 된지 오래다. 1등이 장악하는 세상은 노동의 존엄성이 무시되고, 과잉 경쟁으로 치닫는 교육의 결과로 청년들에게 불확실한 미래를 남겨주고 있음을 예리하게 진단했다. 초등학생만 해도 매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주변을 돌아볼 겨를 없이 일상을 보내는 이유도 경쟁의 현실 때문이다. 심지어 소중함, 고마움, 기쁨 등의 감정을 느끼며 친구나 가족과 다정한 대화를 한 경험을 손으로 꼽을 정도로 삭막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이런 문제를 직시하고 교육개혁을 제시해야 할 대선에서 교육정책은 외면하고, 무성한 소문 대결로 치닫고 있다. 어떤 것이 참인지는 국민들이 판단할 것이라는 무책임한 말로 소문을 더욱 포장하고 있다.

그림책 '감기 걸린 물고기(박정섭 지음, 사계절, 2016)'에서 아귀가 빨강, 노랑, 파랑, 검정 회색 물고기 떼를 잡아먹기 위해 거짓 소문을 퍼뜨린다. 제일 처음에 빨강물고기 떼들이 감기에 걸렸다는 소문을 퍼뜨릴 때는 다른 물고기 떼들은 쉽게 믿지 않았다. 차츰 시간이 지나며 마침내 빨강물고기 떼들을 쫓아내고, 빨강물고기 떼들은 그대로 아귀의 밥이 된다. 한 번 허물어진 물고기 집단은 그 소문에 휘말려 차례로 아귀의 입 속으로 들어가고 만다. 초파리가 아귀의 코를 간지럽힌 바람에 아귀가 재채기를 해서 모두 살아날 수 있었지만 씁쓸한 여운이 남는다. 절대 강자인 아귀가 생성한 소문에 '나부터 살고 보자'는 물고기들의 행동에 민중들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가공된 뉴스를 퍼뜨려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언론과 권력자들, 그리고 자신들이 신뢰하는 쪽의 주장을 무조건 믿는 민중들의 모습과 겹친다.

그림책 '배고픈 거미(강경수 지음, 그림책공작소, 2017)는 아무 변별력이 없이 소문을 믿어버리는 단면을 잘 그리고 있다. 거미의 실체를 본 적이 없는 등장인물들은 파리의 말만 듣고 어마어마하고 무시무시한 거미가 있을 거라고 믿어버린다. 그 소문의 원인이나 정황은 따져보지 않고, 자신의 머릿속에 그려진 인상을 실제로 착각해버리는 것이다. 파리에게는 자신을 삼키는 거미가 공포의 대상인 것이 진실이다. 등장인물들은 그 공포가 자신들에게는 허상일 수도 있음을 인지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도망가기 바쁘다. '아니 뗀 굴뚝에 연기가 난다'는 것은 소문이 가진 위력이다.

집단을 이루고 살아가는 인간의 삶 속에 뉴스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올바른 뉴스는 민중 속에 파고들어 독재와 부정을 막는데 기여한다. 반면, 권력에 악용돼서 억울한 사람을 만들기도 하고, 기득권자들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우리가 접하고 있는 뉴스들이 얼마만큼 진실인 것인지, 아니면 가공된 것인지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감기 걸린 물고기'의 작은 물고기들처럼 '나'에게 유리한 쪽의 주장에 기울어져 포풀리즘(populism)을 형성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우리는 플라톤이 말한 폭민(暴民)정치를 의식해야 할 때이다. 즉 '어리석은 민중이 이끄는 중우정치'를 노리는 언론에 현혹되지 말고, 미래를 위해 설계하는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주입식 암기 능력을 테스트하여 우열을 가리는 과잉경쟁 시험 체제의 돌파구를 마련하고, 1등 지상주의를 배제할 대안을 내놓는 정책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