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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인문학> 인류 평화의 네트워크 이끌어 갈 'K-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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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인문학> 인류 평화의 네트워크 이끌어 갈 'K-컬처'

문화강국의 조건
"이 지구상의 인류가 진정한 평화와 복락을 누릴 수 있는
사상을 낳아 그것을 먼저 우리나라에 실현하는 것이다"
한류와 K-컬처를 김구의 주문에 기대어 제대로 해석하는 것이
문화로 행복한 문화강국의 문을 열어젖히는 길일 것이다.

게재 2022-03-03 14:40:19
핼러윈 데이인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세계음식거리에서 핼러윈 분장을 한 시민들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핼러윈 데이인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세계음식거리에서 핼러윈 분장을 한 시민들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문화강국 얘기가 나온 지 얼마나 되었을까? 문화가 기반이 되고 돈이 되는 강한 나라라는 뜻으로 채택한 용어일 텐데, 비전이나 전략이 명료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지금껏 강국이라는 용어 앞에 붙였던 접두어만 해도 수십 종에 이르지 않겠나. 경제 강국, 글로벌 강국, 녹색 강국, 해양강국 등 균분할 수 없는 크고 작은 접두어를 남발해왔기 때문이다. 아마 김대중 정부시절 지식정보 강국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이래, 벤처 강국이니 문화콘텐츠 강국이니 따위의 용어로 확산한 것 아닌가 싶다.

노무현정부 때 문화강국 이야기가 회자되더니, 이명박정부 때 세계 속의 문화강국, 박근혜정부 때 창조경제와 문화융성 기반의 문화강국이란 용어를 사용해온 것 같다. 현재 중국에서 화두 삼고 있는 정치강국, 군사강국, 경제강국 등과 비슷한 취지일까?

문화강국이란 표어는 김구의 자서전 '백범일지'의 부록 「나의 소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화입국론 혹은 문화강국론이라 한다. 너무도 유명한 그의 언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는 대목이 그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백범일지'를 오늘날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방식으로 윤문한 이가 춘원 이광수라는 점은 널리 알려져 있다. 방민호는 「김구 자서전 '백범일지'와 이광수 '윤문'의 의미」(춘원연구학보, 2020. 4)에서, 이광수가 가필하거나 심지어 창작한 맥락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물론 춘원의 뜻이 가필되어 있을지라도, 문화 국력을 강조했던 백범의 포괄적 취지가 퇴색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환기하고 싶은 것은 여기서 예시했던 문화의 힘, 다시 말해 문화강국의 조건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한류와 K-컬처, 문화강국의 위상

한류(韓流/Korean Wave)는 한국의 대중문화가 외국에서 유행하는 현상이라 뜻이다. '한국문화의 물결'이다. 1999년 문화관광부에서 대중음악을 홍보하기 위해 만든 <한류-Song from Korea>가 최초라 한다. 하지만 대중음악보다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전역에 출렁였던 물결은 한국 드라마였다. 나도 1990년대 말기부터 아시아의 오지 답사를 많이 다녔는데, 중국 일본을 넘어 심지어 동남아시아 시골구석에서도 작은 TV에 코를 박고 한류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드라마와 영화는 물론, K-KOP으로 호명되는 대중음악, 게임, 음식, 관광, 패션, 화장품, 디지털 분야 등에 광범위하게 걸쳐있다. 최근에는 '강남스타일'에서부터 BTS의 빌보드 석권, 영화 오징어게임 등으로 세계 무대의 정점을 찍고 있다. 하지만 수많은 분석이 행해지고 있으나 그 이유를 온전하게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K-컬처라는 호명의 범주를 넘어서는 현상이나 개념들에 대해 어떻게 논의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문화강국'이 각 장르의 접두어를 '강국' 앞에 붙이는 방식이라면, 'K-컬처'는 K-헤리티지 K반도체전략 등 접미어를 붙이는 방식이다. 특히 주목할 것은 이것의 기반이 되는 전통문화다. 2021년 9월 한 달 동안 문체부가 우리나라 등 세계 24개국 만2천500명을 대상으로 행한 온라인 조사에 의하면, 한국에 대한 관심을 묻는 8개 문항 가운데 가장 응답을 많이 받은 항목이 '한국 전통문화 체험 희망(83.4%)이었다. 그래서다. 전통문화 기반의 문화강국이라는 위상은 무엇일까?

오징어게임과 자살공화국의 함수

K-컬처 물결 중에서 이즈음 가장 뜨거운 종목이 영화 오징어게임이다. 문화란에는 천편일률 오징어게임의 성과를 찬양하거나 그 이익의 분배 이야기가 도배된다. 심지어 국가 문화정책의 중요한 설계에 인용되기도 하고 기저(뿌리)로 삼기도 한다. 관련한 지원이나 교육, 이익분담 시스템의 재구성 논의가 그것이다. 이 방향이 옳은 것일까? 2021년 말 BBC 뉴스에 '오징어게임에 드러난 한국의 현실'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넷플릭스 사상 최고 인기 콘텐츠가 된 오징어게임이 사실은 한국사회의 복잡성에 대한 통찰력을 100여 개 외부 나라에 알렸다는 것이 요지다. 여성 혐오와 빈곤, 이주노동자와 탈북자, 정경유착 비리 및 한중관계 등이 거론되었다. 지금의 정치 지형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혐오와 배제, 극단과 척결, 마치 오징어게임의 생존투쟁을 닮았다. 아니, 한국의 현실을 오징어게임이 대변해준 것 아닌가. BTS와 오징어게임의 그늘을 주목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20여 년간 OECD 자살률 부동의 1위다. 잠시 상위에서 밀려나는 듯하지만 20대 여성 10대 남성의 자살률은 오히려 가파르다. KOSIS에서 내놓는 통계를 보면 참담할 지경이다. 방송들이 앞다투어 심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수많은 분석이 쏟아져 나오지만 자살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어찌 오징어게임을 한국의 현실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여혐과 이대남, 페미와 남혐이라는 혐오방식, 정적을 척결해야 하는 극단주의적 정치, 일등 아니면 모두 죽임당하는 게임방식이, 지난 1세기 아니 수천 세기 이름도 빛도 없는 민중들이 피 흘리고 땀 흘려 만든 이 나라의 결과물이란 말인가? 호혜와 공생, 연대의 대동 세상을 꿈꾸고 가꾸어 온 수많은 생각과 방식들, 내 방식대로 말하면 법고창신의 토대가 되는 전통문화는 어디로 가버렸는가? 영화의 내용이 단지 비극이라는 문학의 장치일 뿐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통절한 현실비판 앞에 그럴 수가 없다. 하지만 요한호이징하가 말했던 호모루덴스 곧 유희하는 인간의 본질이 극단의 일등주의를 뜻하는 게 아니라는 것만큼은 환기하고 싶다. 그가 종교와 전쟁마저 놀이의 범주에 포괄했던 것은, 게임이라는 경쟁으로 호혜 상생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인간(人間)이란 말 자체가 네트워크의 존재라는 뜻 아닌가.

핼러윈 데이인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세계음식거리에서 핼러윈 분장을 한 시민들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핼러윈 데이인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세계음식거리에서 핼러윈 분장을 한 시민들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남도인문학팁

궈차오(國潮)강국론과 한류 문화강국론

이즈음 새로 생긴 조어로 중국의 궈차오(國潮)가 있다. 한류와는 다르게 자국 중심소비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중국인들의 소비 능력이 향상되는 과정에서 내수시장 마케팅에 성공한 사례다. 이 안에는 문화제국주의, 문화강대국이라는 함의가 들어 있다. 한류와 궈차오, 상반된 듯한 두 물결을 주목한다. 군사강국, 경제강국 등 국력이 강하다는 뜻의 문화강대국일까. 아니면 국제사회에서 그 세력을 인정하는 나라라는 뜻의 문화강국일까. 예컨대 군사력이 강한 러시아와 그 반대인 우크라이나 중 어디가 문화강국일까? 자발적인 내수경제 강제와 자국상품에 대한 애호의 경계는 어디쯤일까? 그래서다. 중국의 궈차오는 한류와 문화강국이라는 표어를 콘텐츠 강국이나 수출 위주 문화정책의 기저로만 읽어서는 안 된다는 거울이다. 오징어게임의 성과는 성과대로 민간의 자율에 맡기고 자살률 극복부터 설계하는 것이 진정한 문화강국의 정책이라는 반면교사이지 않을까? 며칠 후 대통령선거가 있다. 극단적 혐오와 배제를 앞세우고 국민을 갈라치는 극단끼리의 공생방식은 이제 그쳐야 한다. "세계 인류가 네오 내오 없이 한 집이 되어 사는 것은 좋은 일이오, 인류의 최고요, 최후인 희망이요, 이상이다(중략). 완전 자주독립의 나라를 세운 뒤에는 이 지구상의 인류가 진정한 평화와 복락을 누릴 수 있는 사상을 낳아 그것을 먼저 우리나라에 실현하는 것이다." 이것이 김구가 말한 '나의 소원'이자 문화강국의 조건이다. 지난 1세기 피와 땀으로 재건한 나라, 한류와 K-컬처를 김구의 주문에 기대어 제대로 해석하는 것이 문화로 행복한 문화강국의 문을 열어젖히는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