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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인문학> 너도 알고 나도 아는 '거시기'의 연대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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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인문학> 너도 알고 나도 아는 '거시기'의 연대는 계속된다

거시기 연대기 
옳다고 믿었던 것들의 전복과 상실감
시대 담론을 이끌어왔던 정치적 감각도 의심받는 지경
하지만 그 역사적 궤적이 정당성을 잃어버렸을까
당파가 아닌 나라의 의를 남도가 구할수 있기를 바란다

게재 2022-03-17 17:13:12
무안 봉수산에서 바라본 영산강 하류. 이윤선
무안 봉수산에서 바라본 영산강 하류. 이윤선

거시기와 머시기

대처나 참말로 거시기하네야. 저 머시냐 거시기, 그랑께 아무리 그란다고 진짜로 거시기해블믄 어쩌자는 것이여? 여기서의 '거시기'는 무엇을 말할까? 남도 지역에서 '거시기'가 빠지면 대화가 되지 않을 정도다. 거시기는 '너도 알고 나도 아는 것'이다. 작은 단위든 큰 단위든 일정한 공동체가 공유하는 대상이기 때문에, 굳이 특정하거나 지시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대상이나 정서를 말한다.

담화표지(discourse marks) 중에서 이만큼 스펙트럼이 넓은 지시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사전에서는 이름이 얼른 생각나지 않거나 바로 말하면 곤란한 사람 또는 사물을 가리키는 대명사라고 풀이해두었다. 혹은 하려는 말이 얼른 생각나지 않거나 바로 말하기가 거북할 때 쓰는 감탄사라고 풀이했다.

거시기는 사실 경상도 지역의 '거석'이나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는 머시기, 거식하다, 거사니, 머사니 등과 혼용된다. 사투리가 아닌 표준말이다. 이 말이 왜 전라도의 사투리로 알려져 있을까? 아니면 남도의 특정한 정서를 대변하는 담화표지로 고착되었을까? 남도 사람들이 에둘러 표현하고자 하는 그 무엇이 있어, 다른 지역보다 더 활발하게 사용해왔기 때문은 아닐까?

김영철은 <우리말 담화표지의 기능 고찰-'거시기'를 대상으로>라는 글에서, 거시기가 '주의 집중', '간접적인 표현', '시간 벌기', '망설임의 표시' 등의 기능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지면상 각각의 예들을 소개할 수는 없지만 남도 사람들이라면 그것이 무엇인지 대충 짐작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거시기와 머시기는 같은 말인듯한데 활용의 예가 다르다. 머시기는 '나는 아는데 너는 모르는 대상이나 정서'이다. 아마 '뭣이라고요?'라는 질문과 관련된 담화표지일 것이다.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남도인들의 이 공유된 정서를 '귄'과 '거시기'로 풀어 설명하곤 한다.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는 거시기와 머시기가 남도의 사투리로 알려진 이유가 여기 있다고 말이다. 그 정점에 남도 사람들의 미학적 전거 '귄'이 있다는 생각에서다.

거시기 담론과 귄의 정체

나는 이번에 출판된 졸저 <무안만에서 처음 시작된 것들>(다할미디어)에서 무안분청에 서린 미학을 야마다 만키치로우의 무안분청 사랑을 통해 해명하고자 했다. 이들이 이야기하는 무안분청은 광주를 포함한 전라도 전역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차차 소개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섞여 있는 모래가 가마 안에서 녹아 튀어서 벌어진 찻잔은 작은 틈이 생겨 완전히 볼품이 없는 것이 되는데, 그렇지만 그 볼품이 없는 것 같이 보이는 것이 나는 좋다." 그냥 좋은 정도가 아니다. 조선의 일상생활 용기이던 분청자기가 일본으로 건너간 후, 가장 값비싼 최고의 다기로 대접받은 내력을 우리는 알고 있다.

야나기무네요시는 그의 책 <조선과 그 예술>에서 이렇게 말한다. "일본인들은 미묘한 맛을 분간할 수 있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거기에만 매달려 있는 듯하다. 맛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자유를 흉내 내되 그 자유에 사로잡힌 채 끝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좋은 다기가 나올 리 없다. 무식하고 이름도 없는 조선의 장인들이 만든 저 잡기의 아름다움을 어째서 넘지 못하는 것일까. 또다시 마음의 문제로 돌아오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 나는 이들의 분청과 옹기 예찬을 통해서 남도지역의 '귄'을 읽어내고자 했다. 야나기가 말했던 자유의 정체와 아름다운 마음의 실체 말이다. 하지만 남도땅의 아름다움은 수도 없이 얽힌 복선 속에 은닉해 있다.

한하운은 이렇게 노래했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뿐이더라(중략)/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 길" 김지하는 이렇게 노래했다. "황톳길에 선연한/ 핏자국 핏자국 따라/ 나는 간다 애비야/ 네가 죽었고/ 지금은 검고 해만 타는 곳(중략)/ 나는 간다 애비야/ 네가 죽은 곳/ 부줏머리 갯가에 숭어가 뛸 때/ 가마니 속에서 네가 죽은 곳..." 이 죽임과 환란의 모진 땅에서 생성된 미학이 '귄'이고 이를 에두르는 지시어가 '거시기'이다.

대통령선거가 끝나고 남도 사람들이 패닉상태에 빠져있다는 얘기가 돈다. 80% 이상 지지한 후보가 떨어져서라기보다는 옳다고 믿었던 것들의 전복과 상실감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거시기를 머시기로 착각해서였을까? 몰지각한 지역주의로 폄하 받는 것은 물론 역사 이래 시대 담론을 이끌어왔던 정치적 감각과 수준높은 미학의 권위마저 의심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거시기'를 공유하는 집단의 이기적 당파성이라고 말이다. 그럴까? 지금까지 믿고 의지해 온 역사적 궤적이 정당성을 잃어버렸을까? 글쎄다. 어쩌면 곧 있을 총선에서 그 결과를 목도하게 될지 모르겠다. 당파가 아닌 나라의 의를 남도가 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눈물이 나는 것은, 역사 이래 이행해온 남도 사람들의 귄진 연대기를 상고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묻고 기도한다.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성경 신명기 32장 7절)."

남도인문학팁

거시기 연대기, 남도의 정서

'거시기'는 담화표지이고 그 실체는 '귄'이다. 공명하지 않으면 귄있다 혹은 귄지다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다. 화려한 노래나 몸짓에 원더풀로 환호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진도에서는 마을제사(당제 등)를 '거리제' 혹은 노제(路祭, 路神祭)라고 호명하는 경우가 전체의 8할이다. 거리제는 길거리에 떠도는 잡귀를 대상으로 행하는 제사다. 나는 이를 세월호를 대하는 진도인들의 마음을 들어 해명한 바 있다. 이 죽음들을 받아들이고 대응하는 진도사람들을 보면서 천가지 만가지 생각들이 교차했다. 옛일과 지금의 일들이 교신하고 진도라는 공간과 남도 혹은 한해륙이라는 공간들이 교신함을 느꼈다. 상고해보라. 이 죽음들을 받아들이고 대응하는 방식들의 연원과 연대기를 말이다. 일종의 살 떨리는 깨달음이다. 거슬러 오르니 진도의 용장산성과 제주 항파두리의 삼별초에 이른다. 고부 황토현과 장흥 석대들의 동학군에 이른다. 4.3의 한라산과 무등 산하의 광주민주화운동에 이른다. 동아시아 전쟁으로 불리는 한국동란의 피뿌림에 이른다.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로 상징되는 명량대첩 울돌목의 무수한 죽음에 이른다. 거듭 상고하니 셀 수도 없는 이 많은 죽음이, 기록되지 못한 억울한 죽음들이 무리 지어 남도땅에 스며든다. 귀양인들이 모여들었던 땅도 남도이고 죽음의 위험에 처한 이들이 마치 어머니의 품처럼 피신해 왔던 곳도 남도이다. 왜 유독 남도땅으로만 모여들었던 것일까? 왜 남도 사람들은 그 모든 것들을 기꺼이 받아들였던 것일까? 전국 어느 곳이 우리 역사의 피와 울음들을 담아내지 않은 곳이 있으랴만 그럼에도 하필이면 남도 땅이 담아내고 대응했던 이런 의미들을 어찌 초연하게만 바라볼 수 있겠는가. 거리제는 남도 땅에서 혹은 이 땅에 와서 죽어간 수많은 죽음에 대한 '공감'이요 '공명'이다. 이름도 빛도 없이 이 땅에서 스러져간 잡초같은 민중들을 향한 마음이자 정신이다. 이 숭고한 미학이 폄하되거나 의심받지 않기를 바란다. 귄진 남도, 거시기의 연대기는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