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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대로변 가로수까지"… 광주는 백로와 전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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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대로변 가로수까지"… 광주는 백로와 전쟁중

악취·소음으로 수년째 불편 호소
울음소리에 길 가던 시민들 ‘깜짝’
절지작업해도 인근 나무로 옮겨가
"공생 위한 시민 의식 변화 필요해"

게재 2022-04-26 17:12:45
26일 광주 서구의 한 가로수에 백로가 둥지를 틀고 있다(사진 위). 백로의 배설물과 알껍질 배출로 인한 악취 등으로 인근 주민들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나건호 기자
26일 광주 서구의 한 가로수에 백로가 둥지를 틀고 있다(사진 위). 백로의 배설물과 알껍질 배출로 인한 악취 등으로 인근 주민들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나건호 기자

해마다 찾아오는 불청객 '백로' 때문에 광주 서구 광천동 일대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악취와 소음 문제로 수년째 단골 민원이었던 백로가 최근에는 대로변 가로수까지 둥지를 틀어 시민들의 불편이 심화된 것이다.

26일 서구 광천동 일대는 백로들의 날카로운 울음소리로 가득했다. 보도블럭은 본래 색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하얀 배설물로 뒤덮여 있었고, 시민들은 백로 울음소리에 흠칫 놀라기도 했다. 혹여 배설물을 맞을까 어깨를 한껏 움츠리고 나무 밑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는 시민도 있었다.

백로는 4월께 우리나라에 찾아와 집단을 이뤄 번식한 후 9~10월이 되면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이동한다. 이중 소음·악취가 발생하는 번식 기간은 3개월 가량이다.

백로들이 둥지를 튼 가로수 옆 편의점에서 근무하는 박춘향(63) 씨는 "냄새도 심하고 울음소리도 시끄러워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박씨는 "3월 말부터 백로들이 몰려들어 민원을 2번이나 넣었지만, 아직도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 배설물이 쉴새 없이 떨어져 근처에 차도 댈 수 없다"며 "원래 아파트 쪽에 있던 새들이 (아파트 단지 내) 나뭇가지를 치니 이제 이쪽(대로변)으로 넘어왔다. 여기도 빨리 가지를 쳐 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주차 봉사를 하며 대로변을 오랫동안 지켜봤던 김모(60) 씨는 "백로들이 도로에 내려올 때도 있어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백로들이 도로에 내려와 싸우는 모습을 종종 본다"며 "아직까지 사고는 없었지만, 위험한 것은 사실이다. 보도블록도 너무 지저분해 조만간 민원을 넣을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26일 광주 서구의 한 인도에는 백로의 배설물과 알껍질 배출 등으로 인해 하얗게 변해있다. 나건호 기자
26일 광주 서구의 한 인도에는 백로의 배설물과 알껍질 배출 등으로 인해 하얗게 변해있다. 나건호 기자

일각에서는 동물보호를 위한 차원에서 쫓아내지 말고 그대로 두자는 의견도 있었다.

인근 아파트 주민인 송모(59) 씨는 "봄이 오면 백로들이 들어와서 활개를 친다. 잡아서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여름이 지나면 사라지니까 그냥 두는 게 상책인 것 같다"고 전했다.

지나가던 공석현(41) 씨는 "울음소리에 깜짝 놀랄 때가 많다. 보니까 성격이 포악한지 자주 날개를 퍼덕거리면서 싸우더라. 그럴 때마다 피해서 가는 경향이 있다"면서도 "골목이 더러워지고 불편한 건 맞지만 굳이 보금자리를 없앨 필요가 있나. 오죽하면 갈 곳이 없어서 여기까지 왔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러한 민원이 쇄도하자 서구는 절지 작업(나무줄기를 보존하고 가지만을 잘라서 그 절단면에서 새 가지가 나오게 하는 작업)을 통해 백로가 올 수 없도록 조치를 취하고 있다. 광주시 또한 백로가 보호종이나 유해종이 아니기 때문에 가지를 잘라 백로의 접근을 막는게 최선이라는 입장이다.

광주시 관계자는 "10년 전부터 백로들이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특히 광천초등학교를 중심으로 광천동 일대를 점령하면서 서식하다가 최근에는 운암동과 동림동 인근까지 발견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철새인 백로 특성상 특정 시기가 지나면 이동하기 때문에 때에 맞춰 가지를 잘라 시민들에게 불편을 최소화하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대체 서식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나 부지를 마련한다해서 민원이 해소되길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26일 광주 서구의 한 가로수에 백로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백로의 배설물과 알껍질 배출로 인한 악취 등으로 인근 주민들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나건호 기자
26일 광주 서구의 한 가로수에 백로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백로의 배설물과 알껍질 배출로 인한 악취 등으로 인근 주민들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나건호 기자

대체 서식지의 일환으로 생태공원 조성이 대안으로 거론됐으나 실질적 효과를 볼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조류 전문가인 이두표 호남대학교 교수는 백로와의 공생을 위해선 "생태공원을 만들어도 백로가 둥지를 만들기에 안전하다고 느끼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된다. 그렇다고 계속 가지를 쳐 백로를 쫓아내기만 하는 것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시민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행정기관에서 주기적으로 청소를 하는 등 조처하는 것이 최선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교수는 "시민들의 인식 변화가 중요하다. 백로가 찾아온다는 것은 환경이 깨끗하다는 뜻이다. 백로를 무작정 쫓아내기보다는 백로가 찾아온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같이 공생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