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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노휘의 길 위의 인생 80> '폭력·문명·자본'… 뉴욕의 상징 빌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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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노휘의 길 위의 인생 80> '폭력·문명·자본'… 뉴욕의 상징 빌딩

뉴욕, 뉴욕, 뉴욕-킹콩이 있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게재 2022-07-07 16:13:34
전망대에서 바라본 뉴욕시티. 차노휘
전망대에서 바라본 뉴욕시티. 차노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인간의 문화적, 예술적, 오락적 활동은 그 사회를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 당대의 지식인이기도 한 예술가들이 그들의 작품으로써 문제제기를 하기 때문이다. 1933년 개봉된 이후 관객의 뜨거운 관심을 받으면서 큰 성공을 거두고, 미국 할리우드 영화를 대표하는 고전 영화로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킹콩>도 그 중 한 작품이다. 현대까지 꾸준히 리메이크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킹콩과 대조적인 상징성을 띠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출현시킴으로써 더 유명세를 타게 했다. 엠파이어스테이트는 <킹콩>보다 2년 앞서 세상에 태어났다.

1929년 공사를 시작하여 1931년 완공된 그 빌딩은 높이 381m, 그 당시 세계 최초의 마천루였지만 세계무역센터가 지어지면서 2위로 밀려났다. 2001년에 세계무역센터가 테러로 무너진 이후로는 다시 뉴욕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되었지만 제1의 테러 대상이라는 소문이 있어서 오피스 주인들이 사무실을 내놓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4백만 명의 관광객들이 엠파이어스테이트를 방문하고 있다. 경제 공황 때 빈 사무실들이 많아 '텅 빈 주의 빌딩(empty state building)'이라는 오명을 가진 적도 있었지만 뉴욕의 야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로만 1억 명 이상의 관광객들을 끌어들였으니 그들의 부도 위기를 면하게 해준 것은 바로 관광객들의 힘이었다. 또한 문화의 힘이기도 했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다수 영화의 배경이 되었다. 그 중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는 주인공 남녀가 전망대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한다. 전망대는 86층과 102층에 있다. 86층 전망대는 야외에서 360도 파노라마 뷰를, 102층 전망대는 통유리로 된 실내에서 뷰를 감상할 수 있다. 가장 유명한 영화 장면은 킹콩이 첨탑을 오르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킹콩(1933)에서는 크고 아름다운 고릴라가 빌딩 최상층 안테나를 붙잡고 복엽기와 싸우다 추락하고, 1976년판에서는 세계무역센터로 바뀌었으나, 피터 잭슨의 킹콩(2005)에서 다시 엠파이어스테이트가 등장한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내 전시관 . 차노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내 전시관 . 차노휘

피터 잭슨의 <킹콩>

쿠퍼(Merian C. Cooper)와 쉐드쌕(Ernest B. Schoedsack)의 <킹콩>(King Kong, 1933)은 전형적인 인종주의적인 시각을 드러낸 작품이다. 흑인 남성으로 상징화된 킹콩이 백인 여자를 탐하는, 즉 백인 사회의 지배질서에 도전하는 흑인을 결국 폭력적으로 보복하는 내용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1976년에 길러민(John Guillermin)에 의해 재해석된 <킹콩>은 거대한 자본을 가진 석유회사와 이에 대립하는 동물학자를 등장시켜 거대 기업의 무차별적인 자연착취와 생태계 파괴라는 자본주의의 부도덕한 이면을 폭로했다는 데에서 의의가 있으나 흥행에서는 실패했다. 2005년에는 <반지의 제왕> 3부작으로 큰 성공을 거둔 잭슨(Peter Jackson)은 상영 시간을 원작의 두 배로 늘리고 현란한 컴퓨터 그래픽 영상을 사용하여 흥행에 성공한다. 뿐만 아니라 새롭게 탄생시킨 <킹콩>은 원작과 달리, 그 위치를 전환시킨다. 카메라의 시선에서 타자로 머물렀던 검은 피부의 원주민들은 시선의 주체가 되고 성적 타자로만 머물렀던 여성은 능동적이면서도 주체적인 존재로 등장한다. 이러한 시선을 기본으로 인종담론을 전복시키는 저항 전략까지 담는다. 흥미로운 외피에 알맹이는 정치적인 성향을 담은, 온전히 피터 잭슨의 철학으로 담금질된 영화로 새롭게 선보인 것이다. 결론은 원작이나 잭슨이나 킹콩이 비극적인 결말을 맺는다는 것은 같다. 그래서인지 더욱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라는 미국의 상징적인 건물에서의 마지막 엔딩 씬이 의미심장한 여운을 남긴다. 백인의 폭력을 상징하는 '잉글혼', 문자 즉 문명의 힘을 상징하는 '드리스콜', 영화 산업을 근거로 자본을 상징하는 '덴햄' 등 이렇게 세 명의 인물이 서구 제국주의자가 식민지 확장을 위해 이용했던 폭력, 문명, 자본을 각각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오늘날 뉴욕을 대표하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과 연결되어 있다. 결국은 백인이 중심이 되는 서구문화자본주의에 주류와 비주류, 혹은 문명과 자연이라는 이분법적 구조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한계점이 있으나, 이는 또한 잭슨의 <킹콩>이 변화의 지점에 집중하였고 이러한 변화는 갈등을 극복하려는 긍정적인 메시지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내가 그곳을 찾았을 때는 코로나 여파로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아 매년 4백만 명이 방문하다는 것이 무색할 만큼 소수 인원이 입장하였다. 인터넷 예약에서 시작하여 방문한 그곳은 직원들의 세심한 안내로 고속 승강기를 타고 32m까지 곧장 올라갈 수 있었다. 첨탑 바로 아래 전망대까지 가는 데에 전시관을 거쳐야 했는데 한 눈에 잡힐 것 같은 엠파이어스테이트 모형 빌딩이 흥미로웠다. 그 밖에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대한 내용과 역사, 체험 공간, 빌딩 건설이 되기까지의 설계 스케치 등을 볼 수 있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빌딩을 지을 때 특히 철강 노동자 중에는 캐나다 출신의 모호크족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많았다. 이들은 고소공포증이 거의 없어서 가장 중요했던 안전수칙으로는 바로 철골 위에 기름이 흘러있나 확인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건설기간 동안 3,500명 정도의 노동자가 동원되었고 총 6명이 사망하였다. 5명은 인부였고 1명은 보행자였다. 그 외에도 이곳을 다녀간 유명 인사들의 사진을 한데 모아놓은 곳, 영화 속 배경으로 등장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이미지 사진들이 전시된 곳도 있었다. 단연 압권은 킹콩이었다. 나는 모형으로 만들어진 킹콩 손 안에 영화 속 대로우처럼 앉아보았다. 피터 잭슨 버전의 대로우는 권력과 힘에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주체가 되어 행동하는 여성이었다. 드디어 전시관을 통과해서 뉴욕시의 파노라마 뷰를 볼 수 있는 전망대에 다다랐을 때는 '주체적인 생각과 행동으로' 나는 아주 발칙하게 뉴욕시티를 향해 한 발을 들었다. 그리고는 사진을 찍었다. 사진 속에서는 뉴욕 시티가 정말로 내 발 아래에 웅크리고 있었다. 차노휘〈소설가, 도보여행가〉

킹콩 손아귀에서. 차노휘
킹콩 손아귀에서. 차노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