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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적 유전자·손필영> 구절초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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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적 유전자·손필영> 구절초 사랑

손필영 시인·국민대 교수

게재 2022-09-28 13:43:23
경북 봉화군 소재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잔디언덕에 25일 구절초가 활짝 피어 있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서는 29일부터 10월 10일까지 '2022 가을 봉화 자생꽃 페스티벌'이 개최된다. 봉화=뉴시스
경북 봉화군 소재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잔디언덕에 25일 구절초가 활짝 피어 있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서는 29일부터 10월 10일까지 '2022 가을 봉화 자생꽃 페스티벌'이 개최된다. 봉화=뉴시스
손필영 시인
손필영 시인

지평선 끝에서부터 누런 물결이 달려오는 듯 가을이 왔다. 추분이 되면서 날씨가 아침 저녁은 차가워졌지만 낮은 여전히 햇살이 따거워 살랑이는 바람에 옷깃을 날리며 산보하기 좋다. 모든 색깔을 품은 태양은 이제 마지막으로 색을 나누어 주는 듯하다. 누런 은행, 붉은 맨드라미, 황금빛 서광꽃, 연 보랏빛을 흔드는 구절초, 투명한 구름. 숨어있던 사물들이 가을이 되면 본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다.

코로나19로 연달아 5학기를 줌으로 수업을 하다가 학교가 정상적으로 움직이게 되어 오래간만에 후배 선생과 식사를 했다. 서로의 안부를 묻다가 그는 정년 전에 학교를 떠나겠다고 말했다. 그럼 그 뒤에 무얼하려 하느냐고 물었다. 뚜렷이 할 것도 없지만 요즈음은 학생들과 소통이 되지 않아 힘들어서 떠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것이다. 사실 요즘과 같은 상황이라면 바뀐 수업체제에 몸을 맞추지 않아도 되는 정년을 하신 분들이 부럽다. 오랫동안 대학이 가졌던 이상과 진리추구는 더이상 학생들의 관심이 아니기 때문에 무엇을 진지하게 읽히고 가르치는 것은 의미가 없어졌다. 학생들은 무겁고 어려운 것은 싫어한다. 재미있게 수업을 진행해야 하므로 의미를 추구하고 연구를 해오던 사람들이 갑자기 흥미를 유발하는 교수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시대가 변했다는 것은 모두 공감하는 말이지만 대학교육도 학생을 위해 마치 소비자의 입맛에 맞게 바꾸라는 것인데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

예이츠의 시 〈비잔티움으로의 항해〉 라는 시를 대학 때 읽었을 때는 젊은이의 열정과 노인들의 지혜에 대한 시로 읽었다.

"저 관능의 음악에 사로잡혀서 모두/ 늙는 일이 없는 예지의 기념비를 소홀히 한다// 늙은 사람은 그저 보잘것 없는 것,/ 막대기에 위에 씌워놓은 해어진 웃저고리,/ 영혼이 손뼉치며 노래 부르지 않는 한,/ 그 옷 해어짐 하나하나를 위해 한층 더 높이 노래하지 않는 한./ 자신의 장엄한 기념비를 공부하는 노래학교가 없는 한,/ 그래 나는 바다를 건너 성스러운 도시/ 비잔티움으로 찾아온 것을…." 이라는 내용을 읽으며 지성과 지혜와 예술을 위한 도시 비잔티움을 상상했다. 예이츠의 말대로 이 세상은 팔짱 낀 젊은이들을 위한 물고기, 짐승, 새들이 여름 내내 잉태되고 태어나 죽는 모든 것을 찬양하는 곳이다. 그러나 100년이 지난 지금은 그 정도만이 아닌 것 같다. 이 시구절을 제목으로 한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보면 오로지 돈을 위해서라면 살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정신이상자가 나온다. 범죄자를 잡으려는 보안관은 이제 무기력하다. 이 세상은 지혜로운 노인을 더이상 필요로 하지 않고 마을의 윤리와 도덕을 지키려는 보안관은 노인과 같이 무엇도 할 수 없다. 그래서일까? 이번 학기 시 수업은 학생 수가 모자라 진행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시가 그렇게 현재와 미래에 맞지 않는 것일까?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언제나 오듯 가을은 왔다. 해마다 가을에 핀 구절초를 보면 생각나는 시가 있다.

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구절초 매디매디 나부끼는 사랑아

내고장 부소산 기슭에 지천으로 피는 사랑아

뿌리를 달여서 약으로도 먹던 기억

여학생이 부르면 마아가렛

여름 모자 차양이 숨었는 꽃

단추 구멍에 달아도 머리핀 대신 꽂아도 좋을 사랑아

여우가 우는 추분(秋分) 도깨비불이 스러진 자리에 피는 사랑아

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매디매디 눈물 비친 사랑아

-박용래 〈구절초〉

이 시는 연 보라색이기도 하고 하얗기도 한 구절초를 통해 시인의 죽은 누이에 대한 그리움을 절절하게 드러낸다. 그 구절초를 여학생이 부르면 마아가렛이라고 낯설게 표현해 산뜻하고 경쾌한 누이의 이미지도 떠오르게 한다. 박용래는 일제 강점기에 강경상업학교를 나와 졸업하자마자 당시 많은 사람이 일하기 원했던 조선은행에 취직되었으나 사임하고 문학을 배웠던 시인이다. 그는 살아생전에는 지방 시인이므로 중앙에서 그리 주목을 받지 않았다지만 문단과는 무관하게 자신의 세계를 독창적으로 추구했고 지금은 한국 현대 시사를 대표하는 서정시인 중 한 사람으로 평가되고 있다. 어느 시대나 물질에 대한 욕망은 본능적이다. 그러나 그것만을 쫓는다면 자기다운 부분을 잊게 될 것이다. 박용래는 1925년에 태어나 1980년까지 살았다. 55년 지상에 살면서 그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했으므로 행복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