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미술의 눈으로 '현대미술의 아버지' 뒤샹을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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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민한의 동시대미술 수첩
동시대미술의 눈으로 '현대미술의 아버지' 뒤샹을 바라보다
  • 입력 : 2019. 04.16(화) 15:29
  • 편집에디터

국립현대미술관의 마르셀 뒤샹 전시 전경 .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올 봄에 끝난 전시 중 가장 볼만한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개최된 '마르셀 뒤샹'전(2018. 12. 22. ~ 2019. 4. 7.)이었다. 20만 이상의 많은 관람객이 이 전시를 관람했을 정도로 인기 있는 전시였다. 아마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뒤샹의 대표작 '샘'을 비롯하여 그의 전 생애의 시기별 대표작품을 모두 볼 수 있었고, 전시장 구성이나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관람객들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켰기 때문에 전시 만족도가 높았다고 추측된다.

보통 국내에서 개최되는 블록버스터 전시는 미술관 단독으로 추진되기보다는 전시기획사, 언론사 등과 협업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전시는 전시기획사 개입 없이 국립현대미술관이 뒤샹 작품의 메카인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과 공동으로 기획했다. 필라델피아 미술관이 리모델링을 하게 됨에 따라 그 소장 작품들 중 뒤샹 작품과 아카이브 150점을 선별하여 일본, 한국, 호주 순으로 순회 전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전시는 뒤샹의 초기 작품인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부터 최후의 작품인 '에탕 도네'의 영상까지 뒤샹의 삶과 예술 전반을 4부로 나누어서 보여주고 있다. 1부에서는 뒤샹이 초기 인상주의, 상징주의, 야수파 등 당시 프랑스 화풍을 공부하던 시기의 작품을 선보이고, 2부에서는 뒤샹의 대표작 '큰 그림'를 비롯하여 '자전거 바퀴', '샘' 등 레디메이드 작품을 보여준다. 3부에서는 '에로즈 셀라비'로 분장해서 자신의 정체성에 질문은 던지는 작품과 미니어처 이동식 미술관 '여행가방 속 상자' 등이 전시되고, 4부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20년에 걸쳐 아무도 모르게 제작한 디오라마 작품인 '에탕 도네'를 디지털 영상으로 재현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직접 전시 작품을 선정한 것은 아니지만, 국립현대미술이 기획한 독자적인 작품 설치 구성과 다양한 부대 프로그램이 이 전시를 빛나게 하는 데 한몫했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예컨대 뒤샹의 대표작인 '큰 그림'과 '에탕 도네'의 경우, 실물 작품을 대신해서 작품과 동일한 크기의 스크린에 작품 이미지를 투사하고, 이와 동시에 작품 설명을 그 화면 속에 삽입하여 순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많은 관람객들이 진짜 작품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투사된 작품 이미지를 집중하여 보고 있는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마르셀 뒤샹은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평가 받고 있다. 2004년에 영국 '올해의 터너상' 시상식에 참여한 미술계 인사 500명에게 20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현대미술작품을 묻는 설문조사에서 뒤샹의 '샘'이 1위를 차지했다. 이 작품이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2위), 앤디 워홀의 '마를린 먼로'(3위)를 제치고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되었다. 뒤샹은 1910년대 '샘'을 비롯한 레디메이드 작품을 처음 제작하여 기존 전통을 부정했다는 점에서 '현대미술의 아버지'라고 추앙 받으면서도, 동시에 '미적인 요소'보다 '의미'와 '통찰'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동시대미술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준 작가로도 평가되고 있는 상황이다.

뒤샹의 레디메이드 작품은 두 가지 점에서 혁신적인 작품이라고 인정받고 있고, 이 점 때문에 현대미술의 정수로 평가받는다. 첫째, 뒤샹은 대량 생산된 일상용품을 그대로 미술작품으로 전시함으로써 '미술작품은 작가가 손수 만들어야 한다' 라는 기존 미술 개념을 도전했다. 둘째, '미술작품은 미적인 것이어야 한다' 라는 이전까지의 미술 관념을 거부했다. 뒤샹은 레디메이드 작품을 통해 '미술이 무엇이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라는 미술 정체성의 문제에 대해 누구보다도 철저히 탐구했다. 현대미술이란 기존 사회제도나 미술에 도전하여 새로움을 제시해야 한다는 뜻에서 그를 '현대미술의 아버지'라고 하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뒤샹의 레디메이드 작업이 동시대미술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이 점을 명확히 하는 것이 동시대미술의 특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수 있을 것이다. 뒤샹이 미술과 일상의 경계를 허물고 일상 대상에게 미술에 지위를 제공했다는 점, 그리고 미술이 미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 유수 비엔날레에 출품된 작품들과 형태상으로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뒤샹의 레디메이드가 동시대미술이 아닌 이유는 그 형태나 양식이 아니라, 미술을 바라보는 태도의 차이에서 찾을 수 있다. 모더니스트로서 뒤샹은 일상과 미술의 경계를 허물었지만, 다른 모더니스트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미술만이 제공할 수 있는 특별한 관념이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그는 그 특별한 관념을 산출하는 수단이 일상 사물이 될 수도 있고, 전통적인 매체도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이에 반해 동시대미술가들은 특별한 관념보다 소통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이들은 미술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에 관심이 없다. 다만 이들은 자신이 소통하고자 하는 특정 주제가 있고, 이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소통하는 방식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뒤샹은 자신의 레디메이드가 자신이 판단하기에 특정한 관념을 제공하는 데에 적합한지에 관심을 갖는데 반해, 동시대미술가는 관객들이 자신들이 사용하는 매체가 특정한 내용을 소통을 하는 데에 적합한지에 관심을 갖는다. 이들은 만약 관람객과 소통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 곧바로 다른 매체로 곧바로 변경할 것이다.

뒤샹은 당시의 부르주아 미술 제도를 비판하고 일상과 미술의 경계를 허물었지만, 미술가는 자신만의 특별한 관념을 제공해야한다는 모더니스트의 믿음을 공유하고 있다. 이에 반해 동시대미술가들은 자신만의 특별한 예술적 관념을 제공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들은 자신들의 작업을 목표에 적합한 표현 방식을 고민하는 광고 연출가나 방송국 피디의 작업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번 국립현대미술관 '뒤샹' 전시 리플릿 첫 페이지에 인용된 뒤샹의 진술이 그가 모더니스트라는 점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예술가라면 진정한 대중이 나타날 때까지 50년이고 100년이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바로 그 대중만이 제 관심사입니다." 이 글이 의미하는 바는 뒤샹은 자신의 예술 관념을 이해해줄 수 있는 관객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만약 동시대미술가라면 그러한 관객을 기다리지 않고, 그들을 이해시킬 수 있는 다른 매체나 스타일을 찾을 것이다. 장민한 〈조선대 미대 교수〉

국립현대미술관의 마르셀 뒤샹 전시 전경 .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의 마르셀 뒤샹 전시 전경 .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의 마르셀 뒤샹 전시 전경 .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의 마르셀 뒤샹 전시 전경 .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의 마르셀 뒤샹 작품이미지 .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