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노휘의 길 위의 인생 2> 여행자 보험도 들지 않고 유서도 쓰지 않았는데, 스쿠버 다이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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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노휘의 길위의 인생
차노휘의 길 위의 인생 2> 여행자 보험도 들지 않고 유서도 쓰지 않았는데, 스쿠버 다이빙
차노휘(소설가·도보여행가)
  • 입력 : 2019. 05.29(수) 10:45
  • 편집에디터

※ 편집자 주 : 2018년 12월 27일부터 그해 2월 19일까지 이집트 다합(Dahab)에서 55일 동안 머물면서 스쿠버다이빙 다이브 마스터(DM)가 되는 과정을 기록한 글이다. 물 공포증이 있던 필자가 고민해야 했던 훈련뿐만 아니라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에 대해 진지하게 되돌아봤던 시간들이었다. 견뎌냈을 때 발견한 것은 아름다운 미지의 세계뿐만 아니라 세상을 향한 여유였다. 생생한 체험(깨달음)을 12회 연재로 독자들과 나누고 싶다.

2-1. Octopus World Dahab Dive Center 다이브 마스터 훈련생들(DMT)과(필자는 왼쪽에서 두 번째).

1. 오픈워터 과정 첫 입수하는 날

스몰 사이즈 5mm 웨트슈트는 가슴과 옆구리를 조여 왔다. 약간 낀다 싶은 잠수복이 물 저항과 체온 유지에 적당하다고 했다. BCD(부력조절 조끼)와 공기통, 9kg 웨이트 벨트까지 허리에 감았다. 장비 무게만도 거의 30kg.

입수할 때는 바람이 불어 파도가 출렁거렸다. 가슴 깊이 수심에서 조이는 슈트를 입고 30kg 장비를 착용하고 핀을 신어야 했다. 균형을 잡지 못해 기우뚱했다. 옆에서 도와주는 다이브 마스터 훈련생이 없었다면 넘어졌을 것이다.

핀을 신었던 물속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강사가 먼저 시범 보이는 몇 가지 기술을 '제대로 따라 하는 것'이 첫 과제였다. 마스크에 물 찼을 때 물 빼기, 호흡기 빠졌을 때 호흡기 찾기 등을 통과하고는 다시 수면으로 올라왔다. 약 100m 떨어진 보트까지 킥을 차고는 두 번 왕복까지 했다.

문제는 가슴 높이에서 5m 수심으로 다이빙해서 내려갈 때였다. 수심 1m만 내려가도 압력 평형(이퀄라이징 ; equalizing)을 해야 한다. 수심이 깊어지면 주위 압력이 높아진다. 압력이 높아지면 공기 공간 부피가 줄어든다.

우리 몸에도 공기 공간이 있다. 귀, 폐, 사이너스(sinus), 치아 공간(사람마다 다르다), 마스크(장비). 아래로 내려갈수록 그곳은 작아진다. 주위 압력과 똑같이 유지시켜주지 않으면 '압착'이 생긴다. 압착은 조직을 손상시킨다. 몸 안의 공기 공간 압력보다 외부 압력이 높을 경우에 발생한다.

공기 공간이 제일 큰 폐는 풍선처럼 부드러워서 호흡만 멈추지 않는다면 자연스럽게 수축과 팽창을 반복한다. 사이너스와 귀는 그렇지 않아서(마스크는 별도로) 반드시 압력평형(이퀄라이징)을 해주어야 한다. 이론은 간단하다.

두 손가락으로 코를 막고 코를 풀 듯이 '킁' 하면 된다. 이런 작업은 귀 통증이 오기 전에, 2~3초마다 한 번씩 하강하면서 한다. 상승할 때 하면 역압착이 와서 되레 더 고통스럽다. 이론처럼 쉽게 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바로 '나'다.

코를 두 손으로 막고 킁, 하고 풀면 아무런 반응이 없다. 있는 힘을 다해 킁킁, 해주고도 턱을 좌우로 흔들어줘야 한다. 온 힘을 끌어 모아야하기 때문에 몸서리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을 연속적으로 반복해야 귀가 펑, 하고 뚫린다.

2. 저승사자 조나단

수심 깊은 바다(5m도 내겐 깊었다). 검푸른 빛깔의 두려움. 내 마스크 안에는 물이 자주 찼다. 호흡기가 빠질 것 같아 있는 힘껏 어금니에 힘을 주었다. 입술로 마우스피스를 제대로 덮지 못해서('우'를 잘하지 못했다) 바닷물이 들어왔다. 수영을 어중간하게 배워선지 코로 숨쉬기 바빴다. 아예 손가락으로 코를 틀어쥐어야 했다.

물속에서는 생래적으로 불안하고 긴장됐다. 서너 가지가 한꺼번에 되지 않았다. 마스크 물을 빼면 호흡기를 꽉 깨물고 있는 턱이 아팠다. 코를 쥐어 잡고 있는 왼손 검지와 엄지로 인플레이터까지 눌러야 했다. 이퀄라이징이 잘 되지 않아 몸서리치듯 코를 풀고 치아를 흔들고 나면 코로 숨을 쉬고 있었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가슴은 답답하기만 했다. 급기야 호흡곤란증까지 일었다. 입속으로 바닷물이 수시로 들어왔다. 바닷물이 짜다는 것을 처음 안 사람처럼 기겁했다. 앞서가는 조나단(강사 예명)에게 가슴을 주먹으로 치면서 손가락으로 위로 올라가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는 안 된다고 손사래를 쳤다. 나는 부력조절기(BCD) 인플레이터를 연거푸 눌렀다. 더 이상 물속에 있다가는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다. BCD에 공기가 찼고 상승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그가 나를 잡았다.

'교육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단 말이야. 일단 살고 봐야지?'

이렇게 외쳤지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를 떼어내고 올라갔다. 그가 또 잡았다. 조나단은 분명 저승사자였다. 5m 수심에서 보트 밧줄을 잡고 올라가고 있는 내 발목을 자꾸만 잡아챘다. 그럴 때마다 사정없이 나는 발길질을 해야 했다. 교육이 아무리 중요하다지만 교육생도 하나뿐인 목숨이었다. 번거로운 호흡기도 떼어 버리고 스쿠버 장비도 던져버리고 해안까지 수영을 해서 달아나고 싶었다. 수면에 도달했다. 조나단도 곧이어 떠올랐다.

"갑자기 수직 상승하면 감압병이 생긴다는 것? 모르나요? 5m 정도이니 괜찮지 15m면 진짜 큰일 나요?"

그는 좀 상기되어 있었다. 그의 표정을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되받아쳐서 물었다.

"그럼 15m도 들어가나요?"

"내일 들어가야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여행자보험도 들지 않았고 유서도 쓰지 않았다. 이렇게 먼 나라까지 내가 죽으려고 온 것은 아니었다. 오픈워터 교육 시작하기 전에 작성했던 서류가 떠올랐다. 스쿠버 다이빙은 위험한 스포츠라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으며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강사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 라는 문구에 교육생이 서명하도록 되어 있었다.

'네게 책임을 묻지 않아도 되니 이렇게 강압적으로 진도를 빼도 된다는 거지?'

속에서는 강사를 향한 짜증이 부글부글 올라왔다. 열심히 살면서 하고 싶은 것 하다가 여한 없는 한 사람이 죽었다, 이런 비문 하나 남기는 것이 고작인가. 무모하게 죽고 싶지 않았다.

3. 장비도 강사도 믿자!

밤새 자는 둥 마는 둥 했다. 아침 알람이 울리자마자 한국에 있는 스쿠버 다이빙 마스터인 J에게 톡을 보냈다. 한국과 이집트는 7시간 차이가 난다. 이집트가 아침 여섯 시면 한국은 점심시간이다.

"기초훈련 수영장에서 며칠?"

"2~3일. 개방수역 가서 하루. 풀 다이빙 코스에서도 하고."

'그렇다면 내가 그리 못하는 것도 아니네? 고작 한 시간 물속에서 테스트받고 갔으니.' 자존심상 J에게 입수 첫날 물 밖으로 나왔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J가 덧붙였다.

"이퀄라이징은 컨디션에 따라 다르니 술 마시지 말고 아침에 가볍게 운동하고…… 장비를 믿고."

"강사 쌤도 믿으란 말이지?"

J에게 고맙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숙소를 나섰다. 아침 일찍 해안가를 따라 왕복 6km를 달릴 예정이다. 가볍게 운동을 하라고 했다.

화려한 전등, 음식 냄새를 풍기며 종업원들이 길거리 손님을 유혹하는 저녁과 달리 아침 해안가는 화장 지운 여인네처럼 순박했다. 소파에 고양이나 개가 나른하게 앉아서 나를 본체만체했다.

'내 돈 내고 지금 뭣하고 있지? 당장 때려치워?'라고 노골적으로 고민했던 것과는 달리, 달릴수록 호흡은 편안해졌다. 3km 지점에서 스트레칭을 하며 황금알 같은 해가 햇무리에서 솟아오를 때는 근거 없는 확신까지 들었다. 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기에 유언장 같은 것은 쓸모없다고.

2-2. 인근 바다(Lighthouse) 수심 7.6m~8.4m에 있는 사각틀. 모든 다이브 마스터 테스트를 통과한 다음에 찍은 모습이다.

2-3. ATM이 있는 다합 새벽 거리.

2-4. 숙소 입구에서 느긋하게 쉬고 있는 개.

2-5. 다합은 개와 고양이들의 천국이다. 아침식사도 고양이와 겸상을 할 때가 있다.

차노휘 (소설가, 도보여행가)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