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들이 '스스로' 일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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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공무원들이 '스스로' 일하는 나라
오선우 사회부 기자
  • 입력 : 2019. 09.16(월) 17:18
  • 오선우 기자
오선우 사회부 기자.
지난달 27일 찾았던 중앙공원. 서구에서만 20년째 살고 있는 기자로서는 변함없는 공원의 모습이 그다지 반갑지 않았다.

20년 동안 변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한결같이 근처는 쓰레기로 더러웠으며, 산책로는 울퉁불퉁했고, 표지판과 운동 기구는 낡아 있었다.

사실 이전까지는 관심이 없었다. 인정한다. 어렸을 때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져 무릎이 까졌어도, 뿌리가 드러나 기우뚱거리는 벤치를 좋다고 흔들어댔을 때도 별 생각이 없었다.

성인이 된 후에도 예비군 훈련을 위해 지난 6년간 매년 두 번씩은 올랐을 이곳이, 기자라는 안경을 쓰고 보니 비로소 '방치'됐다는 걸 느꼈다.

80대 어르신이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져 다리뼈에 금이 가고 나서야 문제라고 생각한 것이다. 구청에 전화해보니 들려오는 건 이런저런 핑계들.

"나무뿌리를 자르면 성장에 방해됩니다."

별안간 기자가 전화로 닦달하니 그랬을 테지만, 납득할 만한 다른 핑계는 없었나 싶다.

'나무뿌리에 사람들이 넘어지는 건 되고요?'라고 생각했지만 부서에 온 지 한두 달 됐다는 담당자의 마음도 이해가 된다. 그보다 나무뿌리가 삐져나오면 잘라내는 것밖엔 답이 없는 것인지에 대한 물음이 꼬리를 문다.

다른 담당자와 이야기를 해보니 중앙공원이 미조성 공원이라 관리가 어렵기도 하고, 민간공원 특례사업이 시작되면 대대적으로 개선될 거라고 답했다.

미조성 공원이면 관리를 안 해도 되느냐고 물으니 그건 또 아니라고 하면서도, 언제 시행될지 알 수 없는 잡음 많은 특례사업을 방패 삼아 답변을 감추는 게 역력해 보인다.

애초에 '나무가 상하니까', '사업이 곧 시작되니까'라는 변명이 관리 부실의 면죄부가 될 수 있는 것일까? 조사라도 나와서 근무 태만이라고 낙인 찍히면 그제야 후회할 건지?

지난 7월 기사화했던 매월동 인도 실태 역시 십수 년 동안 버려진 문제였다.

당시에도 "현장에 나가보긴 했는데 올해 예산이 없어 내년에 반영하겠다"는 답변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막상 기사가 나간 후에는 반응이 달랐다. 남는 예산으로 일부분 공사한다며 지난달 인도 두 블록을 깔았다. 나머지는 예산을 확보해 내년에 진행하겠다고 한다.

공사 소식에 뭔가 하나 해냈나 싶으면서도, 꼭 싫은 소리를 해야만 움직이는 이들에 대한 실망감도 컸다.

알아서 할 순 없을까? 특별한 것도 아니고 다 자기네들 업무인데.

서구뿐만이 아니다. 다른 구청이나 시청도 매한가지.

물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시키지 않아도 현안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공무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혹여 이 글을 읽고 기분이 상한 공무원이 있다면 가슴에 손을 얹고 한 번쯤 생각해봤으면 한다.

지난날 컵라면에 삼각김밥 씹어가며 합격만을 바라 마지않았던 한 공시생의 간절함이 마음 한켠 어디께 남아있는지. 혹은 귀찮음에 걸려오는 민원 전화를 받지 않거나, 구민들이 토로하는 불편사항을 허투루 넘긴 적은 없는지 말이다.

오선우 기자 sunwoo.oh@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