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영의 그림 큐레이션 > 시간, 작품을 만들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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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영의 그림 큐레이션
문희영의 그림 큐레이션 > 시간, 작품을 만들어가다.
볼프강 라이프 (Wolfgang Laib, 1950~, 독일生), 느린 시간의 축적, 예술로 남다.||윤연우 (1985~, 광주生), 근면한 시간, 작품이 되다.
  • 입력 : 2019. 10.22(화) 15:11
  • 편집에디터

작품이 만들어지는 시간, 또 다른 의미를 낳다.

'스마트'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시간'은 어떤 의미일까. 가상현실은 시공간을 넘어서게 했고, 우리는 현재의 시간뿐 아니라 지구 저편 다른 시간도 함께 공존할 수 있게 되었다. 시공간의 확장은 더 '빨리'를 외치게 했고, 더 '피로한' 일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필자 또한 하루에도 수업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여러 개의 일을 수행하며 살아간다. 예술가들에게 시간은 어떤 매개체가 될까. 현대로 넘어오면서 셀 수없이 다양해진 작품제작방식, 더 새롭고, 더 신기한 무언가를 좆는 이들도 많겠지만, 도리어 뒷걸음질 치듯 다시, 느리게 담아낸 시간으로서만 가능한 작품이 있다. 그 수고로운 시간을 마다하지 않고 천천히 담겨진 시간의 흐름은 작품을 마주하는 우리들에게 다시, 느림의 미학에 대해 묻는다.

느린 시간의 축적, 예술이 되다.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할 말을 잃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난 1997년 제2회 광주비엔날레에서 이 작품을 처음으로 보았었다. 전시장을 꽉 채운 수많은 작품들 사이로 선명한 노란색은 빠르게 시지각을 파고들어 온 몸의 전율을 선사했다. 어떻게 그런 노란색이 있을 수 있는지 보고 또 봤지만, 과연 무엇으로 만들어진 것인지는 한참 후에서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고서 또다시 경이로움이 일었다. 독일 작가 볼프강 라이프(Wolfgang Laib, 1950~)의 작품인 <꽃가루(Pollen)>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주재료인 노란 꽃가루는 작가가 직접 채취한 것이다. '빨리'가 보편화 된 현대 시대의 습속을 벗어난 일이다. 작가는 직접 작은 유리병 하나 들고 나무들 사이를 누빈다. 작은 먼지 한 톨만큼의 꽃가루는 아주 천천히 쌓여가고, 작가는 수행하듯 숲과 초원을 누비며 재료를 조심스럽게 자연에서 옮긴다. 꽃가루 뿐 아니라 솔잎, 우유, 쌀, 밀랍, 대리석과 같은 자연 그대로의 유기물들이 작품의 주재료가 된다. 그리고 작품의 중심엔 재료를 넘어 작가 스스로의 노동이 가장 중요하고도 굳건하게 자리한다. 재료를 구하는 긴 시간의 노동, 직접 그 재료들을 전시장에 옮겨놓는 노동, 꽃가루는 한 줌, 한 줌 모두 체에 걸려져 곱디 고운 색으로 남게 되고, 쌀도 일정한 양과 일정한 간격으로 전시장 바닥에 놓여진다. "예술은 나에게 수행이자 명상"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작품을 보는 순간 숙연해짐을 경험케 한다. 작품이 되기까지의 느린 시간은 아주 깊은 호흡으로 다가온다. 스쳐가는 눈으로는 볼 수 없던 꽃가루의 아름다운 노란색, 찰랑거리는 우유의 가볍고도 투명함, 쌀 한 줌의 질서, 우리가 볼 수 없는 것들이다. 작가는 유한한 생을 사는 인간에게 무한한 자연의 경이로움을 선사한다. 작가의 고된 인고의 시간, 명상과 수행의 반복이 없었더라면 느낄 수 없는 것들이다. '스마트'하고 '빠르게'를 반복하는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어디에 있는지 다시 되새겨보게 한다. 볼프강 라이프의 꽃가루 작품은 1982년 카셀 도큐멘타에서 처음 발표되었으며, 같은 해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에서는 1997년과 2012년 광주비엔날레, 2003년 국립현대미술관(과천)에서 전시되었다. 작가는 원래 의학을 전공한 의학도였으나, 진로를 변경하여 예술가의 길로 들어섰다. 의학도로서 삶과 죽음의 순환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은 자연스레 자연의 순환으로 옮겨졌고, <꽃가루>와 같은 작품이 나오게 된 것이다.

작품을 설치하고 있는 볼프강 라이프 사진출처 https://www.moma.org/calendar/exhibitions/1315

<꽃가루> 작품을 설치하고 있는 볼프강 라이프

사진출처 https://www.moma.org/calendar/exhibitions/1315

사진출처 https://marymacgregorreid.wordpress.com/2015/11/12/wolfgang-laib/

2013 MOMA 전시전경

사진출처 https://www.moma.org/calendar/exhibitions/1315/installation_images/7936

근면한 시간, 작품이 되다.

윤연우 작가는 직조(타피스트리) 작품을 만들어간다. 작은 화면 속에는 동물과 주변 인물의 이미지가 대부분이다. 동물을 소재로 한 작품은 일러스트 원화를 다시 타피스트리 작업으로 재현하고, 다시 추상적 이미지로 재현되었다. 주변의 인물들부터 동물들의 모습, 일상의 드로잉까지 다양한 이미지들은 시실과 날실의 수없는 교차가 이뤄지고 나서야 완성작이 된다. 작품을 처음 본 순간, 탄성이 나왔다. 동물들의 사랑스런 '이미지'와 '실'이라는 재료의 포근한 느낌을 넘어 작가의 손이 움직였을 시간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몸의 노동이 행해진 고단한 시간 앞에 다른 해석이 필요치 않았다. 도리어 작품을 설명하려는 언어들이 불필요했다.

굉장한 수고로운 과정이다. 첫 번째 단계로 드로잉의 과정, 이를 바탕으로 타피스트리 작업을 진행해 갈 도안을 만든다. 화면 가득 교차하는 씨실과 날실들이 정확한 자리와 정확한 색으로 머물기 위해서는 철저한 계획인 동반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직물노동'의 단계이다. 가로 세로, 색색의 실들은 천천히 제 자리를 꿰어간다. 한 올라도 다른 색이 올라간다면 모두 해체되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작가 스스로 '근면한 시간'이라 말하는 그 농축된 시간과, 손이 일궈낸 세심하고도 정성스런 과정들은 인간이 만든 예술품이 어떻게 다시 인간에게 감동을 전하는지 증명하듯 보여준다.

디지털 매체로 많은 작업들까지 수행할 수 있는 작가는, 도리어 진짜 자신의 예술작품에 다가갈 때는 철저하게 아날로그적 노동의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기계의 힘을 빌어 쉽고 편한 길을 가기보다는 음미하고 되새기듯 천천히 제작되어가는 과정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빠르게 한순간 보여지는 이미지가 아닌 손에서 마음에서 숙성되어가는 이미지들이기에 다시 감동의 순간을 선사해주는 건 아닐까.

윤연우作_청설모(앞면)_2018_cotton yarn_29.6x40cm_(원화.곽수진)

윤연우作_청설모(뒷면)_2018_cotton yarn_29.6x40cm_(원화.곽수진)

윤연우作_청설모(앞면과 뒷면)_2018_cotton yarn_29.6x40cm_(원화.곽수진)

윤연우作_청설모_2019_cotton yarn_55.5x73.5cm

윤연우作_청설모_2019_cotton yarn_55.5x73.5cm

느릿하고도 올곧은 시간의 무게, 작품을 완성시키다.

작품들은 다양한 작가들만큼 다양한 재료들이 있고, 많은 작가들은 새로운 재료에 탐닉한다. 눈에 보이는 재료부터 가상의 공간을 유영하는 재료들까지 유한하고 무한한 물성들과 새로운 제작방식은 예술을 끝없이 변화하고 진화해가게 만든다. 허나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것은 작가의 '생각'과 '손'임에 틀림없다. '스마트'한 세상을 살고 있는 현재와 어울리지 않게 천천히 느릿하고도 올곧게 작품을 수행해가는 두 작가, 서두르는 시간에서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것들은 작품 안에 천천히 올곧게 담겨졌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다시 겨울이 오듯 세상만물이 변화해도 변하지 않는 것처럼, 손의 수고로움, 몸의 수고로움이 행한 작품이 주는 감동을 천천히 음미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 윤연우 작가는 예술공간집의 추천작가로 오는 10월 28일부터 11월 7일까지 첫 개인전이 개최된다. 작가의 근면한 시간이 만든 작품과 함께해보는 건 어떨까.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