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 2020년 경자년 흰쥐의 해 첫날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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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기획
신년특집> 2020년 경자년 흰쥐의 해 첫날 아침에
이윤선 (사)한국민속학술단체연합회 회장·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남도민속학회 회장
  • 입력 : 2019. 12.30(월) 18:54
  • 편집에디터

어떤 집에 아들이 하나 있었다. 혼기가 되어 며느리를 얻었다. 혼인 하자마자 아들이 외국으로 가서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혹은 아들이 공부는 안하고 색시하고만 있으려하자 부모가 나무랐다. 화가 난 아들이 절로 삼년공부를 떠난다. 색시는 독수공방 살아간다. 어느 날부터 색시방에 쥐가 들락날락 했다. 밥을 주어 길렀다. 쥐가 점점 자라더니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일 년 혹은 여러 해가 지나고 진짜 아들이 돌아왔다. 자기하고 똑같이 생긴 사람이 아들, 남편노릇을 하고 있었다. 서로 자기가 진짜라며 싸우게 되었다. 쥐남편은 부엌 숟가락 개수며 서까래 개수까지 다 알고 있었다. 물으면 물을수록 진짜 남편이 불리하였다. 결국 쫓겨나게 되었다. 하는 수 없이 도승을 찾아갔다. 해법을 알려주었다. "우리 절에 수십 년 묵은 고양이가 있으니 도포자락에 넣고 가면 해결될 것이오." 남편이 도포자락에 고양이를 숨기고 다시 집을 찾았다. 가짜남편과 싸우다가 도포자락에 숨긴 고양이를 꺼냈다. 집에 있던 남편을 물어 죽였다. 빨간 쥐였다. 그제서야 부모가 며느리에게 말했다. "그래 쥐좆도 몰랐단 말이냐?"

<말하는 골방쥐> 혹은 <쥐좆도 모른다>라는 제목으로 구술 채록된 설화 대목이다. 이 유형의 이야기는 '한국구비문학대계'에 37종이나 채록되어 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 인도, 베트남 등에서도 전해지는 일종의 광포설화(廣布說話)다. 종류가 많다보니 이야기의 구성이 조금씩 달라지기도 한다. 일상적으로 사용했던 관용어구이기도 하다. 새해 첫날 아침, 민망하고 난삽한 쥐 얘기로 말문을 여는 까닭은 올해가 쥐의 해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무려 흰쥐의 해, 이른바 경자년(庚子年)이다. 왜 흰쥐의 해일까?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하늘의 수와 땅의 수를 정하여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삼았다. 하늘의 수를 열 개의 천간(天干), 땅의 수를 열 두 개의 지지(地支)로 삼았다. 이를 교직하니 육십갑자다. 하늘의 수 경(庚)은 일곱 번째의 수, 강철금이다. 오행상으로 흰색이고 서쪽이다. 땅의 수 자(子)는 12지지 중 가장 첫 번째, 쥐다. 우스개 한 마디, 땅의 수를 만들 때 유무형의 짐승들에게 선착순을 시켰다. 우직한 소가 게으름 피우지 않고 달려 맨 앞에 들어왔다. 결승선을 들어오려는 찰나, 약삭빠른 쥐가 소 등 뒤에 몰래 타고 오다가 폴짝 뛰어내렸다. 쥐가 최종 일등이 되었다. 혈액형이나 띠로 성격이나 운수를 따지는 일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겠지만, 쥐띠가 머리가 좋다는 언설의 기저에는 이처럼 머리회전이 빠르다는 뜻을 포함한다.

1428년 세종실록 42권(세종 10년), "임금이 대언에게 이르기를, 윤봉의 말에 의하면 지금 황제께서 상서를 너무 좋아하여 백서(白鼠, 흰쥐), 백토(白?)까지도 모두 길들여 기르면서 애완(愛翫)하신다 하니, 만약 이번에 바치는 흑호와 백안, 그리고 해청을 보신다면 심히 기뻐하실 것이다"라고 했다. 세종대왕이 흰 동물을 상서로운 동물로 여기고 사랑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래서일까. 흰쥐의 해 경자년에 큰 인물이 난다는 풍설이 있다. 오행상 강한 기질의 쇠붙이 금(金)과 땅의 수를 시작하는 쥐(子)가 합해지니 그런 기대심리가 생겼을 것이다. 벨기에 루벵가톨릭대 소속 벤 베르메르케의 실험을 보면 어떤 경우에는 쥐가 인간보다 더 똑똑할 수 있다고 한다. 메사츄세스 캠브리지 화이트헤드 연구소 에릭 핸더 소장은 사람 유전자의 약 99%가 쥐와 흡사하다고 말한다. 가짜남편과 진짜 남편 설화가 광범한 지역에 괜히 전승되는 게 아닌 모양이다. 실험용 동물로 쥐를 선호하는 것은 인간과 면역체계와 신체구조가 같기 때문이다. 인류와 가장 가까운 동물이라는 뜻이다. 쥐와 관련된 설화뿐만 아니라 속담만 해도 수십 가지가 넘는 이유도 여기 있을 것이다.

불교설화 한 토막, 옛날 어떤 사람이 광야에 나갔다가 미친 코끼리 한 마리를 만났다. 크게 놀라 도망치다가 옛우물로 뻗어 내려간 등나무 넝쿨을 잡고 몸을 숨겼다. 그런데 아래를 내려다보니 네 마리의 독사가 혀를 널름거리고 그 가운데는 무서운 독룡이 독기를 내뿜고 있었다. 미친 코끼리가 내려다보고 있으니 나갈 수도 없고 독사 우글거리는 수렁으로 내려갈 수도 없는 상황, 더군다나 등나무 넝쿨을 흰쥐와 검정쥐가 번갈아가며 갉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데 우물 밖 하늘을 보니 몇 마리의 꿀벌들이 집을 짓느라 날아다니다 꿀 몇 방울을 떨어뜨렸다. 생사의 갈림길임에도 꿀 몇 방울 입에 닿자 모든 것을 다 잊어버렸다. 생사와 명줄 등 풍파 속에 살아가는 인생을 비유한 설화다. 흰쥐와 검정쥐는 낮과 밤, 해와 달로 비유된다. 인생무상을 광야와 옛 우물의 미망으로 비유하였다. 그렇다고 비관적일 필요는 없다. 남도지역 강강술래 여흥놀이에 쥔쥐새끼 놀이가 있다. 앞사람의 엉덩이를 잡고 줄지어 따라가는 놀이로 꼬리따기라고도 한다. 들쥐새끼들이 어미쥐를 줄지어 따라가는 모양을 흉내 낸 놀이다. 흔히 다산과 풍요의 상징으로 해석한다. 배가 파산하기 전에 쥐들이 먼저 나간다 해서 영물로 취급하기도 한다. 항간에 흰쥐의 해를 표방하는 카피나 일러스트들이 회자된다. 새해 복 많이 받쥐! 2020년 대박이쥐! 건강 해야쥐! 잘 살아 봐야쥐! 한동안 SNS 등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며 주거니 받거니 할 것이다. 올해 총선이 있으니 혹자들은 흰쥐의 해 큰 인물론으로 사람들을 현혹하려들지도 모르겠다. 우려한다. 쥐새끼 같은 가짜남편이 내 집을 차지하고 진짜 노릇을 하는 것은 아닐지, 내 거둬놓은 곡간의 곡식을 허투루 써버리는 것은 아닐지. 어느 날 가짜남편이 진짜라고 우길 때를 대비해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울까? 그것보다는 가짜보다 더 명료하게 내 집의 숟가락이나 서까래 숫자를 익혀두어야 하지 않을까. 설화의 행간을 읽는 지혜가 필요하다. 옛우물에 든 무망한 삶일지라도, 불필요한 에너지 쏟는 희망고문만 아니라면 육십갑자 서른일곱 번째 2020년 흰쥐의 해는 보다 더 살만한 세상일 것이다. 그렇쥐? 세상은 살 만한 것이니 다시 용기를 내야쥐!

이윤선 (사)한국민속학술단체연합회 회장·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남도민속학회 회장

김해성 서양화가

조선대학교미술대학및동대학원졸업

개인전23회 단체전600여회

조선대학교평생교육원전담교수

한국미술협회이사 선과색회원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