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이슈 32-2> "승희가 꿈꾸었던 세상 남은 사람들이 만들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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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이슈 32-2> "승희가 꿈꾸었던 세상 남은 사람들이 만들어야죠"
박승희를 기억하는 사람들||91년 4월29일 그곳에 있었던 3인||전일빌딩245 시민갤러리 추모전
  • 입력 : 2021. 05.02(일) 18:16
  • 김해나 기자

박승희 열사가 전남대 재학 당시, 활동했던 용봉교지 학생들과 함께. 박승희 열사 분신항거 30주기 추모행사위원회 제공

1991년 봄은 누군가에게 잊을 수 없는 계절이 됐다.

자기 한 몸 불태워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겠다던 박승희 열사는 '전남대 2만 학우들과 항상 함께하고 싶다. 교정에 코스모스 씨를 뿌려달라' 말을 남겼고 그 계절은 저물어 갔다. 전남일보는 그 계절을 기억하는 이들을 만나 그때의 이야기를 들었다.

●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오영상 당시 사진기자

"30년이 지났지만, 박승희 열사를 생각하면 먹먹한 맘이 커요. 기록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미안함의 감정이 섞여 결국 추모식도 한번을 못 갔네요."

당시 전남일보 사진기자였던 오영상 씨는 1991년 4월을 가장 뜨거웠던 계절로 기억하고 있다. 강경대 열사가 경찰의 폭력진압으로 목숨을 잃고 대학에서는 연일 노태우 정권 퇴진을 외치는 시위가 이어졌다.

오 씨는 "그날은 학내시위만 계획돼 있어 교내에 있었는데, 한 학생이 분신했다. 나중에서야 식품영양학과 박승희라는 사실을 알았고 전남대 학생들은 울부짖었다"며 "곧은 심지로 '만세'하고 외치던 기억이 난다"고 회상했다.

박승희 열사를 태운 차를 따라 오 씨도 취재 차를 통해 응급실로 향했다. 오 씨는 "조선대를 지날 즈음 보니 시위가 벌어진 상태였는데, 내가 탄 취재 차량이 응급 상황임을 알리기 위해 쌍라이트를 켜고 창밖으로 손수건 흔들었다. 시위가 순간적으로 중단됐고 빠르게 이송시킬 수 있었다"고 말을 이었다.

오 씨가 찍은 사진은 통신을 타고 전국에 전송됐다. 한겨레 1면에 실렸다. 모두가 특종이라고 입을 모았다. 오 씨는 괴로웠다. 오 씨는 "사람 목숨 사이에서 사진 한 장을 찍어야 한다는 것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며 "모두가 기자상을 받을 거라고 했지만, 죄책감에 회사를 그만 두기로 했다"고 말했다.

● 치료 담당했던 심재연 당시 전대병원 수간호사

1991년 당시 전남대병원 수간호사였던 심재연 씨는 지금은 은퇴해 의료현장을 떠났지만, 아직도 박승희 열사가 가진 민주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심 씨는 "응급실에서 처치를 마치고 중환자실로 옮겨진 이후 환자의 외부 감염, 통증을 최대한 막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병원에서도 시위현장에서 학생 한 명이 이송됐다면서 위중한 사안으로 봤다"며 "지금 기억으로 전신 화상 정도가 심했음에도 정신만큼은 명료했다. 병문안 오는 친구들과 의사소통을 하면서 오히려 친구들을 위로했던 친구였다"고 말했다.

박승희 열사를 생각하면 여전히 숙연해진다. 심 씨는 "광주에서는 학생들이 전면에 나서 민주화운동을 이끌어 나가던 상황이었는데 사회인으로서 그들에게 존경스러운 맘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박승희 열사는 누군가 희생이 필요하다면, 자기가 나서는 용기를 보여줬다. 민주화에 대한 확고한 목표와 심지에 지금도 마음이 숙연해진다"며 "이념을 위해서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을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고 전했다.

박승희 열사는 전남대 가정대학 식품영양학과에 입학했다. 박승희 열사 분신항거 30주기 추모행사위원회 제공

● 박승희 열사 추모 사진전 마련한 김태성 당시 전남대 학생기자

"승희가 말했던 세상을 남은 사람들이 잘 만들어가고 있는지 항상 생각하고 다짐해야죠."

당시 전남대 학보사에서 학생기자로 활동했던 김태성 씨도 그날을 잊을 수 없다. 김 씨는 "승희가 왜 죽었을까, 내가 살릴 수 있었을까, 고민으로 밤을 지새우던 날도 있었다"며 "승희는 우리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내가 목숨을 바칠 테니 살아남은 자들이 잘 좀 하라고. 학생운동 했던 때보다 더 잘해야 하는데, 그런 다짐이 생긴다"고 말했다.

박승희 열사의 마지막을 기록했다는 짐은 그녀의 흔적을 세상에 남기는 일로 이어졌다. 박승희 열사의 죽음 이후, 해마다 진행됐던 추모식을 기록했고 거리에서 펼쳐졌던 투쟁 현장도 필름에 담았다. 그렇게 20주기였던 지난 2011년 '꽃들의 봄을 부르는 해방의 코스모스'라는 제목의 박승희 열사 추모사진집이 세상에 나왔다.

올해 30주기에는 '다시 꺼내놓은 1991년 봄의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추모 전시회를 마련했다. 전시회는 오는 14일부터 30일까지 전일빌딩245 3층 시민갤러리에서 볼 수 있다.

김해나 기자 min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