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을 만든 바다… 끝나지 않은 인류의 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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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을 만든 바다… 끝나지 않은 인류의 항해
  • 입력 : 2022. 02.06(일) 16:02
  • 이용환 기자

지난해 3월, 1주일여 가까이 수에즈 운하를 막으면서 인류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혔던 컨테이너선 에버 기븐(Ever Given)호가 수리를 위해 중국 칭다오 항에 입항해 있다. 뉴시스

바다 인류. 휴머니스트 제공

바다 인류

주경철 | 휴머니스트 | 4만6000원

지금까지의 역사는 대륙 문명과 농경 문명에 지나치게 집중됐다. 그렇다면 지구 표면의 71퍼센트나 차지하는 바다는 인류에게 삶을 제약하는 장벽이기만 했을까.

서울대 서양사학과 주경철 교수가 쓴 바다인류는 바다의 관점에서 선사시대부터 가까운 미래까지 인류의 여정을 재해석한 책이다. 조금만 시선을 넓히면 바다는 훨씬 역동적이고 다채로운 역사를 갖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현생인류 호모 사피엔스가 세계 각 대륙과 대양의 수많은 섬으로 옮겨 갈 수 있었던 것은 바다를 통해서였다. 오스트레일리아와 아시아로 넘어가 대형 동물들과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키고 지구의 지배종이 될 수 있었던 인류사의 시작부터 그 무대는 바다였다.

태평양과 인도양은 선사시대와 고대 내내 멀리 떨어진 문명권을 서로 연결해 영향을 주고받게 하고 때로는 방향을 바꿔 서로를 점령하게 하는 토대였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문명의 영향을 받은 그리스와 이를 더욱 발전시킨 로마제국이 서구 문명의 모태가 됐다는 건 기존 대륙의 역사로도 익히 알 수 있다. 지중해에 초점을 맞추면 도시국가 로마가 바다를 정복했기 때문에 카르타고(페니키아의 식민시)와의 포에니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지중해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다.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른 비단길(실크로드)을 인도양을 관통하는 해상 실크로드로 넓히면 아시아 문명이 더욱 역동적으로 읽힌다.

말레이반도에서 중국을 넘어 한반도까지 거대한 땅덩어리가 이어진 한쪽과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일본 등 열도가 주변 바다와 어우러진 다른 쪽으로 아시아를 나눠, 두 바다가 어떻게 연결됐는지도 결국 바다로 설명된다. 당 제국이 페르시아와 대규모 교역을 하게 되고 인도양 네트워크로 본격 편입될 수 있었던 해상력은 아시아 주요 국가의 근대뿐만 아니라 현대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바다가 경계가 아니라 고속도로가 되는 대항해시대의 흐름도 파나마 운하가 계기였다. 특히 미국은 이 운하를 이용해 경제와 군사 양면에서 급속하게 성장했다. 수에즈 운하가 영국의 시대를 열었다면 파나마 운하는 미국의 세기를 열었다.

이런 바다를 보고 저자는 희망과 공포가 어우러진 곳이라고 표현한다. 인류가 수송, 어업, 자원 채취, 정보 이동 등 바다를 광범위하게 이용하면서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지만 바다의 경고도 듣기 때문이다.

당장 강대국의 엄청난 군사력이 바다 위에서, 바닷속에서 충돌할 가능성, 우리를 둘러싼 해상 공간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전쟁 무대가 될 위험에 처해 있다. 밀수와 해적이 활개를 치며 바다를 악용하고 과도한 남획, 수천만 척의 선박으로 인한 공해, 육지에서 바다로 떠밀려와 거의 대륙 크기로 커지고 있는 쓰레기 섬, 해수 온도 상승과 산성화도 인류의 생존을 위협한다. 아마도 인류가 멸망한다면 바다에서 비롯될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100억 명까지 증가할 인구를 먹여 살릴 식량 문제를 해결하고, 교역을 활성화하며, 각종 주요 자원을 얻고, 산업 발전을 촉진시키는 등 바다의 희망은 여전하다.

미국의 생물학자 레이첼 카슨은 "바다는 설령 나쁘게 변한다 해도 끝내 존속하지만, 정작 위험에 빠지는 쪽은 생명 그 자체"라고 했다. 바다를 학대하는 인류에대한 경고다. 수많은 미래학자나 석학의 전망이 아니더라도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바다가 중요해지고 있다는 점은 누구나 인식하고 있다. 바다를 희망으로 만들지, 아니면 공포의 대상으로 할지 이제는 인류가 선택할 차례다.

이용환 기자 yhlee@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