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펑크> 스팀펑크로 가득찬 조선은 벨에포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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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펑크> 스팀펑크로 가득찬 조선은 벨에포크일까
  • 입력 : 2022. 04.14(목) 17:09
  • 양가람 기자
그래픽=서여운 편집디자인
국사책을 펼치면 19세기말 조선의 혼란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세도정치시기엔 지역차별과 삼정의 문란으로 굶주린 백성들이 많았고, 민란도 끊이질 않았다. 고종 즉위 이후 흥선대원군 섭정기엔 쇄국정치로 '고립된 나라'가 되었다. 만약 이때 나라 빗장을 열고 외국의 문명과 각종 기술을 받아들였더라면 오늘날 우리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세계사 교과서에는 동시기 많은 기술적 발전을 이뤄낸 서구의 모습이 담겨있다. 1859년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을 통해 자연 선택에 의한 생물 진화를 제시했고, 1861년 루이 파스퇴르는 '자연발생설 비판'에서 발효와 부패는 미생물에 의한 것임을 밝히며 백신을 통한 전염병 예방법을 확립했다. 생물학의 발전에 힘입어 사망률도 감소해 19세기 유럽의 인구는 2억여 명에서 4억여 명으로 두 배나 증가했다.



이 시기를 '벨 에포크'라 지칭하기도 한다. '아름다운 시절'이란 뜻의 벨 에포크(Belle Epoque)는 주로 19세기 말부터 제1차 세계 대전(1914년) 발발 전까지 프랑스가 사회, 경제, 기술, 정치적 발전으로 번성했던 시대를 일컫는다. 빅토리아 여왕 재위 시절과도 겹치는 이때는 평화로운 '유럽형 유토피아'로 불린다.



영화나 애니메이션, 문학에서 벨 에포크는 과학기술의 발전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찬 '스팀 펑크(steampunk)'적 상상력으로 묘사돼 왔다. 그래선지 스팀펑크 작품에선 밝고 유쾌한 분위기가 흐른다. 과학기술의 미래에 대한 불안을 그린 사이버펑크의 디스토피아적 분위기와는 대조적이다.



만약, 19세기 조선이 '벨 에포크'로 기억된다면 어떤 모습일까?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헤르미온느는 '타임터너'를 활용해 과거로 돌아가 수많은 강좌를 들으며 공부했다. 지난 2014년 아시아 최초로 서울에서 열린 '스팀펑크 아트전'에서는 헤르미온느의 '타임터너' 목걸이가 불티나게 팔렸다고 한다. 그만큼 '타임터너'는 아날로그적이면서도 기계적인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스팀펑크적인 아이템'이다. 만약 우리 목에 '타임터너'가 걸려있다면, 스팀펑크로 가득찬 19세기 말 조선을 상상하며 모래시계를 뒤집어보자.



조선시대 한양의 어느 작은 마을. 밥짓는 연기 대신 증기를 내뿜는 고철덩어리들이 곳곳에 널브러져 있고, 마을의 대다수는 소작농 대신 대장장이나 기술자, 수리공이다. 아이들은 냇가에서 멱을 감기보다 증기 기관차에 몸을 싣고 들판을 가로지르는 걸 더 좋아한다. 연 대신 소형 비행기를 만들어 하늘에 띄우거나 직접 만든 날개를 어깨에 달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기도 한다. 대량생산으로 먹거리가 풍부해지면서 보릿고개에 대한 걱정도 사라졌다.



타임터너로 '상상회귀'해 본 조선의 벨 에포크는 밝고 희망적인 분위기로 가득차 있다. 하지만 긍정적 에너지로 작동하는 세상에도 어둠은 있는 법.

벨 에포크가 특별히 기억되는 것은 전례 없는 물질 진보와 문화예술의 성취, 자유를 값지게 여기던 풍조 덕도 있었지만 뒤이어 발생한 전쟁의 반사효과, 착시효과 때문일지도 모른다. 평온한 듯 보이는 표면 아래에 상당한 긴장이 숨겨져 있었던 시기인 셈이다.

스팀펑크로 가득찬 조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때 좀 더 발전했더라면, 지금 우리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더 나은 현재'를 갈망하는 이런 류의 상상은 인간의 본능에 기인한다. 과거에 대한 미련이 남긴 그림자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헤르미온느의 타임터너 역시 그렇게 탄생했다.



하지만 조선에 벨 에포크가 있었단들, 지금의 행복을 온전히 보장해 주진 못할 것이다. 코로나, 오미크론, 스텔스 오미크론, 그리고 수많은 변종 바이러스에 맞서기 위한 N차 백신…. 의학·기술적 발전이 그 어느 때보다 빛을 발하지만, 어쩐지 더 나아질 것이란 희망은 그리 보이지 않는다. 먼 훗날 누군가 타임터너로 방문한 2022년의 대한민국은, 벨 에포크로 기억될 수 있을까.

양가람 기자 lotus@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