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성이 된 오랜 시간감각의 통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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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행성이 된 오랜 시간감각의 통증
  • 입력 : 2023. 01.26(목) 11:04
  •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
한경숙 시인의 첫 시집, 나는 다른 행성에 있다. 걷는사람 제공
2019년 ‘딩아돌하’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한경숙 시인의 첫 시집 ‘나는 다른 행성에 있다’가 걷는사람 시인선 작품으로 출간됐다. 한경숙 시인은 그간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 오면서 찰나의 순간에 발견할 수 있는 생동감 있는 시공간을 형상화해 보여 준 바 있다. 그의 시업은 삶 속에서 밀고 당기는 크고 작은 힘들을 성찰하는 일이다. 즉, 일상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미묘한 시공간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새로운 세계를 창출하는 일인 것이다.

이번 그의 첫 시집 ‘나는 다른 행성에 있다’에서는 이 공간에 다른 시간이 숨어 있는 세계의 다층적인 차원을 우주적인 상상력으로 펼쳐낸 심도 있는 시편들을 두루 확인할 수 있다.

시인은 순간에서 영원을 본다. 낮달이 동백 혀에 새겨질 때를 바라보면서 찰나의 순간에 경이를 발견한다. 시집에 등장하는 첫 번째 시 ‘단념’에서 ‘궁궁을을’ 주문처럼 중얼거리는 소리는 아마도 동학에서의 영원한 생명, 완전무결을 상징하는 뜻으로 차용한 것일 텐데, 그러한 의미를 짧은 행간 사이의 넓은 보폭으로 시적 외연을 확장시키면서 탁월한 영원의 장면을 그려낸다.

시인은 미세한 시간의 균열을 착란과 현기증으로 느낀다. 언젠가부터 작고 사소한 물건들이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이 공간에 다른 시간이 숨어 있는 것을 감지하고, 그 지느러미들이 움직이는 동안 시인은 바람의 예감은 바람 너머로 넘어가는 현기증을 앓아야 했다. 그 결과 모든 정신적, 신체적 감각의 근원은 알 수 없는 언어로만 다가와 시인의 안부는 다른 행성에 존재하게 된다. 결국 시인의 그런 어지럼증의 해결책은 다시 ‘단념’으로 회귀되기에 이른다. 그렇기에 자신의 존재를 삶 속에 계속해서 던져진 것이라고 말하는 시인의 자조적인 단언과 눈에 띄는 것이 싫어서 숨어 있거나 일상에 바짝 붙어 있다는 자기 고백적 언술들은 적지 않은 슬픔을 불러일으킨다. 시인은 힘들게나마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고 표현하는데, 해설을 쓴 김형중 평론가는 ‘묻다’라는 단어가 ‘의문을 가지다, 질문하다’와 ‘(땅이나 낮은 곳에) 내려놓고 무언가로 덮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동음이의어 차용에 능한 시인이니 저 ‘묻다’를 후자의 의미로 사용했을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렇기에 시인의 안부는 단지 땅에 묻어 버리는 것이 되고, 현기증과 착란으로 겪는 이질적인 시공간도 ‘단념’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게 된다.

시인이 오랜 시간 감각의 통증으로 겪어 온 시공간의 왜곡은 아름다운 한 권의 행성이 됐다. 이 책은 시인의 깊은 ‘단념’은 무한한 진공의 상태를 느낄 만큼이나 색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