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현장 월례비… 정부는 '불법'·법원은 '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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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검찰
건설 현장 월례비… 정부는 '불법'·법원은 '합법'
윤석열 대통령 "불법 방치 안돼"
광주고법 '월례비는 임금' 인정
경찰, 또 다른 월례비 수사 착수
판결, 수사에 영향 미칠지 주목
  • 입력 : 2023. 02.21(화) 18:14
  • 정성현·강주비 기자
정부가 타워크레인 등 건설기계 조종사가 월례비 등 부당금품을 수수하는 경우 면허를 정지 및 취소한다고 밝혔다. 21일 한 아파트 공사현장에 타워크레인이 서있다. 뉴시스
정부가 타워크레인 월례비(수고비 명목의 급여외수당) 수수 등 건설현장 불법·부당행위에 대해 강력 대응에 나서기로 한가운데, 최근 ‘타워크레인 기사들이 받은 월례비는 임금’이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특히 광주경찰이 또 다른 건설 노조의 월례비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만큼, 해당 판결이 수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광주고등법원 민사1-3부는 지난 16일 담양 소재 철근콘크리트 공사업체 A건설산업이 타워크레인 회사 소속 운전기사 장모씨 등 16명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 항소심에서 1심과 같은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장씨 등은 2016년 9월부터 2019년 6월까지 A건설산업이 하도급 받은 공사현장 6곳에서 타워크레인을 운전했다.

이 과정에서 A건설산업은 타워크레인 업계의 관행이라는 이유로 월례비 300만원을 요구하는 16명의 타워크레인 기사에게 총 6억 5400만원을 지급했다. 이후 A건설산업은 ‘월례비는 부당이득’이라면서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A건설산업의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A건설산업의 월례비 지급이 자유로운 의사에 반해 이뤄진 것이라고 보기 부족하다”고 밝혔다.

항소심은 여기에 더해 ‘월례비에 임금의 성격이 있다’고 판시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A건설산업과 기사들 사이에는 월례비 상당의 돈을 증여하기로 하는 내용의 ‘묵시적 계약’이 있었다”며 “하청인 철근콘크리트 업체의 월례비 지급은 수십 년간 지속된 관행으로, 사실상 근로의 대가인 임금 성격을 가지게 됐다”고 판단했다.

반면 같은 날 오전 정부는 용산 대통령실 제8차 국무회의에서 ‘월례비는 불법’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아직도 건설 현장에서는 강성 기득권 노조가 금품 요구·채용 강요·공사 방해와 같은 불법행위를 공공연하게 자행하고 있다”며 “폭력과 불법을 보고서도 이를 방치한다면 국가라고 할 수 없다. 불법행위를 집중 점검 단속하고 불법행위가 드러나는 경우에는 법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해야 한다. 관계 부처는 노동개혁을 뒷받침할 만한 입법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기 바란다”고 건설노조를 압박했다.

이에 국토교통부 등 관계 기관은 노조 전임비·타워크레인 월례비 수수 등을 건설현장 불법·부당행위로 규정하고 집중 단속에 나서기로 했다.

또 회계자료 제출을 거부하는 노조에 대해 과태료 부과·지원금 중단·세액공제 재검토 등의 제재를 가하기로 했다.

법원과 정부의 입장차가 극명하게 엇갈린 가운데, 현재 수사 중인 광주경찰의 ‘타워크레인노조 월례비 요구’ 수사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광주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는 ‘월례비를 강요나 협박에 의해 빼앗아 갔다’는 호남·제주 철근콘크리트 연합회 측 고소에 따라 관계 노조 간부와 노조원 36명을 불구속 입건해 수사하고 있다.

경찰은 현재 월례비가 노무 계약서상 시간외수당 등이 아닌 불법적 상납금 성격으로 보고 수사하고 있는데, 이에 반하는 항소심 판결이 나온 셈이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의 초점은 월례비를 노조 측 협박과 강요에 의해 지급했다는 사실을 규명하는 것”이라며 “합법 임금이더라도 강압에 의한 것이라면 처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미 노조 등을 압수 수색을 해 증거를 분석 중인 경찰은 조만간 입건자들에 대한 신병 처리 방향을 검찰과 협의해 결정할 계획이다.

노동계는 타워크레인 기사들이 받는 월례비는 ‘사실상 임금’이라는 광주고등법원 판결을 반기면서, 광주경찰의 수사가 이를 참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암 건설노조 광주·전남 타워크레인 지부장은 “월례비는 상호 합의하에 ‘이익의 논리’로써 이뤄진 관행이다. 공사 기간 단축을 위해 사측이 먼저 월례비를 지급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며 “항소심에서 월례비를 임금으로 인정한 건, 재판부도 월례비가 ‘상호 이익’의 성격으로 본 것 아니겠나”라고 환영했다.

홍관희 민주노총 노무사는 “이번 사태는 형사 소송과도 연계돼 있어 자칫 걷잡을 수 없는 ‘분쟁’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며 “패소한 항소심 판결이 경찰 수사에서도 중요하게 검토돼야 한다”고 입장을 전했다.
정성현·강주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