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적 유전자·손필영>인간답게 떠나려면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테마칼럼
이타적 유전자·손필영>인간답게 떠나려면
손필영 국민대 교수·시인
  • 입력 : 2023. 03.22(수) 16:13
손필영 시인
춘분이 지났다. 이제부터 해지는 시간이 늦어지기 시작한다. 봄기운이 번지면서 해가 길어지면 어딘가 술렁거리고 싶어지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그래서 앙드레 지드는 ‘지상의 양식’에서 지상의 자양분을 흡수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라고 말했을 것이다. 지상의 양분을 흡수하는 것은 자연을 통해 살아있는 감각과 지식을 느끼고 배우라는 말일 것이다. 움직일 수 있을 때 움직이는 것은 즐거움이다. 나이가 들면 움직이는 것이 부담스러우니 여행하는 것이 어려워질 것이다

새학기가 시작되면서 자주 마주치는 사람이 생겼다. 그녀는 쾌활한 성격인데 어머니 문제로 어두워질 때가 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평생 어머니와 둘이 살았는데 코로나가 확산되고 어머니가 집에만 계시면서 치매가 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침 수업을 해야 해서 바쁘게 집을 나와야 할 때는 여간 곤란한 게 아니라고 한다. 자신을 위해 평생 헌신한 엄마를 자신도 모르게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며 스스로를 자책한다고 한다.

며칠 전 파주의 요양원에서 치매노인이 입원한지 20여일만에 다른 노인들에게 구타당해서 사망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인터넷으로 그때의 CCTV를 찾아 보았다. 그 노인은 휠체어에 앉아 있었고 폭행한 노인들은 몸이 자유로워 보였다. 돌아가신 노인이 너무 안됐고 가해 노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했는지도 모를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힘들었다. 치매 노인이 익숙한 집을 떠나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가 무척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현행 요양원들은 이를 배려할 여력이 없다. 그러나 어떻게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인간은 언젠가는 늙어서 자신의 의지와는 다른 존재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마지막까지 인간답게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회는 노령인구가 많아져 초고령사회로 접어들 것이라 한다. 고령화는 세계적인 추세이다. 각 나라들은 노인복지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로 고민이 많다. 늘어나는 노인 인구에 비해 이들을 수용할 복지시설의 질적, 양적 수준이 부족한 상태이므로 OECD는 앞으로 증가하는 노인 돌봄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높은 세금 인상과 노동기간의 연장 등이 불가피할 것이라 예측 한다. 그러나 젊은이들이 동의하지 않은 노인복지 비용 마련은 젊은이들의 부담으로만 작용할 것이다.

노인이 젊은이들로부터 존중을 받는다는 것은 옛말이 되었다. 젊은이들이 바뀌어서가 아니라 노인이 바뀌어서일지도 모른다. 어른이라면 어른다운 모습을 보여주며 살았어야 했는데 우리 사회에 어른이 사라진 지 오래이니 어른이 없는 사회에서 젊은이들이 어떻게 노인을 존중하겠는가? 나는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주는 시, 러디어드 키플링의 ‘만일(If)’을 좋아한다. 그 시는 어른이 되려면 이렇게 이렇게 해야한다는 조건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거꾸로 어른은 그래야 한다는 것으로 읽고 싶다. 모두가 비난할 때 냉정을 유지할 수 있다면, 남들이 자신을 의심할 때 자신을 신뢰하고 그들의 의심도 너그러이 생각할 수 있다면, 미움을 당하더라도 미움을 피하지 않으며 너무 선한 체도 현명한 체도 하지 않는다면, 용서할 수 없는 순간을 달음질 60초로 채울 수 있다면 어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앙드레 지드는 1897년 ‘지상의 양식’을 처음 쓰고 38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1935년에 ‘새 양식’을 발표한다. ‘새 양식’에는 개인적인 시선이 공동체를 향한 시선으로 바뀐다. 여행을 통한 자양분은 사람을 성숙시킬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열매를 맺을 것이다. 지상의 자양분을 섭취하면서 어른이 되고, 이를 쌓아 열매인 노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땅 위에는 너무나 많은 가난과 비탄과 어려움과 끔찍한 일들이 가득해서 행복한 사람은 자기의 행복을 부끄러워하지 않고는 행복을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스스로 행복해질 수 없는 자는 남의 행복을 위하여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다… 나의 행복은 오로지 증여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래서 죽음도 내 손에서 빼앗아 갈 것이 별로 없다… 나의 행복은 남들의 행복을 증가시키는 데 있다. 나 자신이 행복하려면 만인이 행복해질 필요가 있다.”(‘지상의 양식’ 김화영 옮김·민음사) 지상의 양식으로 성숙해진 앙드레 지드의 이 말이 우리 모두의 말이 될 때 우리는 젊은이들에게서 존중받는 어른이 되고 노인이 되어 인간답게 살다 떠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