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일의 ‘색채 인문학’> 보라는 검정과 함께 최고의 슬픔을 나타내는 데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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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기획
박현일의 ‘색채 인문학’> 보라는 검정과 함께 최고의 슬픔을 나타내는 데 사용
(195) 색채와 시대
박현일 문화예술 기획자/철학박사·미학전공
  • 입력 : 2023. 04.18(화) 14:39
●색채와 고대 이집트

보라는 고대의 색이다. 과거에는 퇴색되지 않는 염색 기술이 무척 어려워서 보라색을 만드는 데 비용이 많이 들었다. 따라서 보라색은 귀족의 상징이었고, 초창기 기독교인들이 기피 하는 색이었다.

퍼플은 고대 로마 시대 황제의 의상 색 또는 황실의 색으로 사용되었다. 고대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Cleopatra, BC 69년~BC 30년)는 로마 장군 안토니우스(Antonius)가 이집트에 왔을 때 온통 보라색으로 배를 단장했으며, 보라색 옷을 입은 채 마중을 나갔다.

율리우스 시저(Caesar)는 신분에 걸맞지 않은 퍼플 옷을 입는 사람에게 사형으로 처했다. 원로원의 원로들은 토가(Toga, 고대 로마인이 외출할 때 입은 긴 상의)에 퍼플 띠를 맸다. 시저는 홀로 퍼플 옷을 입었다. 한편 고대 바빌론(Babylon)에서는 퍼플 옷을 입는 것은 황금 장신구를 다는 것보다 더 높은 특권이었다.

300년경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Diocletianus)는 퍼플 염색을 황제의 독점권으로 규정하고, 퍼플 염색공장을 비잔틴으로 이전했다. 퍼플은 법에 의해 황제의 색으로 규정되었고, 서명할 때도 퍼플 잉크를 사용했다. 여황제가 자녀를 분만했던 방은 퍼플 비단으로 깔았다.

진짜 퍼플 레드는 자수정과 같은 보라색이다. 이 보랏빛 퍼플 레드는 고대에서 가장 비싼 색으로 비잔틴 제국의 황제 직영 염색공장만이 제조법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비잔틴이 몰락하면서 퍼플 레드의 제조 비밀도 사라졌다.

고대 사람들은 바이올렛의 향기가 두통이나 숙취를 막아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성대한 파티가 열리면 바이올렛 화관을 썼다.

중국에서도 천자가 거처하는 대궐을 자금(紫禁), 천자가 입는 보라색 옷을 자포(紫袍)라고 부르며, 보라색의 성스러움을 한껏 강조했다.

카이 무라사키(Kai Murasaki)는 조개에서 채취한 자줏빛 염료인 짙은 보라색을 말한다. 고대부터 황제를 상징하는 자주색은 진귀한 조개에서 채취된 색이다. 2000개의 조개에서 1g의 염료밖에 채취할 수 없어 고가가 되었고, 금지된 색이었다. 전설의 자주색 조개는 멕시코의 오아하카 지방 인디오에 의해 염색의 전통이 유지되고 있다.

●색채와 종교

서양의 교회는 종교의식을 위해 의상을 상징색으로 사용했다. 보라는 검정과 함께 최고의 슬픔을 나타내는 데 사용된 색이다.

빨강과 파랑 그리고 초록은 삼위일체의 색이다. 이 맥락에서 빨간색은 성부, 파란색은 그리스도, 초록색은 성령을 상징한다. 보라색은 빨간색의 따스함과 파란색의 시원함을 조합한 것으로 조화의 균형을 의미한다.

자수정의 색인 보라는 신에 대한 사랑이나 종교적 진실 때문에 죽은 사람들의 고통을 의미한다. 그림에서 보면 부활 후 예수님과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인 후 동정녀 마리아가 이 색의 옷을 입고 있다. 막달라 마리아의 옷에 종종 쓰이는 보라는 일반적으로 회개의 색이 되었다.

고대 헤브라이(Hebrew)의 성직자들은 보라색 옷을 입었고, 초기 기독교 성직자들도 보라색 법복을 입었다. 고대 그리스신화의 신들도 보라색 장삼(長衫)을 입었으며, 솔로몬(Solomon) 왕의 마차 색깔도 보라색이었다. 예부터 보라는 성스럽고 고귀한 색으로 여겼으며, 보라색 이미지는 하늘의 뜻을 대행하는 신성한 사람만이 취할 수 있는 복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