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이슈 96-2> “열악한 의료 현실… 왜 지방에 왔을까 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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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이슈 96-2> “열악한 의료 현실… 왜 지방에 왔을까 후회”
● 필수의료 부족 함평군 가보니
외래 산부인과 1개소·소아과 ‘전무’
“아이 낳고 키우기 너무 어려워” 호소
함평군 “지원 늘리지만 현실 벽 높아”
전남 의대·취약지 근무 등 대책 필요
  • 입력 : 2023. 04.23(일) 18:37
  • 정성현 기자 sunghyun.jung@jnilbo.com
지난 21일 찾은 함평 성심병원 산부인과 대기실. 정성현 기자
지방 소멸 위기에 직면한 전남지역이 또 다른 문제에 봉착했다. 바로 필수의료 붕괴 현상이다. 필수의료 부족은 곧바로 인구감소·출산율 저하로 연결된다. 여기에 의사들의 ‘지방 기피 현상’까지 더해져 의료현장에서는 “과 개설은 엄두도 못 낸다”는 하소연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역 거점 의대 설치·의료 취약지 의무 근무 등 행정당국의 현명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의료 인프라 부족 ‘체감 심해’

“아이 낳고 나서 지방에 내려온 것 후회했어요. 근처에 큰 도시들이 있어 깊게 고민하지 않았는데 큰 착각이었죠.”

지난 21일 함평군 함평읍에서 만난 김지경(36)씨는 2015년 첫아이를 분만하던 날을 회상하며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는 광주 태생 토박이로 지난 2013년 남편과 결혼 후 줄곧 함평에서 지내왔다. 김씨는 “(의료 인프라가 풍부한) 도시에서 살다 보니 산부인과·소아과가 없다는 것을 크게 체감하지 못했다. 그러나 막상 아이가 생겨 산과 진료 상황이 생기니 피부로 와닿더라. 지역에 개설된 과가 없어 정말 당황했다”며 “지금은 다행히 읍내 병원에 산부인과 생겼지만 그때는 아무것도 없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인근 지역으로 1~2시간 나가야 했는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고 토로했다.

문제는 아이를 낳고서도 이어졌다. 자녀가 아플 때 갈 병원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함평에는 소아과가 없다. 24개월 미만 영아는 내과에서조차 진료가 안 된다. 간단한 검진마저 나주나 광주로 가서 해야 했다”며 “가끔씩 ‘혹 아이가 입원이 필요할 만큼 크게 아프면 어쩌나’ 하고 걱정도 한다. 이렇다 보니 ‘둘째를 가져볼까’라는 고민은 시작하지도 못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함평군 보건소 전경. 정성현 기자
● “의료 인프라 취약지 지원 필요”

23일 함평군에 따르면, 필수의료 중 산부인과는 읍내에 위치한 성심병원에서 외래를 담당하고 있다. 소아과는 단 한 곳도 없다.

성심병원 산부인과는 지난 2016년 함평이 ‘분만 취약 지역’으로 선정되면서 개설됐다. 성심병원은 매년 국·도·군비 2억원을 지원받아 외래 진료실·처치실·초음파 진단기 등 의료장비를 구입·보수하고 외부 의사를 모집해 과를 운영하고 있다. 그렇지만 분만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반쪽짜리 해결’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역 보건소도 아쉽긴 마찬가지다.

함평 보건소 관계자는 “함평은 필수 의료과 중 산부인과와 소아과가 굉장히 취약한 상태다. 다행히 최근 보건소에 소아청소년과 공중보건의가 와 진료를 보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아니다”며 “산부인과도 외래 진료만 가능하다. 분만은 광주·목포·영광 등 인근 지역으로 가야 한다. 출산 및 의료 인프라 등에 많은 지원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현실의 벽이 생각보다 높다. 그렇다고 출산율이 현저히 떨어지는 와중에 ‘수익성을 무시하고 과를 설치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지 않나”라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실제 함평은 인구감소 위기 지역으로 △2020년 133명 △2021년 90명 △2022년 75명 등 해가 거듭될수록 출산율이 낮아지고 있다.

전문가는 지방 필수 의료 전문의가 줄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의료 문제에 대해 발 빠르게 대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기호 강진의료원장은 “전국적으로 의료인 부족 현상이 큰 화두다. 이 가운데 전남지역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1.7명에 달할 정도로 의료 취약지로 분류된다”며 “거기다 농어촌은 인프라 부족 등의 이유로 의사들이 기피한다. 결국 몸값이 천정부지로 오르게 되고, 병원은 ‘가성비’가 좋지 않으니 과를 포기한다. 이런 악순환을 끊어내는 게 문제 해결의 시작이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역 거점 국립 의대 설치가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는 단순 의료 인력 증원의 효과만 있는 것이 아니다”며 “해당 지역 의대 재학생 및 출신들이 단기간이라도 의료 취약지역에서 의무근무를 한다면 의료 기반을 강화시킬 수 있다. 일본·캐나다 등 해외 성공 사례도 있다. 당장은 여러 논의가 오가고 있지만, 결국 지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지역 의대 설치는 필연적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정성현 기자 sunghyun.ju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