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42> 누가 미술관의 1억짜리 바나나를 먹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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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전남일보]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42> 누가 미술관의 1억짜리 바나나를 먹었나
●이선 이강하미술관 학예실장

잇단 도발적 작품 논쟁 불러
평생 정규 미술교육 안받고
독학한 마우리치오 카텔란
자유분방하고 예술에 대한
선입견 없기에 탄생한 작품
삶과 죽음 사이에 놓여 진
잔잔한 연민과 슬픔 드리워져
  • 입력 : 2023. 06.11(일) 14:56
루치오 폰타나 작 공간 개념(Concetto Spaziali)/캔버스/1940년.
가끔 우리는 현대미술 작품 앞에서 조금은 난감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1940년대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 1899~1968, 아르헨티나)의 ‘공간 개념(Concetto Spaziali)’ 작품은 ‘4차원 예술(tetradimensional art)’을 창조하고자 하는 작가의 욕망을 보여 주는 개념미술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작가노트에 따르면, 기존의 예술에서 정의 내려진 모든 시적 · 예술적 · 조각적 형태들은 ‘4차원 예술’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깊게 베인 무지의 캔버스, 구멍 뚫린 판금, 회화와 조각 사이의 경계를 확장시키는 변형 물질 등의 개념적 연작을 선보이기 시작하며 공간에 대한 독자적인 본성과 개념예술의 정립에 기여하였다. 나아가 공간주의 개념을 통해 동시대의 흐름에 동참하려는 의지를 보임으로써, 추상과 구상, 추상주의와 리얼리즘을 모두 아우르는 새로운 예술의 형태를 만들어내게 되었다. 하지만 이 같은 현대미술 작품 앞에서 잠시 ‘아. 이건 나도 하겠는데… 캔버스 위에 칼자국을 낸 것에 불과하잖아’라며 많은 관람객들은 생각할 수도 있다.

현대미술 분야에서 앞 다투어 개념미술 작품들에 많은 집중과 재해석을 내놓은 것에는 사회적으로 규정되어진 많은 현상 속 시대의 예술가들만이 관점에서 볼 수 있는 ‘환상과 허구의 가치에 대한 심층적인 실험이자 증명’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일상의 익숙한 것들이 만들어 전해져 온 사회적 관념이 어느 순간 허탈해 보이는 장면들은 나아가 예술가, 예술작품을 통해서 다시 해석하고 느끼기 위함이며, 그 매력적이고 독특한 재해석의 관념 안으로 들어가야 맛 볼 수 있는 것이다.

마르셀 뒤샹 작 샘/레디메이드(사기로 만든 남성용 소변기)/36x48x61cm/1971년/런던, 테이트모던 소장.
1970년대 프랑스의 미술 거장 마르쉘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은 미국 뉴욕 독립미술가협회전에 철물점에서 파는 남자소변기를 사서 ‘R. Mutt 1917’ 서명을 하고 ‘샘(Fountain)’을 출품하며 예술적 도발을 표출한다. 이는 현대미술에 커다란 개념미술의 변화를 몰고 왔고 작품 ‘샘’은 ‘레디메이드(ready-made:기성품)’란 20세기 예술의 대표적인 아이콘이 되었다. 나아가 새로운 개념의 예술을 대표하는 현대미술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이후 뒤샹을 모방한 많은 예술가들의 시도가 이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1980년 후반부터 마우라치오 카텔란은 미술 제도의 경계를 넘나드는 도발적인 작품들로 동시대 현대미술계의 가장 논쟁적인 작가 반열에 오르게 되었고, 화재의 작품 ‘코미디언’을 제작한다. 2019년 12월 국제적인 미술장터 ‘아트바젤 마이애미’에서 벽에 생 바나나를 은박테이프로 붙인 작품 ‘코미디언 Comedian’이 12만 달러에 낙찰되는 일이 벌어진다. (며칠 뒤, 한 행위예술가가 퍼포먼스로 바나나를 떼서 먹어버리는 해프닝이 발생한다. 얼마전 서울에서도 서울대학교 미학과 학생이 먹기도 했다)

마우리치오 카텔란 작 코미디언(Comedian)/생 바나나/덕 테이프/가변크기/2019년.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 b.1960, 이탈리아) 은 현대 조각가, 행위예술가이자 위트와 역설적 유머로 종교, 정치, 사회, 예술의 영역까지 표현하는 비주얼 아티스트이다. 초현실적인 조각과 현대적인 설치로 알려진 카텔란의 작업들은 예술에 대한 그만의 풍자적 접근으로 예술계의 장난꾸러기로 낙인찍히는 결과를 얻었다. 예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에게 세상의 ‘권위’란 그저 코미디를 한 장면처럼 조롱의 대상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다. 화이트 큐브의 미술관 입구에 노숙자(조각 모형)들을 모셔 두는가 하면, 작품 설치를 위해 전시장 바닥을 뚫어 사람 조각을 빼꼼 넣어두었다. 가톨릭교의 최고 성직자인 교황이 운석에 맞아 쓰러진 모습을 연출하기도 하고, 마트에서 사온 생 바나나를 벽에 테이프로 붙여 12만 달러(한화 약1억5000만원)에 팔아버린 적도 있다.

마우리치오 카텔란 작 무제/플래티넘 실리콘/에폭시 유리섬유/스테인리스 스틸/머리카락/옷/신발/가변 크기/2001.
최근, 서울 리움미술관에서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개인전 ‘WE’는 전시에 공개되는 동명의 작품 ‘우리(We, 2010)’의 직접적 참조가 아닌, 확장된 의미에서 ‘과연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떻게 우리가 되는가’, ‘관계란 무엇인가’에 대한 공통 된 질문을 던진다. 카텔란의 작업을 관통하는 소재인 억압, 불안, 권위, 종교, 사랑, 나와 가족, 삶과 죽음 그리고 ‘우리’에 대한 저 마다의 생각’은 작품을 둘러싼 토론을 활성화하고 나아가 또 다른 연대를 시작하게 한다. 또한 그는 자신의 조각 작품 안에서 경찰, 범죄자, 예술가 등 다양한 사회적 역할을 능숙하게 수행하면서 카텔란식 연극적 요소에 보는 이들을 상상의 세계로 초대한다.

“내 작업은 단지 이미지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상상의 여지를 남기는 것. 말로 떠드는 대신, 힘 쎈 이미지로 생각을 전파하고 싶다.”

카텔란은 어린 시절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어려운 유년 시절을 보냈다. 트럭운전사였던 아버지와 청소부였던 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는 어릴 때부터 생계 아르바이트(꽃집, 세탁소 배달, 장례식 잡일 등)들을 해야만 했다. 이런 일상 속에서 학교생활 역시 순탄치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는 작품 ‘찰리는 서핑을 안 하잖나’(1997년)에서 표현하고 있는데 책상을 떠날 수 없는 학생(찰리)의 뒷모습을 가까이 보면 양손 손등에 연필이 꽂혀 있는 처참한 상황을 확인 할 수 있다. 학교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유년시절 카텔란 자신의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던 모습을 투영하며 현재까지도 공교육에 억압받는 학생들 인권까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마우리치오 카텔란 작 찰리는 서핑을 안 하잖나/플래티넘 실리콘/에폭시 유리섬유/스테인리스 스틸/머리카락/옷/신발/가변 크기1997년.
그는 평생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걸로 알려져 있고, 28세가 되도록 미술관 한 번 가보지 않았다고 한다. 어느 날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하기 시작하게 되는데 어쩌면 ‘코미디언’ 작품은 그런 자유분방하고 예술에 대한 선입견이 없기에 탄생한 현대미술 작품일 가능성이 높다. 많은 비평가들과 언론에서는 카텔란의 작품들에 드러나는 웃음의 해학적 코드를 부각시켜 그를 악동, 장난꾸러기, 익살꾼, 문제아 같은 수석어를 붙여 부른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은 가볍지도, 웃음을 주기 위한 것도 아니며, 각 작품들에는 일생의 삶과 죽음 사이에 놓여 진 개개인의 잔잔한 연민과 슬픔이 드리워져 있다. 작가는 작품으로 지난 삶의 장면들에 대해 말하지만, 그 끝은 많은 이들의 공감과 이어지는 애잔함이 공존하는데 중요한 지점을 꼽는다.

마우리치오 카텔란 작 우리/나무/유리섬유/폴리우레탄 고무/천/옷/신발/78.5×151×80cm/2010년.
마지막으로 그는 “나는 예술이 불편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보기 좋은 디자인 제품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고 전하고 있다.(2023.02.08. 동아일보 인터뷰)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가 규정해 둔 많은 관념과 의미들…. 삶과 죽음, 종교와 권위, 억압과 불안, 전쟁과 평화, 그리고 사회 속 사각지대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의 애처로운 추모까지 동시대의 예술가적 풍자와 해학이 담긴 개념의 작품들을 자유롭게 선보이며 우리에게 삶을 돌이켜 볼 수 있는 값진 경험과 여유를 예술로 선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