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도호 작 ‘Bridging Home’-당신의 이웃을 좋아하나요?. 이선 제공 |
‘집’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한국 예술가는 서도호 작가일 것이다. 미술관 안에 반투명한 천으로 만든 집, 국가의 경계를 넘나드는 해외 곳곳의 한국 전통 가옥집을 옮겨 놓은 듯한 야외 설치작품 ‘틈새의 집’, ‘다리를 놓은 집’, 빌딩옥상에 별똥별처럼 꽂혀 있는 집, 이동식 호텔로 말하자면 캠핑카처럼 차 위의 호텔 ‘틈새 호텔’ 등 작가는 ‘이동성’을 생각해 ‘자신만의 집’을 제작했다. ‘이동성이 있는 집’과 ‘집안의 집’이라는 주제는 두 공간 사이의 물리적, 시간적 통로를 만들고 부재한 또 다른 공간 ‘집’에 대한 저마다의 개인적인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서도호는 1962년 서울서 태어났다. 서울대·대학원 동양화과를 거쳐 미국 로드아일랜드디자인스쿨서 회화를, 예일대 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했다. 한국서 ‘동양사상이 잘 반영된 예술 양식’을, 그리고 서양화 등 다양한 미술 장르를 습득하였다.
1997년 예일대 대학원 졸업 이후 활동을 시작했다. 2000년 이후 ‘세계 현대미술의 중심’ 뉴욕에서 작업하며 국제 비엔날레 및 세계 주요 미술관 전시를 통해 현대미술가 ‘서도호’의 이름을 각인시켜 왔다. 뉴욕 현대미술관(2001년), 런던 서펜타인갤러리(2002년), 이스탄불 비엔날레(2003년), LA카운티미술관 그룹전(2009년)서 전시했다. 2001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국제관에 출품한 데 이어 2010년 베니스 건축비엔날레 본전시에 참가했다. 국내서도 2003년 아트선재센터, 2012년 삼성미술관 리움,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20여년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그는 2010년부터 영국 런던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세계를 떠돌던 그는 이즈음 런던서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해외 일정을 줄인다지만 여전히 세상을 떠돌며 유목민적인 삶을 작업에 담아내고 있다. 최근 영국 런던 현대미술관 테이트 모던(Tate Modern)에서 개인전 ‘더 제네시스 익스비션: 서도호: 워크 더 하우스(Walk the House)’를 지난 1일부터 10월19일까지 전시 중이다.
![]() 서도호 작 런던 웜우드가 육교 위에 설치된 ‘Bridging Home’. 이선 제공 |
세계 공통적으로 ‘집’이라는 것은 매우 개인적인 공간이라고만 생각하지만, 작가의 작업을 보면서 인류 공동체적인 가치를 말하는데도 유용한 주제구나 싶었다.
‘장소 관계적’ 야외 혼합 매체 설치 작품 ‘연결하는 집’은 작가가 10년 동안 구상한 ‘집’ 작업의 연작 중 하나이다. 실제의 1/5사이즈로 제작된 한국 전통 한옥이 영국 리버풀 듀크 거리의 두 건물 사이에 위치해 생경한 풍경을 선사하고 있다. 리버풀의 시민들은 익숙한 서구문화 사이에서 타국의 ‘집’이 끼어듦으로써 발생하는 기이한 감각, 긴장감을 느끼게 된다. 자신이 거주했던 공간을 이질적인 양 국가의 문화와 결합함으로써 ‘기억, 집, 이주, 공동체적 소속감’에 관한 작가의 예술적 탐구를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작품은 작가의 어린 시절 서울 성북동의 전통 한옥집을 다른 장소로 이동-안착시켜 두 장소 사이에 새로운 관계성을 형성해 구축한 것이다. 작가는 미국과 영국으로 오랜 시간 유학했고, 이주하여 서구식 건축물에서 지내면서 문화적 차이를 공간적으로 실감하게 되면서 개인적인 공간의 경험이 ‘집’이라는 건축물에 드러나는 상대적 문화 정체성을 고민하게 된다. 즉, 과거의 전통 한옥이 영국 리버풀의 구체적 지역과 현재라는 시점에서 접붙여짐으로써 서울과 리버풀이 물리적으로 연계된 셈이다. 이 장소적 관계는 작가 개인적 고향에 대한 공간적 향수의 기억을 소환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장소의 기억’이라는 현대미술의 화두를 통해 한국 문화의 주체적 입장을 당당하게 제시했다. 글로벌 시대 현대 미술작업이 다양해지는 가운데 관계를 통해 타자의 미학을 공감하는 것은 모두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차이는 관계를 통해 그 창의적 가치를 인정받고 타자 즉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게 되었다.(실제 작품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관객들이 있다고 한다.)
![]() 서도호 작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이선 제공 |
서도호 작가의 작업은 ‘기억된 공간’이나 ‘미래의 공간’이기 때문에 시간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집의 재료인 (망)천으로 재현된 집들이 반투명한 이유는 “집을 형상화한 게 아니라 집에 대한 기억을 형상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조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해외 미술관 전시에서 눈물을 흘리는 관람객이 많다고 한다.
작가의 작업은 시간과 공간, 그 연속성과 불연속성에 대한 것인데, 돌이켜 보면 그것이 다시 개인의 기억과 관련된 것이라고 밝혔다. 작가는 약 20년 전부터 자신의 작업 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해 왔다. 집을 더욱 압도적으로 만들어주는 건 재료다. 그는 폴리에스터 천이나 여름용 한복을 지을 때 쓰는 은조사로 집을 짓는다. 너무나 얇고 가벼운 나머지 빛이 그대로 투과된다.
‘집의 기억’에 관한 작가의 작품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희미해지고 멀어지고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 우수를 자극한다. 집은 안락한 공간을 넘어 생존, 저항, 적응을 위한 최소한의 보호막일 수 있으며 모뉴먼트(기념 조형물)와 관련한 일련의 작업들이다. 과거 역사를 형성하는 집단의 기억을 다루어 ‘누구와 무엇을 선택해서 어떤 방식으로 애도하고 기억하느냐’에 대해서 결국 정치·사회적 맥락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어떻게 예술이 도전할 수 있는지 우리에게 다시 질문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