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뉴욕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서 열린 공연 중 지그프리트와 브륀힐데가 함께 하는 장면. 출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홈페이지 |
도시가 자리 잡고 세계 경제와 문화를 선도해 온 뉴욕에서 세계 클래식 공연계의 중심으로 자리 잡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은 과거와 현재, 예술에 담은 상상의 나래를 융복합 공연으로 실현하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오페라에 혁명적 숨결을 불어 넣은 바그너와의 만남은 행운이며, ‘발퀴레’에 이어 ‘니벨룽겐의 반지’ 3부에 해당하는 ‘지그프리트’는 그동안 오페라에 대한 고정관념을 부수는 충격을 나에게 선사했다. 당시 비디오테이프 영상으로만 접했던 이 작품을 현장에서 직접 만났으며, 거칠지만 매우 사실적 음향으로 악극의 전체 분위기를 세련되게 유도하는 기법에 크나큰 감명을 받았다.
전설의 검 노통을 든 지그프리트. 출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 홈페이지 |
이런 변화의 가운데 서 있는 ‘지그프리트’는 바그너가 겪은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이 그의 철학과 버무려져 음악에 녹아있다. 시련의 시기에 그는 쇼펜하우어의 심취했고, ‘인간의 의지와 욕망 그 자체가 인간의 존재 의미’라는 사상에 박수를 보냈다. 평소 자신이 인간 본능과 감정이 권력과 제도에 억압되는 현실에 분개했던 바그너에게 ‘지그프리트’는 음악적으로 자신이 담은 철학을 승화시키는 계기를 마련하는 소재였다.
2011년 뉴욕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 걸린 대형포스터 프로젝트 ‘Peter Doig’ 작품. 출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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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프리트는 파프너의 피로 인해 새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되고, 새는 지그프리트에게 미메가 몽혼약을 먹이려고 할 거라 일러준다. 동굴 입구에서 몽혼약을 먹이려고 시도하는 미메의 목을 베어버린 지그프리트는 새에게 자기의 짝을 어디서 구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새는 불타는 바위산 속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브륀힐데의 이야기해 주고 그녀는 오직 두려움을 모르는 자만이 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새의 인도를 받아 그곳으로 향하는 지그프리트는 가던 도중 방랑자의 복장을 한 보탄과 조우하고 그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게 한 자라는 것을 알고 복수심에 불타 그의 지팡이를 반 토막 내버리고 보탄은 모든 힘을 잃게 되고 결국 도망친다.
브륀힐데가 잠든 산에 오르고 여태껏 여자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지그프리트는 그녀의 갑옷을 벗기고 그녀의 가슴을 본 뒤 남자라고 생각했던 그녀가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 어찌할 바를 모른다. 지그프리트는 드디어 두려움을 배우고,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브륀힐데를 깨우려다가 그만 입을 맞추고 만다. 깨어난 브륀힐데는 신성을 잃었음을 알고 슬픔과 두려움에 빠지지만, 지그프리트는 브륀힐데를 달래면서 사랑을 고백하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브륀힐데는 발퀴레와 발할라의 일들을, 지그프리트는 좀 전에 배운 두려움을 잊어버리며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지그프리트는 두려움을 모르는 자로 거침없이 자신의 앞에 놓인 역경을 헤쳐나간다. 괴수 파프너을 죽이고 신의 왕이라는 보탄을 넘어서며, 나약한 인간이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가를 바그너는 이 악극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 절대 의지를 통해 앞에 놓은 장벽을 무너뜨리고, 도약해가는 모습이야말로, 독일 민족과 역경에 취한 바그너 자신에게 던져주는 선조들의 메시지라는 것이다.
‘지그프리트’에는 사랑과 긴장감, 흥미진진함 등 극이 갖추어야 할 모든 성공 요소를 지니고 있다. 거기에 시대정신까지 담고, 극 안에는 세계 공연 예술계에 표준으로 자리 잡은 예술의 혁신까지 집어넣었다. 과감한 도전과 열정, 그리고 끊임없는 개혁으로 만들어진 숭고한 이 융합 예술은 세기를 뛰어넘어 우리에게 감동뿐만 아니라, 넓은 보폭으로 문화 예술이 이끌어가는 미래에 대한 우리의 마음가짐을 이야기한다.
뉴욕에서 만난 ‘지그프리트’는 세상에 고한다. 미래를 두려워 말라고, 바로 당신의 멋진 미래는 당신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최철 조선대 초빙교수·문화학박사
최철 교수 |
이 곡은 독립된 관현악곡으로, 오페라 ‘지그프리트’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다. 바그너의 아들 지그프리트 바그너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바그너 부부가 다시 찾은 가정에 행복이 깃들어 있는 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