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의 오페라 오디세이>구원과 기적…감동으로 열리는 ‘천국의 문’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최철의 오페라 오디세이
최철의 오페라 오디세이>구원과 기적…감동으로 열리는 ‘천국의 문’
<푸치니 서거 100주년-⑦수녀 안젤리카>
1600년 바로크 시대 이탈리아 수녀원 배경
1918년 12월 뉴욕 메트로폴리탄극장 초연
일목요연한 감정·내면 묘사로 극적 긴장감
신비로운 소재·웅장하고 수려한 선율 ‘매력’
  • 입력 : 2024. 04.11(목) 17:55
극중 숙모로부터 아기의 죽음을 이야기들은 안젤리카가 절망해 쓰러진 상황. 지난 2007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 ‘수녀 안젤리카’.
20세기, 최대 걸작으로 뽑히는 푸치니의 완성된 마지막 오페라 <삼부작, Il Trittico,1918>은 사실주의와 인상주의적 요소, 그리고 파토스적 요소를 모두 보여준 작품이다. 이처럼 최고의 평가를 받는 <삼부작>은 완성까지 10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 푸치니는 <토스카>가 작곡될 무렵 세 편의 단막 오페라를 묶어 <삼부작>이라 명명하고 이 세 작품을 한 무대에 올리기를 희망하였다. <삼부작>은 이탈리아에서 세 폭짜리 그림 혹은 ‘병풍’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데 푸치니는 이 단어를 이용하여 자신의 3개 오페라를 나열하는 식의 독립적 작품으로 제작하길 원했다. <삼부작>은 줄거리나 대본의 시간적 배경, 무대 배경이 각각 독립적임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공연되도록 계획되었다. 이런 새로운 음악극의 형식은 후대의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푸치니는 단테 ‘신곡’에서 말하는 ‘슬픈 시작’에 이어 ‘행복한 결말’처럼 <삼부작>의 진행도 불행의 시작과 이어지는 구원의 빛 그리고 해학과 즐거움이라는 결말로 하나의 연결된 고리로 세 작품의 이음새를 연결해가고 있다. <삼부작> 대본의 특색은 사랑과 미움, 인간의 죄와 구원, 인간의 욕망과 이기적 태도 등이 다양하게 표현되어 있고 종교와 교훈을 모두 갖춘 수작이다. 우리가 함께할 <수녀 안젤리카-Suor Angelica, 1918>는 형식을 차용한 단테 ‘신곡’의 <연옥> 부분에 해당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내세를 대부분 지옥과 천국으로 표현하지만, 가톨릭의 영향을 받은 단테는 중간에 <연옥>을 넣어 자신의 문학에서 회계를 통해 천국으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 이곳은 인간의 내면 의지가 강하게 표출할 수 있는 창구로 인간 내면의 고통을 승화시키는 자유의지를 통한 종교적 구원을 들여다볼 수 있다.

‘수녀 안젤리카’ 마지막 엔딩 장면. 출처 뉴욕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두 번째 단막극인 <수녀 안젤리카>는 <삼부작>의 첫 번째 작품인 <외투>가 완성된 그 이듬해 이탈리아의 한 수녀원을 배경으로 작곡되었다. 1600년 바로크 시대를 배경으로 세속에서 버림받은 한 여인의 수녀원에서 삶과 죽음, 참회와 구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사회로부터 배척당한 한 여인의 아픔과 비극적 죽음을 성극의 느낌을 가미하여 조바끼노 포르차노가 대본을 완성하였다. 푸치니는 이 대본을 처음 읽고 “내가 너무 오랫동안 꿈꿔왔던” 주제를 찾았다며 너무 기뻐했다고 한다. 그는 이 <수녀 안젤리카>를 자신의 고향인 루까 근처 비코페라고(Vicopelago)의 수녀원장으로 있는 큰누이를 방문하여 수녀들에게 들려주었고 그녀들 역시 눈물을 흘리며 만족하였다고 전해진다.

종교적 배경을 가진 이 작품은 푸치니가 오랫동안 구상해 왔던 신비로운 소재로 그의 마음에 흡족하여 몇 주 만에 음악을 완성하였다고 전해진다. <수녀 안젤리카>는 여인들만 등장하고 있는데 주인공 안젤리카를 비롯해 그녀의 숙모, 수녀들과 수녀장 등이다. 여인극이라는 볼거리의 한계성에도 불구하고 안젤리카의 일목요연한 감정묘사와 내면 의지에 관한 강한 구사력으로 극의 긴장을 이끌어가려는 의도가 돋보인 작품이다. 그리고 무대 배경이 성당과 수녀들로 채워져 언뜻 종교극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 이상의 사회적 실상과 모성애를 담고 있는 드라마적 요소를 지닌다. 푸치니는 현실주의자로 신앙이 돈독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가정환경이 종교적 분위기에 있었기 때문에 <수녀 안젤리카>의 작곡은 쉽게 풀려나갔다.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종교적 의미로 푸치니의 깊은 신앙에 관한 많은 사람의 추측은 단지 이 작품이 지향하는 신비적 분위기로 느낄 수 있는 문학적 소재 이외에 다른 의도는 없었다고 한다.

수녀 안젤리카 명연주로 극찬을 받은 소프라노 Geraldine Farrar의 1918년 메트로폴리탄 공연 모습. 출처 뉴욕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삼부작-수녀 안젤리카>는 1918년 12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이 연주에 비록 푸치니가 건강상의 문제로 참석하지 못했지만, 그 이듬해인 1919년 1월 푸치니 자신의 총지휘로 유럽에서는 처음으로 로마 콘스탄츠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되었으며 성공 여부를 떠나서 그가 오랫동안 구상한 오페라 작업이 철저하게 펼쳐진 연주라고 전해진다.

이 작품의 구성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처음 부분은 수녀들의 밝고 순수한 모습을 다루고, 둘째 부분은 안젤리카 백모 등장 후 반전하듯 어두운 분위기로 바뀌어 갈등하는 이야기로, 마지막은 안젤리카의 자살과 참회 그리고 구원과 기적을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 작품은 비극적 소재에서 출발하지만, 한 인간의 참회를 통한 구원이 존재하고 이것이 빛으로 점철됨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빛의 세계를 오페라 마지막 장면의 무대를 통하여 볼 수 있다.

7년간 수녀원에서 생활을 보내고 있는 주인공 수녀 안젤리카는 피렌체 귀족의 딸로 부모가 허락하지 않은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이곳에서 참회의 생활을 하고 있다. 막이 올려지며 성당의 종소리가 들려오고 햇살이 샘물에 비친다. 안젤리카와 수녀들은 아베 마리아를 부르고, 수녀 제노비에파가 나와서 정원에 있는 샘물이 햇빛에 의해 황금빛으로 빛나는 것을 발견했다며, 성모 마리아가 내린 기적이라고 기뻐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전에도 이런 기적이 일어났을 때 한 수녀가 죽은 것을 떠 올리며, 관객은 이 대사로 인해 안젤리카의 죽음을 상상할 수 있다. 여기서 안젤리카는 성모 마리아에게 구원을 바라는 노래를 부르는데 원장은 세속적 희망은 모두 버려야 한다고 훈계한다. 그리고 안젤리카를 면회 온 숙모인 공작부인이 등장하고 그녀는 이번에 결혼하는 안젤리카의 여동생에게 재산을 양도한다는 내용의 서류에 서명할 것을 안젤리카에게 강요하며 과거를 새삼스럽게 힐책한다. 안젤리카는 7년 전에 낳고 헤어진 어린 자식의 소식을 숙모에게 묻자 2년 전에 병으로 죽었다고 거짓으로 말한다. 놀란 안젤리카는 엎드려 울며 “엄마를 남겨놓고 죽다니, 사랑하는 아가야”라는 유명한 아리아를 부르고 숙모는 서류를 들고 가버린다. 깊은 밤 무덤만 보이는 이곳에서 안젤리카는 자살하려 한다. 그녀는 독초를 뽑아 독약을 만들어 마시면서 성모 마리아에게 자살하는 죄의 용서를 빈다. 이어서 멀리서 천사들의 합창이 들려오고 교회가 신비로운 빛으로 감싸이며 성모 마리아가 안젤리카의 자식을 데리고 나타나 그녀 근처에 앉힌다. 안젤리카는 마지막 힘을 다해서 자식 곁으로 가려다 천사들의 합창 가운데서 숨을 거둔다.

1918년 ‘수녀 안젤리카’ 초연 포스터, 출처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자살은 기독교에서는 가장 큰 죄이며, 그 댓가는 끔찍한 지옥의 형벌이다. 단테 ‘신곡’ <지옥> 편에서 자살자는 형벌로 움직이지 못하는 나무가 되며, 몹시도 추한 지옥의 괴물 새들이 날아와 쪼아대는 고통을 당한다고 묘사하고 있다. 나무가 된 자살자는 괴물 새를 뿌리치는 어떤 몸짓도 할 수 없으며 꼼짝없이 당해야만 한다. 몸은 나무가 되고 영혼은 나무 속에 들어앉아 자신의 육체를 버릴 수도 없다고 한다. 그래서 죽지 못하고 영원히 연장된 고통을 당한다고 단테는 묘사하고 있다. 푸치니는 숭고한 구원을 음악에 담아, 이러한 고통의 지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안젤리카를 <연옥>으로 끄집어 올렸다. 그리고 죽는 순간 진실한 참회를 통해 천국 문을 여는 그녀를 통해, 억지스러운 표현일 수 있으나 애틋하고 따뜻한 죽음을 관객들에게 바라보게 하였다. 이 작품은 성극, 또는 여성극이라 특성을 가지며 획일적인 진행과 떨어지는 긴장감으로 듣고 보는 재미에 외면받을 수 있지만, 음악 전반에 푸치니가 숨겨 놓은 극적 긴장감을 고조하는 음악과 수려한 감동의 선율, 그리고 분위기 환기를 위한 재치 있는 음형은 지루함을 극복하는 다른 매력이라 할 수 있다. 화려하고 웅장함, 재미난 오페라를 보아왔던 애호가들에게 <수녀 안젤리카>는 특별한 별미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내면의 강한 의지가 표출된 진실한 참회를 통한 구원의 모습은 이승의 삶 속에서 위기와 실수를 접했을 때 우리의 모습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간절함과 진실함을 통한 변화로 승리하는 삶을 이룰 수 있는 것, 우리가 <수녀 안젤리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아닐까. 조선대 초빙교수·문화학박사



명곡 추천: Senza mamma, o bimbo, tu sei morto!(아가야! 엄마도 없이 죽다니)를 1994년에 출시된 DECCA 레이블 음반 의 수녀 안젤리카 역의 소프라노 미렐라 프레니 목소리로 듣기를 추천한다. 자식을 잃은 엄마의 비통한 마음을 표현한 아리아로 후반부에 효과적인 화음과 함께 조화를 이루는 감동의 멜로디는 너무 아름다우며 합창과 오르간, 하프 등이 함께 오케스트라는 웅장함과 수려함으로 감동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