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의 오페라 오디세이>‘19세기 낭만시대’ 벨칸토 오페라의 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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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의 오페라 오디세이
최철의 오페라 오디세이>‘19세기 낭만시대’ 벨칸토 오페라의 정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도니제티 대표작…프리마돈나 부각
비현실적 환상의 세계 작품에 담아
주인공에 조수미 등 세계적 소프라노
아름다운 선율·연기로 관객들 압도
  • 입력 : 2025. 06.26(목) 09:30
도니제티의 대표적인 벨칸토 오페라인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의 공연 장면. 뉴욕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2008-2009 공연실황)
벨칸토(Bel canto)라는 말은 이탈리아어로 ‘아름다운 노래’라는 의미를 뜻한다. 18세기에 확립된 이탈리아의 가창 기법으로 19세기 전반 이탈리아 오페라에 쓰였던 기교적 창법이다. 벨칸토 창법을 극대화한 벨칸토 오페라들은 극적인 표현이나 낭만적인 서정보다도 아름다운 소리와 선율 중심으로 훌륭한 연주 효과를 도출해 내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대표적인 이탈리아 벨칸토 작곡가로 벨리니(Vincenzo Bellini, 1801~1835), 도니제티(Gaetano Donizetti, 1797~1848), 로시니(Gioacchino Rossini, 1792~1868)가 언급되며 이들의 작품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성량 조절, 유연한 레가토, 화려한 기교를 가진 성악가가 필요하다. 벨칸토 오페라는 18세기~19세기 중반까지 절정을 이루며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19세기 후반부터 더욱 규모가 확대되는 극장과 사실주의 오페라 대두와 함께 오페라 소재 등의 변화를 해야 하는 오케스트라 음향의 확장은 큰 성량을 요구하게 되었으며 점점 새로운 창법이 벨칸토를 대신하게 됐다.

세계적인 루치아로 손꼽히는 소프라노 조안 서덜랜드의 공연 모습. 나무위키
<사랑의 묘약>과 함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Lucia di Lammermoor, 1835>는 도니제티의 대표적인 벨칸토 오페라의 수작이라 할 수 있다. 특히 프리마돈나들을 위한 오페라로 유명한 이 작품은 도니제티가 작곡할 당시 자신의 절친인 프랑스 출신의 테너 가수 질베르 루이 뒤프레(Gilbert Louis Duprez)를 생각하며 에드가르도 역의 테너를 위해 썼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1835년 나폴리의 산 카를로 극장의 초연에서 루치아 역의 소프라노 파니 타키나르디 페르시아니의 엄청난 호연으로 흥행과 더불어 프리마돈나를 위한 오페라로 등극하게 되었다.

도니제티의 대표적인 벨칸토 오페라인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의 공연에서 루치아 역의 소프라노 조안 서덜랜드가 열연하고 있다. 뉴욕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는 스코틀랜드의 극작가 월터 스콧(Walter Scott, 1771~1832)의 대표작 ‘래머의 신부’가 원작으로 17세기 스코틀랜드에서 정략결혼으로 인해 희생된 명문가 딸의 실화를 소재로 하고 있다. 줄거리를 살펴보면 람메르무어의 영주인 엘리코는 몰락한 자신의 가문을 위해 여동생 루치아를 세도가인 아르투르와 결혼시키려 한다. 하지만 루치아는 이미 엔리코와 원수 집안의 남자인 에드가르도와 사랑하는 사이다. 엔리코는 이를 못마땅히 여기고 여동생 루치아를 회유하고 에드가르도가 변심한 것으로 속이기 위해 편지까지 위조하며 그들의 사랑을 방해한다. 엔리코의 계략으로 에드가르도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을 한 루치아는 자포자기로 신랑이 될 아르투로와의 결혼서약서에 강제로 서명하고 결혼식이 거행될 때 에드가르도가 들어와 격노하고 결혼식을 방해한다. 루치아는 더욱더 상심에 빠져 결국 첫날밤에 신랑 아르투로를 칼로 찔러 죽이고 그녀는 피범벅이 된 옷을 입은 채 미쳐버린다. 곧이어 에드가르는 루치아가 자신을 향한 사랑 때문에 미쳐서 죽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의 진심을 확인하고 신께 우리를 다시 맺어줄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결국에 자결한다. 그리고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라는 마지막 합창과 들려오고 장엄하고도 강렬한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함께 막이 내린다.

도니제티의 대표적인 벨칸토 오페라인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의 공연에서 루치아 역의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가 열연하고 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인용
이 작품에서 ‘광란의 장면’은 가장 주목을 받는 장면이다. 루치아가 아르투르를 칼로 찔러 죽이고 피를 뒤집어쓴 채 실성하여 사람들 앞에서 20분간 광란의 아리아를 부르는 장면으로 벨칸토의 정수를 맛볼 수 있다. 소프라노 루치아 역을 부르는 가수는 엄청난 기교로 관객을 압도하는 모습을 선보인다. 이러한 장면의 출현은 19세기 오페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이며, 도니제티의 삶과 당시의 세태를 통해 이를 투영해 볼 수 있다.

도니제티는 70여 편의 오페라를 50년 자신의 생애 기간 작곡을 했다. 다작을 짧은 기간에 작곡한 도니제티는 40대부터 매독과 함께 심한 건망증과 두통으로 힘든 삶을 살았으며 마지막에는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당시 도니제티 뿐만 아니라, 19세기 낭만시대 예술가에게 유행이라 할 정도로 정신이상 증세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많았고, 이러한 모습이 작품 안에 담기기도 하였다. 도니제티와 함께 벨칸토 오페라의 대표적인 작곡가인 벨리니의 작품 <청교도>, <몽유병의 여인> 등에서도 실성한 여인이나, 몽유병에 걸린 볼 수 있으며, 당신 다수 낭만 오페라 안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정당하게 올바르게 자신의 삶을 살려고 했던 사람들에게 닥친 오류 사회의 벽은 이상의 삶을 실현할 수 없는 순수한 이들에게는 고통이었으며, 이와 타협하지 못한 그들의 정신세계에 견딜 수 없는 광란을 던져주었다.

도니제티의 대표적인 벨칸토 오페라인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초연의 루치아 역을 맡은 소프라노 파니 타키나르디 페르시아니. 위키피디아
벨칸토 오페라인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는 프리마돈나의 기교만을 과시한다는 사람들의 인식과 편견으로 19세기 이후 자주 올려지지 못했다. 하지만 이러한 벨칸토 오페라를 향한 푸대접은 1950년대 들어서 재평가되어 다시 자주 극장에 올려지게 된다. 특히, 도니제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안나 볼레나>, 벨리니의 <노르마>, <몽유병의 여인>, <청교도> 등이 주목을 받았다. 이와 같은 변화는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의 출현과 함께하는데 그녀의 무대는 벨칸토 오페라의 여주인공을 더이상 프리마돈나들의 기교 향연이 아닌 하나의 비극의 담긴 음악극으로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녀의 루치아는 지금까지 기적이라고 칭송받고 있으며 이전의 소프라노들과 달리 자신의 음색으로 루치아라는 캐릭터를 창조했고 극적인 루치아에 관객들을 열광하게 한 것이다. 루치아 역으로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 조안 서덜랜드와 더불어 한국인 성악가인 조수미의 주요 레퍼토리기도 하다. 필자는 2003년 로마 오페라 극장에서 그녀의 루치아를 직관했는데, 당시 월드컵 개최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유럽에 알려지기 시작한 시기로 조수미는 엄청난 기교와 극한 연기로 찬사를 받으며, 저자의 국뽕을 올려주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난달 26일 소프라노 조수미는 프랑스의 최고 문화훈장인 ‘코망되르 문화예술공로훈장’을 수여 받았으며, 수여자인 펠르랭 전 장관은 조수미를 가리켜 “우리 시대의 위대한 소프라노 중 한 명”이라 이야기했다. 그녀는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로 벨칸토 오페라 가수로서 과거 동양인 가수들이 이룰 수 없는 커리어를 세계 오페라계에서 이뤄냈다.

오페라는 시대의 대변자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당시의 세계관을 직관할 수 있는 우리나라 ‘대하 사극’과 같은 존재이다.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에서는 낭만주의 시대는 ‘실성의 시대’였음을 적나라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당시 자기 인생의 결정권이 없었던 여인의 본보기라 할 수 있는 루치아는 주변 세계의 냉혹한 현실주의와 이해타산을 견디지 못하고 미쳐버리는 순수한 주인공으로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로코코 시대의 퇴폐 향락적 시대에 반대하며 대두되었던 고전 시대는 이성과 질서 규칙 등을 중요시하였다. 이러한 정형화를 추구하는 보수적 시대에 대항하였던 19세기 낭만주의는 비현실적인 환상의 세계를 추구하였다. 낭만시대 사조의 영향을 받는 도니제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는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격정적 사랑을 찬란한 사랑의 모습으로 간주하고 이를 통해 이루어진 죽음을 숭고한 열망을 잉태하는 씨앗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애절하게 사랑했던 두 연인의 죽음은, 낭만주의 시대 비극으로 비친 것이라고 말하기보다는 당시에는 찬란한 사랑의 승리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래서 노년에 독일 고전주의 작가 괴테는 낭만주의 사조를 보며 ‘낭만주의는 하나의 병적 현상이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예술은 항상 진보적이다. 현 세태를 비판하고 나아가 곧 바뀔 세상을 미리 예견하는 예술, 오페라 역시 세월의 지표를 가리키는 나침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광주시립오페라단 예술감독·문화학박사



루치아 역으로 호평을 받았던 소프라노 조수미.


◇1994년 Erato Disques S.A.음반사에서 발표한 VIRTUOSO ARIAS에 수록된 광란-Lucia di Lammermoor : Act 3 The Mad Scene(광란의 장면)은 리즈시절 조수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