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서석대>‘물건 괜찮다’는 이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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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서석대>‘물건 괜찮다’는 이낙연
이용환 논설실장
  • 입력 : 2023. 06.22(목) 16:50
이용환 논설실장
“나다. 신당 가지 마라. 사람이 그러면 못쓴다. 길게 봐라.” 2003년 11월.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어머니 진소임 여사가 이낙연에게 전화를 했다. 그 해 노무현 대통령은 민주당을 떠나 열린우리당에 동참했다. 이낙연에게 수차례 동참도 권유했다. ‘돈과 지역으로부터 자유로운 정치와 정당을 만들어보자’는 게 노 대통령의 뜻이었다. 하지만 이낙연은 신당에 합류하지 않고 9석짜리 ‘꼬마 민주당’에 남는 길을 선택했다. “학식도 논리도 아닌 ‘어머니의 심지’가 나를 민주당에 남게 했다.” 2020년 서주원이 쓴 ‘이낙연의 길’에 나오는 이야기다.

영광에서 태어난 이낙연은 대표적인 흙수저였다. 집은 창고 같은 초가였고 농사 지을 땅도 ‘떼 밭’이 전부였다. 잔디가 심어진 아버지의 산소 주변에 밭을 만들어서 ‘떼 밭’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 좁은 땅에서 이낙연의 어머니는 틈나는 대로 채소를 길러 매일 10㎞를 걸어 새벽 시장에 내다 팔았다. 겨울이면 게를 잡기 위해 고창 심원까지 왕복 50㎞를 걸어 다녔다고 한다. 그것을 아는 자식들도 버스비가 아까워 매일 학교를 걸어서 다녔다. ‘어머니의 괴력이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는 게 이낙연의 회고다.

광주일고를 거쳐 서울대 법대에 진학해서도 가난은 마찬가지였다. 억울한 사람들을 돕는 변호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그마저도 가난 때문에 그만 둬야 했다. 홀 어머니 아래, 고생하는 7 남매의 생계를 돕는 것이 더 시급해서 였다. 공부를 중단하고 밥벌이에 나선 후에는 동아일보에서 21년 동안 기자생활을 하며 후배들의 ‘술과 밥’을 책임졌다. 작고한 김태홍 전 의원(당시 한국일보 기자)과 참여정부 시절 정찬용 인사수석 등이 당시 어울렸던 ‘술 친구’였다.

1년간 미국에 머물던 이낙연 전 총리가 24일 귀국한다. 그동안 국내 정치와 거리를 뒀던 만큼 ‘전면 등장은 어려울 것’이라지만 ‘국가와 국민을 위해 제 역할을 다 하겠다’는 메시지는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18살 고등학교 때 만나 50년 그와 함께 살았다는 정찬용 전 참여정부 인사수석은 이낙연을 두고 ‘물건이 참 괜찮은 사람’이라고 했다. 생각과 행동이 제법 구실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일게다. 지리멸렬한 야당, 갈팡질팡 하는 여당, 마음 둘 곳 없는 국민까지, 복잡하고 시끄러운 작금의 대한민국에서 ‘물건이 괜찮다’는 이낙연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