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서석대>유일한의 창업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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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서석대>유일한의 창업정신
이용환 논설실장
  • 입력 : 2023. 07.20(목) 17:38
이용환 논설실장
“첫째, 손녀 유일링에게는 대학 졸업까지 학자금으로 1만 불을 준다. 둘째, 딸 유재라에게는 유한공고 주변 땅 5천 평을 물려준다. 셋째, 일한 자신의 소유 주식은 전부 사회에 기증한다. 넷째, 아내 호미리는 재라가 돌봐주기 바란다. 다섯째, 아들 유일선에게는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니 앞으로는 자립해서 살아가거라’.” 지난 1971년, 76세로 영면한 유한양행 창업주 유일한 박사의 유언장이 공개됐을 때 세상은 깜짝 놀랐다. 내로라 하는 회사 대표가 아내와 아들에게 단 한 푼의 유산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삶을 돌아보면 놀랄 일도 아니다. 9살 때 홀로 미국 유학을 떠난 유일한은 1926년 귀국해 일제 식민 치하 굶주림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조국의 현실과 마주친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 사업가가 선택한 길은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것이었다. “건강한 국민이 장차 교육도 받을 수 있고, 나라도 되찾을 수 있다.”는 신념은 1926년 12월, 제약회사 ‘유한양행’ 설립을 통해 실현된다. “좋은 상품을 만들어 국가와 동포에 봉사하고, 정직하게 납세하며, 남은 것은 사회에 환원한다.” 고건 전 총리가 회상한 유일한의 기업철학이면서 신조였다.

2005년 조성기가 쓴 ‘유일한 평전’에도 그의 나라사랑은 끝이 없다. 1942년 미국에서 항일무장독립군인 맹호군을 창설한 그는 광복을 맞을 때까지 재미동포와 함께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그가 회사를 키운 목적도 개인적인 부의 축적이 아닌 사회 환원이었다. 1936년 개인기업을 법인으로 바꾸고 1962년 제약업계 최초로 자본과 경영을 분리한 것도 유일한이 가진 기업 철학의 실천이었다. 1969년 경영 일선에서 은퇴하면서는 자식이 아닌 회사 임원에게 사장직을 물려줬다.

유한양행이 최근 개발한 폐암 치료제 ‘렉라자’를 건강보험 급여가 될 때까지 제한 없이 무상으로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창업주인 고(故) 유일한 박사의 창업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서라는 게 유한양행의 설명이다. 유한양행이 무상으로 제공하겠다는 폐암 치료제의 약 값은 연간 7000만원에 달한다. 고건 전 총리는 유일한에 대해 “기업인으로, 독립운동가로, 교육가로 그의 우선순위는 언제나 국가가 첫째였고, 그 다음이 교육과 기업이었으며, 가정은 마지막이었다.”고 했다. 막무가내 정치에 예측할 수 없는 날씨까지. 답답한 현실에서 유한양행의 ‘통 큰’ 결정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