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서석대>‘슈퍼 엘니뇨’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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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전남일보]서석대>‘슈퍼 엘니뇨’의 위기
이용환 논설실장
  • 입력 : 2023. 08.03(목) 12:42
이용환 실장
1912년 4월 14일, 첫 항해에 나선 타이타닉 호가 북대서양에서 바다 위를 떠 다니던 빙산과 충돌해 침몰했다. 그곳은 보통 때는 빙산이 거의 내려오지 않는 지역이었다. 같은 해, 아문센에게 남극점 최초 도달이라는 기록을 빼앗긴 채 귀로에 올랐던 스코트 일행은 예기치 못한 악천후를 만나 탐험대 전원이 사망하는 비극을 맞았다. 얼핏 아무 상관이 없어 보이는 두 사건의 배후에는 아무도 몰랐던 비밀이 있었다. 그 해 ‘엘니뇨’가 전 세계의 기후를 뒤흔들어 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까지만 해도 ‘엘니뇨’의 메커니즘은 그야말로 ‘가설’일 뿐이었다.

엘니뇨는 동태평양 부근의 해수면 온도가 평소보다 높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서쪽으로 부는 편서풍이 어떤 원인으로 약해지면서 태평양 인근의 해양과 대기 온도가 올라가고, 이는 지구촌 전체의 극심한 기후변화로 이어진다. 평온하던 지역에 거대한 태풍이 찾아오고 열대우림이 가뭄에 시달리는 가 하면 사막에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것도 엘니뇨가 가져온 심술이다. 산불과 폭우 등 자연재해에 따른 농작물의 수확 감소로 경제적 불평등을 불러와 시민의 분노와 분열로도 이어진다.

당장 나일강의 범람으로 고도의 문명을 이뤘던 이집트가 멸망한 것은 엘니뇨가 가져온 가뭄이 치명적인 원인이었다. 중국에서는 1640~1641년 엘니뇨에 의한 가뭄으로 대기근이 발생해 명나라가 몰락했다. 1877~1878년에는 인도에서는 대기근으로 550만 명이 사망하는 참사로 이어졌다. 1812년의 나폴레옹군과 1941년 히틀러 군대의 패퇴 뒤에도 당시 누구도 그 존재를 깨닫지 못했던 엘니뇨가 자리하고 있었다. 기상학자 쿠퍼 존스턴은 저서 ‘엘니뇨 : 역사와 기후의 충돌’에서 엘니뇨가 인류의 역사를 바꿔 왔다고 했다.

기상학자들이 올 여름, 사상 최대의 ‘슈퍼 엘니뇨’ 발생을 예고하고 있다. 북미의 유례 없는 폭염, 유럽의 불볕더위와 가뭄, 우리나라의 ‘6월 불볕더위’와 긴 장마, 폭우 등도 엘리뇨 때문이라는 게 학자들의 설명이다. 존스턴은 ‘세계 모든 대륙에서 엘니뇨는 전쟁과 혁명, 대이주의 원인으로 역사의 물길을 이리저리로 돌려왔다’고 했다. 인간이 자초한 지구 온난화가 더 강한 엘니뇨를 불러오고 더 극단적인 기후이변을, 더 자주 가져올 수 있다 것도 존스턴의 경고다. 거대한 자연 앞에 한없이 초라한 인간의 오만과 탐욕이 지구 생태계는 물론 인간의 삶마저 위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