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최철의 오페라 오디세이>비극적 결말의 카타르시스… 사실주의 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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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의 오페라 오디세이
[전남일보]최철의 오페라 오디세이>비극적 결말의 카타르시스… 사실주의 진수
<푸치니의 오페라 ‘외투’>
3부작 중 첫 작품… ‘슬픈 시작’에 해당
인간 삶의 무상함·불륜의 사랑 등 묘사
강력하고 스산한 음향 등 매력적 작품
내년 푸치니 서거 100주년 공연 기대감
  • 입력 : 2023. 08.10(목) 14:13
푸치니 오페라 ‘외투’ 공연 모습. 출처 AZERNNEWS
세계 어디를 막론하고 불륜은 드라마 소재로 각광을 받는다. 남미, 스페인, 미주, 아시아권 등 해외의 불륜 드라마는 격정적이고 19금을 넘나들며 파격적인 내용으로 자국의 안방극장의 시청자들을 들었다 놨다 한다. 한국에서는 불륜에 막장까지 더해 한층 묘한 매력을 발산하며, 또 다른, 격정의 장르로 사랑과 배반, 복수를 절절히 풀어내 한국의 안방극장을 넘어 또 다른 영역의 드라마 한류로 세계 속에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오페라 안에서도 불륜은 가끔 차용되는 관심의 대상이며, 특히 사실주의 오페라에서는 끔찍한 죽음의 비극적 결말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도출해 내고 있다.

지난 2018년 푸치니 오페라 삼부작 탄생 기념으로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된 ‘외투’. 출처 뉴욕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푸치니에게 광적으로 집착한 필자에게 그의 완성된 마지막 오페라 <삼부작-Il Triticco, 2018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초연> 직관은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이 작품은 제작 여건상 각기 다른 많은 배역과 서로 이질적인 음향의 대비 등 다양한 이유로 우리나라에서 만나기 어려운 작품이었다.

필자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유학하던 시절 로마 오페라극장에서 <삼부작>을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특히 이 세 작품 중 <외투>는 너무 매력적인 작품으로 강력하고 스산한 음향과 마지막 살벌할 정도로 비극적인 죽음과 그 뒤에 다가오는 고요함은 당시 필자에게 감동을 넘어선 충격으로 다가오는 작품으로 뇌리에 남았다. 이러한 색다른 푸치니와의 만남은, 후일 필자가 푸치니 연구에 매진하게 되는 가장 큰 영향을 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푸치니 오페라 ‘외투’ 공연 중 미켈레가 자신의 연적 루이지와 조르제따를 죽이는 장면. 출처 뉴욕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한 시간 단막 오페라 세 작품을 함께 올려지길 바랬던 푸치니는 단테 <신곡>에서 말하는 ‘슬픈 시작’에 이어 ‘행복한 결말’처럼 <삼부작>을 통해 세 편의 각기 다른 인간 사회의 서사를 미술관에서 세 폭의 그림을 보듯 관람하길 원했다. <삼부작>은 불행의 시작과 이어지는 구원의 빛 그리고 해학과 즐거움이라는 결말로 사랑과 미움, 인간의 죄와 구원, 인간의 욕망과 이기적 태도 등이 다양하게 표현돼 있고 종교와 교훈을 모두 갖춘 수작이다.

이번에 이야기할 는 <삼부작>의 첫 번째 작품 단테 <신곡>의 지옥편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슬픈 시작’에 해당된다. 이 작품은 인간 삶의 무상함과 불륜의 사랑으로 일어나는 비극적 결말을 통한 교훈을 이야기한다. <외투>는 칠흑 같은 어두움과 불륜으로 인한 끔찍할 정도로 무서운 살인을 소재로 한 사실주의 색채가 강한 오페라이다.

오페라 ‘외투’에서 루이지 역으로 열연한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 출처 뉴욕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50살의 선주 미켈레가 생명의 은인인 그의 아내 조르제따는 25살로 나이 차이가 크게 나며 근래에 부부관계가 원만하지 않고 미켈레는 항상 자신보다 너무 어린 아내 때문에 불안해한다. 조르제따는 연하남 하역부 루이지와 불륜 관계이다. 두 사람은 자신의 모습을 한탄하며 대도시를 동경하고 있고 그곳에 가길 꿈꾸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오늘 밤, 성냥불을 켜서 그것을 신호로 만나 도망갈 것을 약속한다.

미켈레는 차가운 조르제따의 반응으로 남자가 있음을 직시하고 복수를 다짐한다. 미켈레는 배 위로 나와 담배 파이프에 불을 붙이기 위해 성냥불을 켜는데 그것을 신호로 오인한 루이지가 모습을 보인다. 미켈레는 그가 조르제따와 불륜의 남성임을 직감하고 선상에 등장한 루이지의 목을 졸라 자백시킨 후 그를 죽이고 시체를 자신의 외투안에 숨긴다. 그때 조용한 소란에 조르제따는 겁에 질려 등장하고 미켈레는 분노로 외투를 펼쳐 루이지 시체에 그녀의 얼굴을 들이대며 죽여 버린다. 둘의 시체를 두고 미켈레는 “흘러라, 영원한 강이여. 깊은 수수께끼를 숨긴 채 괴로움의 초조함은 그칠 날이 없다”고 고뇌를 독백하며 막이 내린다.

오페라 ‘외투’ 포스터. 출처 리꼬르디사
이 작품을 상징하는 미켈레의 너른 외투는 아내 조르제따를 품고 사랑을 나눈 매개체임과 동시의 자신에 연적인 루이지를 죽여 시체를 품었던 공간이기도 하다. 바다의 추위를 막고 자신의 사랑을 품으며, 자신의 역정의 삶과 함께한 미켈레의 외투를 보며, 푸치니의 특별한 외투 사랑을 볼 수 있다. 푸치니 자신의 대표작 <라 보엠> 중 여주인공 미미의 약값을 구하기 위해 평생 자신과 함께 한 외투를 팔려는 철학가 콜리네의 아리아 ‘외투의 노래’를 보아도 알 수 있다. 멋진 외투를 걸치고 파이프 담배를 물었던 괴팍한 스타 푸치니가 자신의 외투에 대한 상념을 두 작품에서 투영한 것이 아니겠냐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국내에서는 <삼부작> 중 마지막 작품인 부파 오페라 <잔니스끼끼>가 인기 있는 작품으로 자주 무대에 올려지며, 출연자 전원이 여성인 <수녀 안젤리카>가 가끔 올려지곤 했다. 하지만 첫 번째 작품인 <외투>는 드라마틱한 오케스트라의 음향을 지배해야 하는 성악가의 부재와 너무 무거운 주제로 인해 자주 연주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세 작품이 함께 올려지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내년은 푸치니 서거 100주년을 맞이한다. 국립오페라 극장을 비롯해 세계 유수의 극장에서는 푸치니를 기념하기 위한 오페라를 준비 중이다. 이탈리아 로마 오페라극장은 2023-2024시즌 오페라로 <삼부작>을 공연한다. 20여 년 전 이탈리아 로마 오페라극장에서 만났던 <삼부작>, 당시 영웅적인 목소리로 유학도 들의 우상이었던 테너 마르티누치를 만났던 기억이 가슴을 뛰게 한다. 기회가 다시 된다면 로마에서 <삼부작>을 만날 수 있길 소원한다.

광주에서도 브랜드 있는 오페라가 제작돼 매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특히 세계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푸치니의 작품이면 참 좋을듯 싶다. 푸치니의 <라 보엠>을 매년 12월에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만날 수 있듯이, 대한민국에서 오페라 <라 보엠> 또는 <잔니스끼끼>를 보고 싶으면, 광주를 찾을 수밖에 없도록 하기 위한, 한 작품의 고도화와 지속성을 지역 오페라계나 예술계에서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가장 스펙트럼이 넓은 공연문화예술은 오페라다. 가장 시민들이 많이 찾는 시립 교향악단 공연과 함께 강력한 티켓 파워를 보여주는 단체 역시 광주 시립오페라단이다. 융복합 예술이 대세인 이 시대, 시대정신을 투영하고 재미와 예술성까지 광주 오페라의 도약을 꿈꾸며, 내년 푸치니 서거 100주년을 위한 멋진 공연을 기대해 본다. 최철 조선대 초빙교수·문화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