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서석대> 상사화 필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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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전남일보]서석대> 상사화 필 무렵
최도철 미디어국장
  • 입력 : 2023. 09.19(화) 17:38
최도철 국장
 “선운사 동백꽃은 너무 바빠 보러 가지 못하고/ 선운사 상사화는 보러 갔더니/ 사랑했던 그 여자가 앞질러가네/ 그 여자 한 번씩 뒤돌아볼 때마다/ 상사화가 따라가다 발걸음을 멈추고/ 나도 얼른 돌아서서 나를 숨겼네” -정호승, ‘선운사 상사화’

 불갑사에도, 용천사에도, 선운사에도…. 가을장마 그치고 하늘이 높아지면서 절집 들어가는 언덕배기나 마당에 상사화가 아름답게 피었다.

 상사화는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잎새와 꽃이 서로 애타게 그리워하지만 끝내 만날 수 없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꽃말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가녀린 연초록 꽃대 위에 빨간 수관을 얹은 황홀한 자태. 그 붉은 꽃에 얽힌 전설들도 애틋하다. 거개가 절집의 스님과 여염집 처자의 이루지 못한 사랑이야기다. 서너 가지 전설이 전해 오지만 대강은 이렇다.

 절간의 한 스님을 사모하는 딸을 그 부모가 마음에도 없는 사람과 억지 결혼시켜 살게 하자, 이루지 못한 사랑에 애만 태우다 죽은 여인의 넋이 꽃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와 다르게 백일 탑돌이를 하는 아름다운 처자를 연모하던 젊은 스님이 끝내 말 한마디 못 붙이고 가슴만 앓다가 숨졌는데, 이듬해 봄 스님 무덤가에 난초 같은 것이 올라오고, 잎이 진 곳에서 꽃대가 솟아 예쁜 꽃을 피웠다는 전설도 전해온다.

 상사화는 사찰 주변에 많이 심었다. 무슨 연유일까. 불가의 심오한 철학이 이 꽃에 배있다고 한다. ‘마음속에서 불일 듯 이는 번뇌와 열반은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 깨달음은 번뇌가 사라져야 비로서 드러날 수 있다’는 명징한 진리를 대중들에게 상징적으로 가르쳐 주기 위해서란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상사화의 뿌리는 천연 방부제로 널리 쓰였다. 경전을 만들 때 뿌리로 풀을 쒀 바르면 좀이 슬지 않는다고 한다. 탱화를 그릴 때도 천에 바르면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다고 한다.

 어느 해보다 무더웠고 비가 많이 내렸던 올 여름이 잦아든 매미소리와 함께 지나갔다. 시나브로 소슬바람 불어오고 귀뚜라미 소리 청아한 초가을이니 마실다니기 더 없이 좋은 계절임이 분명하다. 이번 주말에는 예식장 들렀다가 선운사에 가야겠다. 해탈스님의 은은한 미소같은 상사화보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