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지발위 시리즈>"장애·비장애 경계 없애는게 최우선 과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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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지발위 시리즈>"장애·비장애 경계 없애는게 최우선 과제죠"
●광주를 장애인 e스포츠 메카로 <10>제주장애인e스포츠연맹·제주e스포츠협회
제주도 2년 연속 캠프 지원·개최
장애·비장애인 모두 체험 가능해
종목 확장 고민 중… 심판 양성도
괸당, 발목잡기에서 몸집키우기로
  • 입력 : 2023. 10.04(수) 17:33
  • 양가람 기자 lotus@jnilbo.com
지난 3월23일부터 29일까지 제주 메타스포츠센터에서 열린 ‘전국장애인e스포츠캠프’에서 참여자가 심장제세동기체험을 진행하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장애인e스포츠연맹 제공
제주도는 ‘세계장애인e스포츠챔피언쉽’ 등 장애인은 물론 비장애인 대상 국제 규모의 대회들을 수차례 치뤄낸 이력이 있다. 그럼에도 섬 지역 특유의 보수적인 분위기 탓에 ‘e스포츠 불모지’라는 수식어가 꼬리표처럼 달렸다.

이에 제주는 e스포츠 산업 부흥에 발목 잡았던 ‘괸당’문화(지연과 혈연에 중복이 생겨 모두가 친척이라는 문화)를 역으로 이용, 장애와 비장애를 아우를 수 있게끔 몸집을 키워나가겠단 전략을 세웠다.

지난 2008년 9월 창립·발족한 대한장애인e스포츠연맹은 2011년 9월 제주 한라체육관과 제주대학교에서 ‘세계장애인e스포츠챔피언쉽’을 개최했다.

세계 최초로 장애인을 위한 e스포츠대회가 제주도에서 열린 것이다. 대회 참여 의사를 밝힌 국가만 43개에 달하는 등 성과를 거두며 대한민국이 장애인 e스포츠 분야에서 주도권을 갖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아쉽게도 여기까지였다. 제주는 장애인e스포츠 분야에 대해 더 이상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당연히 관련 행사도 단발성에 그쳤다.

10여 년이 흐른 지난 2020년에야 비로소 제주특별자치도장애인e스포츠연맹(회장 주문배)이 만들어졌다. 소속 임원은 10명이다.

그럼에도 맹렬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특히 제주의 재정후원을 받아 지난해 이어 2년 연속 ‘전국장애인e스포츠캠프’를 개최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었다. 이 캠프는 장애인e스포츠선수뿐 아니라 e스포츠 입문을 희망하는 장애인, 비장애인들에게 e스포츠와 VR(가상현실), AR(증강현실) 체험프로그램을 무료로 개방하는 체험형 프로그램으로, 올해는 도비 6000만원을 들여 일주일간 진행했다.

이민호 제주특별자치도장애인e스포츠연맹 사무국장은 “제주지역 장애인e스포츠 단체 홍보 차 마련된 이번 캠프는 카트라이더와 닌텐도 등 다양한 e스포츠 종목 경험은 물론, VR 지진안전 체험과 심장 제세동기 체험 등 장애인의 긴급상황 대처 능력을 기르는 데 초점을 뒀다”며 “오전과 오후 두 차례로 나눠 진행됐는데, 사전 신청한 186명의 참가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장애인e스포츠캠프가 명실상부한 캠프로 자리 잡을 수 있게끔 내년엔 e스포츠 종목을 늘리고 체험 요소들도 다양화해 진행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현재 제주 지역엔 지적장애 학생 3명이 연맹의 도움을 받아 장애인e스포츠 선수(닌텐도)로 훈련·활동하고 있다. 훈련은 제주장애인재활협회 공간을 빌려 진행된다. 연맹 측은 보다 많은 장애인e스포츠 선수 양성을 위해선 부모들의 인식 전환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사무국장은 “전국 장애인 체육대회에 e스포츠 종목이 아직 없다 보니 선수층은 학생 위주로 구성됐다. 그런데 아직까지 기성세대들은 e스포츠가 오락, 게임이라는 인식을 많이 갖고 있어서 자녀를 e스포츠 선수로 키우고 싶어하는 부모가 많지 않다”며 “장애인e스포츠는 비장애인e스포츠보다 종목도 적고, 관심이나 지원도 미약하다. 장애인e스포츠 부문 심판 양성도 비슷한 상황이다. 일정 시간 교육과 시험을 통과하면 심판 자격을 얻을 수 있지만, 현재 제주도 내 심판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은 나밖에 없다. 부모들의 인식 전환이 먼저 이뤄지면 장애인e스포츠의 저변도 넓어지고, 관련 분야 직업군 형성 등 선순환을 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는 제주도 특유의 ‘괸당’문화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를 지우지 못하게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연고주의를 뜻하는 괸당은 제주 사람들에겐 친숙하고 정감이 넘치는 말이지만, 외지인(육지 사람들)에겐 제주 사회에 접근하기 어렵게 만드는 벽처럼 인식된다.

이는 e스포츠 영역에도 적용되는데, 한국e스포츠협회 제주지회(회장 오지욱)와 제주특별자치도장애인e스포츠연맹은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교류가 없다. 제주 내에 굵직한 e스포츠 행사가 여러 차례 열렸을 때도 관련 단체가 아닌 이상 소식을 전해 듣지 못했다고 한다.

이상민 제주특별자치도e스포츠협회 수석부회장은 “한국e스포츠협회가 설립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제주지회는 지난 2019년에야 겨우 제주도체육회 인정단체로 가입됐다. 설립 이후 활동 비용도 거의 다 회장단 자비 부담이었다”며 ‘e스포츠 불모지’ 제주의 현실을 토로했다.

이어 “e스포츠에 대한 전반적 인식부터가 낮은 상태라, 장애인e스포츠에 대한 관심은 더욱 없는 편”이라며 “지난 2019년 서귀포시 장애인협회와 손잡고 장애인배 e스포츠 대회를 개최해 보려 했지만 무산됐다. 그동안 협회 차원에서 시니어·군장병 등을 포함해 수차례 PC방배 e스포츠챌린지, 학교대항전 등 행사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제주특별자치도장애인e스포츠연맹에 대한 내용도, 그들이 진행했던 캠프 이야기도 들은 바 없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괸당 문화를 이용해 e스포츠에 대한 인식 개선은 물론 장애·비장애 경계를 지워갈 수 있다는 희망도 내비쳤다.

이 부회장은 “제주지역 75개교에 e스포츠 동아리가 하나도 없어 교육청, 대학 등을 찾아다니며 도움을 요청했다”며 “교육감을 설득한 끝에 예산을 확보해 오는 11월 25일 교육청배 e스포츠대회인 ‘e스포츠동아리 학교 대항전’이 첫 개최된다. 학교가 전면에 나서 e스포츠를 활용해 지역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기성세대의 인식을 전환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추후엔 제주 괸당문화를 이용, 동문회 등으로까지 연결해 선순환을 도모하고자 한다”며 “자칫 부정적으로 비칠 수 있는 괸당문화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 경계마저도 지워내 모든 사람이 즐길 수 있는 제주e스포츠 만들기에도 일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광주에 장애 청소년·성인들로 이뤄진 지역 최초 e스포츠단 ‘무등’이 있지 않나. 무등 창단 소식을 듣고 몹시 부러웠다”며 “광주처럼 e스포츠 파이가 큰 도시 위주로 의미있는 협약을 맺고, 대회를 자주 열어준다면 e스포츠 리그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거다. 그런 선례가 있다면 제주의 e스포츠 역시 자극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제주 장애인재활협회에서 지적장애를 가진 e스포츠선수들이 닌텐도wii 훈련을 진행 중이다. 제주특별자치도장애인e스포츠연맹 제공
양가람 기자 lotus@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