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떠나는 광주·전남… 의료기반 붕괴 ‘초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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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건강
의사 떠나는 광주·전남… 의료기반 붕괴 ‘초읽기’
전남대병원 등 전공의 부족 심화
지역 의대 졸업자 20% 서울 취업
소아과·산부인과 필수과목 인력난
전남, 1시간내 응급실 이용 최하위
  • 입력 : 2023. 10.19(목) 18:08
  • 노병하 기자 byeongha.no@jnilbo.com
광주 서구의 한 아동병원에서 영업 시간 전부터 대기표를 일찍 뽑기위해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김혜인 기자
곡성보건의료원 내 소아청소년과. 취재하는 수 시간동안 단 한명의 환자도 오지 않았다. 정성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필수의료혁신 전략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무너진 지역 의료 서비스의 공급과 이용체계를 바로 세우겠다”고 강조한 것은 지역 의료계의 현실이 갈수록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광주와 전남을 비롯한 비수도권지역 의사수 부족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고 필수의료 인력 확보도 힘겨워 지역 의료기반 붕괴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분석이다.

●지역 의사 부족현상 심각

지난 17일 전북대학교에서 열린 국회 교육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이 제시한 자료는 지역 의료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더불어민주당 서동용 의원은 ‘올해 7월 기준 국립대병원 전공의 현황 정원 및 현원 현황’을 통해 “서울대병원의 전공의가 5% 부족할 때 화순전남대병원은 23%, 전남대병원은 15%가 각각 정원을 채우지 못해 PA(Physician Assistant·진료지원 간호사) 확대라는 부작용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도종환 의원도 “전남대병원의 경우 최근 촉탁직 의사가 급증하고, 평균 연봉도 전임교수보다 많이 받는 상황”이라며 “지역의 의료서비스 저하가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인구당 의사수를 보면 지역의료 붕괴의 심각성은 더욱 명확해진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국내 활동 의료인력과 병상 현황 자료를 살펴보면 인구 1000명당 활동의사가 2022년 기준 서울은 3.37명이고 광주는 2.62명이며 전남은 1.75명으로 서울의 절반에 그치고 있다.

지역 의대 졸업생들의 타지 유출도 늘고 있다. 서 의원의 자료에 따르면 광주지역 의대 졸업자 20%가 서울로 취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적으로는 지역 의대생의 절반 가량인 45.9%가 서울로 향했다. 반면 전국 의대 졸업자 중 광주로 오는 의사 취업생은 4.5%, 전남 2.5%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전남대병원의 2023년도 전공의 모집 결과 레지던트의 경우 81명 정원에 69명이 선발돼 85%의 채용률을 기록했다. 전남대병원의 레지던트 정원 미달 현상은 수년째 지속되고 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전남대병원의 경우 전체 513명(본원 전공의 이상)의 의사 중 산부인과는 전문의 6명, 전공의 9명 등 총 15명으로 의사 1인당 매월 평균 진료 환자수는 322.6명이다. 소아청소년과는 전문의 17명에 전공의 5명 등 총 22명의 의사가 1인당 매월 평균 146.4명의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응급의학과는 전문의 13명, 전공의 11명 등 총 24명으로 의사 1인당 매월 평균 진료 환자 수는 262.5명이다.

조선대학교병원의 필수 의료과목의 처지도 엇비슷하지만 전남대병원보다는 진료 환자수가 적다. 산부인과는 전문의 5명, 전공의 3명으로 총 8명의 의사가 근무하고 있으면 1인당 매월 평균 진료 환자수는 114명이다. 소아청소년과의 경우 전문의 7명, 전공의 8명으로 총 15명 의사가 있으며 의사 1인당 매월 평균 진료 환자수는 134명이다. 응급의학과도 전문의 8명 전공의 12명 등 총 20명의 의사가 매월 1인당 진료 121명의 환자를 진료 및 치료하고 있다. 특히 소아과의 경우 2023년 레지던트 지원자는 0명이었다.

● 소아과 등 필수의료 부족

전남은 소아과와 산부인과 등 출산·육아를 위한 필수 의료 부족 현상을 넘어 ‘출산 의욕 저하’ 상황에까지 도달한 상태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2022년 8월 기준 전남에 소아과·산부인과가 없는 지자체는 곡성·구례 2곳에 달한다. 산부인과는 없고 소아과만 있는 곳은 영암, 산부인과만 있고 소아과가 없는 곳은 보성·담양·함평·신안 등이다.

지역 의대 졸업생의 20%는 서울로 유출되고 있으며, 80%의 졸업생 중 필수의료인 소아과, 산부인과, 응급의학과 지원자는 매년 줄어들고 있다.

의대가 없는 전남은 상황이 더 심각해 환자들이 응급실 이용조차 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국립중앙의료원이 발표한 ‘공공보건의료통계’에 따르면 지난 2021년 기준, 응급실을 1시간 내 이용한 ‘기준 시간 내 의료이용률’을 살펴보면 서울에선 90% 이상이 치료를 받을 수 있지만, 전남은 51.7%에 불과했다. 이는 전국 최하위 수준이다.

또 ‘최종 치료’ 역할을 하는 상급종합병원의 180분 내 의료이용률은 서울이 99.0%, 전남은 절반인 52.2%다.

이 같은 ‘의료 격차’는 의과대학과 연동해 운영하는 상급종합병원 부재 탓이다.

이런 상황때문에 전남에서는 매년 70만명이 타 지역으로 원정 진료를 떠나고 있고, 이로 인한 의료비 유출만 연간 1조5000억원에 달한다.

지역 의료계는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안영근 전남대병원장은 지난 국감에서 “의사 정원 확대는 일부 필요해 보인다. 의대가 설립되고 의사가 늘어남과 동시에 전문의를 확보하려면 10년 이상 걸린다”면서 “지역의료 수가 등을 고민하면서 의사 수 증가를 같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종합병원 의사도 “솔직히 필수 의료과의 인원 부족은 현 상황이라면 앞으로 더 나아질 수 없다”며 “사람을 늘리고 지역에 잡아둘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없다면 필수 의료 붕괴밖엔 남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노병하 기자 byeongha.n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