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취재수첩>누가 참사의 죄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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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전남일보]취재수첩>누가 참사의 죄인인가
김혜인 사회부 기자
  • 입력 : 2023. 11.07(화) 16:18
김혜인 기자
지난 10월 21일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맞아 만난 유가족들은 “보고싶다”, “그립다”는 말을 가장 많이 했다. 하지만 10월 29일만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지옥’이었다고도 말했다.

이태원 한복판에서 자식이 실종됐다는 소식에 머리가 하얘지며 허둥지둥 올라간 서울은 너무 넓었으리라. 한남동 주민센터를 찾아가 실종신고를 해보고, 받기만을 기다리는 전화에서 들려오는 건 가족의 목소리가 아닌 다른 이의 목소리였다. 그렇게 수십시간을 헤매서야 겨우 만난 아들의 얼굴은 너무 차가웠고, 웃음이 많던 딸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대명천지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어처구니없는 비극 앞에 “놀러간 사람이 잘못이다”, “본인들끼리 놀다 죽었는데 왜 국가가 나서야 하느냐”는 등의 2차 가해가 일어나기도 했다.

누가 참사의 죄인인가. 그저 핼러윈 분위기를 만끽하기 위해 이태원으로 모인 이들의 잘못일까.

예년처럼 행정당국에서 인파 관리를 했더라면, 위험하다는 신고를 받고 일찍이 조치했더라면, 집회·시위 현장보다 이태원에 많은 경찰력을 투입했더라면 참사는 빚어지지 않았을 것이라 유가족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세월호 참사를 보고도 아직도 개선되지 못한 정부의 대응과 고쳐지지 않은 안전불감증을 뿌리뽑을 이태원 특별법 제정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유족들이 이태원 특별법 제정을 위해 힘쓰고 있는 가운데 9년째 참사 대응의 책임을 묻고있는 세월호 유가족들은 다시 한 번 큰 상처를 입었다.

지난 2일 대법원 재판부는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임무에 실패한 해경 간부들에 대해 무죄 판결을 최종 선고했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 선내 사정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을 거라는 이유에서다. 결국 303명을 숨지게 한 책임자 처벌은 김경일 전 목포해경123정장만이 업무상과실치사로 징역 3년을 확정받은 것이 전부다.

대법원의 재판은 단순히 이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넘어서 이태원, 오송 참사 등 많은 비극 앞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신호탄을 발사한 것이나 다름없다.

국가는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책임질 의무가 있다. 대법원 판결을 뒤집을 수 없다 할지라도 밝혀야 할 죽음 앞에서 외면하지 않는 정부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