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이윤선의 남도인문학> “진도에 가서는 북치는 법 가지고 따지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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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전남일보]이윤선의 남도인문학> “진도에 가서는 북치는 법 가지고 따지지 말라”
370)진도북의 위상
“대개의 군무(群舞)를 북놀이로 호명하는 반면 무용이나 춤사위를 강조하는 방편으로 북춤이라 한다. 국내에서 양손에 채를 쥐고 북을 연주하는 사례는 진도북놀이(북춤)가 유형적이고 대표적이다”
  • 입력 : 2023. 11.09(목) 12:54
2023. 진도학회 국제학술대회 아시아의 북연주와 진도북놀이의 위상 학술대회, 북페스티벌 사진
2023. 진도학회 국제학술대회 아시아의 북연주와 진도북놀이의 위상 학술대회, 북페스티벌 사진
2023. 진도학회 국제학술대회 아이사의 북연주와 진도북놀이의 위상 학술대회, 북페스티벌 사진
“상여가 나갈 때 북을 치고 앞에서 인도하고 큰 소리로 울며 뒤에서 따라가는 것은, 결코 오랑캐의 풍속이다. 의관을 갖춘 집안에서 어찌 차마 이런 풍습을 본받겠는가. 반드시 요령(搖鈴) 하나를 준비하여 북을 대신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또 애경사와 관계된 일은 더더욱 반상(班常)의 구별이 있어야 마땅하다.” 진도에 유배 왔던 유와 김이익이 그의 저술 『순칭록(循稱錄)』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진도의 풍속을 힐난하고 나무라는 언행은 더 이어진다. “우리 성상께서 등극하여 5년이 된 을축년(1805)은 내가 벌을 받고 이곳으로 유배 온 지 6년이 되는 해이다. 이곳 진도에서 오래 있었기에 이 지역 풍습에 대해 많이 들었는데 대부분 하나같이 그릇되어 개탄스럽고 나쁘게 여겼으나 어떻게 고칠 방법이 없어 항상 근심할 뿐이었다.” 상고하니 218년 전의 언급이다. 이외에도 숱한 대목들이 있지만 위 언술을 통해 두 가지만 확인해두고자 한다. 첫째는 양반과 일반 백성들을 구별하는 풍속의 존재, 둘째는 이백 년 전에도 진도에서는 상여 앞에서 북을 쳤다는 점이다. 순칭록과 관련해서는 본 지면 2018년 11월 22일 자로 다룬 바 있다.

상여 앞에서 북을 쳤다는 기록은 소치 허련이 진도군수에게 건의했다는 변속팔조(變俗八條)에도 나와 있다. <진도군지>(1976) 404~405쪽에 의하면, 소치 허련 선생이 진도군의 타락된 기강과 문란해진 풍속을 바로잡기 위해 서기 1873년 계유 11월에 향중(鄕中)에 건의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더불어 상고하니 150년 전이다. 8개의 조항 중 세 번째가 북과 관련된다. 여전타고(轝前打鼓) 즉, 상여 앞에서는 북을 치지 말라는 내용이다. 지면상 내용 전부를 인용해두지 못하지만, 상두군들의 힘을 북돋우기 위해 북을 친다는 인식은 체크해둘 필요가 있다. 보다 심층의 차원을 간과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위 두 사례를 뒤집어 생각하면 상여 앞에서 북을 치고 혹은 노래하며 장례하는 방식은 매우 오래된 전통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이 전통이 고구려까지 소급해 올라간다는 점 여러 차례 밝혀두었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다. 중국 절강성에서는 장례 의례로 사십구재(四十九齋)가 보편적이다. 첫 칠일재는 두칠(頭七)이라고 하는데 6일째에 한다. 이것을 또 고두육아(敲頭六兒)라고 부른다. 스님이 북을 치면서 시왕(十王)에게 절하면서 참(懺)을 한다. 중국에서도 진도와 마찬가지로 장례에 북을 사용한다는 점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아시아의 북 혹은 상례는 어떻게 같고 다를까? 며칠 전 진도학회 주관으로 ‘동아시아의 북 연주와 진도북놀이(북춤)의 위상’이란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진도학회장으로서 나는 이렇게 초청의 말씀을 드렸다. “한국에서는 보통 한 손에 채를 쥐고 연주한다. 하지만 진도북놀이(북춤)은 양손에 채를 쥐고 연주한다고 해서 ‘양북’이라고 한다. 상여 운구에 사용되었다는 고대의 기록과 증언이 있다. 전통장례의식과 관련된다는 뜻이다. 모내기할 때 의례나 퍼포먼스로 연행되기도 했다. 전통적인 북은 상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내력을 가지고 있다(이하 생략).”

안동에 가서는 제사법 가지고 따지지 말고 진도에 가서는 북치는 법 가지고 따지지 말라-진도북놀이와 북춤의 특징



안동의 의례 전통과 진도의 놀이 전통을 비교해 나온 말이다.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라는 기치를 내걸었던 안동처럼 진도의 북이 가지는 위상이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218년 전의 유와 김이익과 150년 전의 소치 허련은 진도의 토대였던 풍속을 이해하지 못했다. 조선 후기로 올수록 더욱 강력해진 유교 이데올로기가 그들의 발언에 선명하게 찍혀있다. 돌이켜보아 한낱 섬 지역의 풍속을 왕실이나 양반 사대부의 격조에 비추어 이해한 시선을 어찌 생각해야 할까? 오늘날 진도북이 도지정 무형문화재로 세 유파가 동시에 지정되기도 하고, 박병천유파는 한국 제20호 명작무(名作舞)로 지정되는 는 등 그 위세가 등등하다. 국가나 무용협회의 지정뿐만 아니라 한해에만 천여 명이 넘는 교육생을 배출하는 등 국제적으로도 위상이 높다. 중국, 일본을 비롯해 각 나라에서 교습을 하여 이름을 내는가 하면 해외 동호인들이 국내로 찾아와 진도북놀이와 북춤을 배우기도 한다. 각 유파별 특성에 대해서 내가 써둔 논문이 있다. 양태옥류, 박관용류, 장성천류를 비롯해 박병천류까지 네 개의 유파를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그 특징들을 비교해놓은 졸고, ‘진도북춤의 유파별 특성을 통해서 본 상관성’(대한무용학회 논문집 48호, 2006)을 참고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2018년 6월 1일 본지 칼럼을 통해 ‘진도북 치는 법’을 다룬 바도 있다. 북놀이와 북춤의 변별을 칼로 두부 자르듯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의 군무(群舞)를 북놀이로 호명하는 반면 무용이나 춤사위를 강조하는 방편으로 북춤이라 한다. 북놀이는 북가락에 주목하고 북춤은 춤사위에 주목한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겠다. 경상도 농악 중 일부 남아있지만, 국내에서 양손에 채를 쥐고 북을 연주하는 사례는 진도북놀이(북춤)가 유형적이고 대표적이다.



남도인문학팁

동아시아 북연주와 진도북놀이의 위상



지난 11월 2일 국립남도국악원과 진도무형문화재 전수관에서 열린 학회와 페스티벌의 주제는 ‘동아시아 북연주와 진도북놀이(북춤)의 위상’이었다. 아시아의 북 관련 의례, 놀이, 춤 등에 대해 비교해보고자 열린 학술대회였다. 1박 2일 동안 열린 이 대회의 두 번째 날에는 전국의 대표적인 북놀이와 북춤, 인도와 필리핀의 북 연주 등 국제 북페스티벌(Drum Festival)을 겸하였으므로 기대 이상의 큰 성과가 있었다. 2,000년에 시작한 진도학회가 작은 군 단위의 학회임에도 국내외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쳤던 것은 진도가 가진 유무형의 자원이 그만큼 풍부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프라딥타 구마르 모하라나는 인도의 전통 악기에 대해 발표하고 현란한 손놀림으로 다양한 인도 전통 가락들을 연주해주었다. 정지태는 인도네시아 뚤룽아궁 지역의 북춤 ‘레옥끈당’의 신화와 표상에 대해 발표해주었다. 차오바후이는 대만의 북 의례에 대해 지역신앙과 신체라는 주제로 타이난 용덕궁의 도고진(跳鼓陣)에 대해 발표해주었다. 장웨이는 중국의 전통북에 대해 발표하고 특히 양려평의 운남영상에 대해 집중 분석해주었다. 아라키 마호는 남일본의 북춤을 신앙, 세더, 젠더라는 키워드로 주목해주었다. 로돌프 리베슈는 필리핀의 전통적이고 혁신적인 악기들을 발표하였고 특히 ‘자연파괴와 갱생의 일곱날’이라는 주제로 공연해주었다. 박강열은 무형문화재가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강은영은 박병천류 진도북춤의 특징에 대해 발표해주었다. 진도의 북놀이가 본래는 상여 앞에서 치던 의례였다는 점, 상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동아시아를 관통하는 유구한 전통이 스며들어 있다는 점을 알릴 수 있어 고무적이었다. 30여 년 전 진도의 특유한 가락들을 모아 사물놀이를 만들고 북춤 솔로 활동을 다년간 했던 나의 이력과 더불어 20여 년 전 관련 논문을 쓴 후, 진도학회장을 맡아 기획한 성과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진도북의 맥을 불교와 힌두교 전통까지 올려잡아 해양문화 토대의 동아시아 보편의 전통, 나아가 진도의 탁월한 전통으로 해석하는 중이다. 장차 아시아 여러 나라의 북놀이를 묶어 유네스코 무형유산으로 등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북놀이(북춤)은 인류가 영원히 보존하고 전승해가야 할 문화유산이다.

이윤선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전남도 문화재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