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칠순에 받은 졸업장… 만학도 85명 “꿈만 같아요”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사회일반
[전남일보]칠순에 받은 졸업장… 만학도 85명 “꿈만 같아요”
●광주희망학교서 졸업식
동구 무돌교회서 졸업행사
평균연령 65세 주경야독도
“면허증 따고 가수 되고파”
  • 입력 : 2024. 02.14(수) 17:58
  • 송민섭 기자 minsub.song@jnilbo.com
광주희망평생교육원 제 10회 초등 및 제 7회 중학 졸업식이 14일 광주희망평생교육원 중1 교실에서 임택 동구청장과 한미준 이사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려 졸업생들이 졸업식 노래를 제창하고 있다. 나건호 기자
“한글을 몰라 부끄러웠고 배움이 부족했던 게 평생 한이었습니다. 이젠 자녀들과 문자도 주고 받고 있습니다. 그동안 중학생이 되는 이 순간을 밤마다 꿈꿨습니다.”

14일 광주 동구 무돌교회에서 열린 희망학교 만학도들의 졸업식장. 졸업생 대표로 초등 3단계 철쭉반 한한자(69)씨가 연단에 올랐다. 한씨는 남들 앞에서 말하는게 쑥스럽다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이내 목을 한번 가다듬고 소감문을 펼쳐 낭독을 시작했다.

그는 “일하면서 못 배웠다는게 늘 한으로 남아 있었다”며 “지난해 3월 희망학교 문을 두드린 게 생생하다. 계단을 오르면서 손이 어찌나 떨렸던지 모른다”고 말했다.

한씨는 지난 2021년 입학했다. 30년간 풍암동에서 국밥을 끓이며 자식들을 가르쳤던 그는 글을 배우고 싶다는 소망으로 희망학교 문을 두드렸다.

자녀들은 샤프 3자루, 지우개 5개, 필통과 가방을 선물하는 등 그의 도전을 응원했다.

과거를 회상하던 그의 눈에는 금세 눈물이 맺혔다. 겨우 감정을 추스른 한씨는 “지식과 사랑을 가르쳐 주고 든든한 버팀목이 돼 준 선생님들에 감사드린다”며 한참을 어린 스승에게 고개를 숙이자 객석에선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는 “이제 새로운 꿈을 꾼다. 철쭉반 친구들과 함께 중학교에 가서도 열심히 공부하고 싶다”며 “열심히 해서 꿈을 이루고 싶다”고 말을 맺었다.

한씨의 다음 목표는 운전면허증이다. 글을 배웠으니 필기시험을 볼 수 있다던 그는 “차를 몰고 친정 엄마, 아빠 산소에 자주 가고 싶다. 아이들한테 매번 가자고 하면 눈치가 보인다”며 웃었다.

한 씨의 낭독이 끝나자 졸업식 노래가 흘러나왔다. 배움의 소중함과 어려움을 잘아는 졸업생들은 노래를 부르며 축하해줬다.

졸업생 대표 초등 3단계 철쭉반 한한자(69)씨가 졸업장을 들어 보이고 있다. 송민섭 기자.
오모(76)씨도 “이제 시작이다. 대학까지 가보겠다”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32년간 광주 대학병원에서 재단 실장을 역임한 그는 음악가 인생을 살아보고자 학교에 입학했다.

오씨는 “다음 목표는 고등학교”라며 “대학교 실용음학과에 진학해 열린음악회에 가수로 나서 멋지게 노래 한곡 부르고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포부를 전했다.

올해로 초등 10회 중등 7회째 졸업식이 열린 이날 학생들은 졸업식이 끝난 후에도 교실을 쉽사리 떠나질 못했다. 꽃다발을 들고 온 자녀들과 기념촬영을 하가니 한참동안 교실을 서성이기도 했다.

이날 초·중학교 과정을 마친 졸업·이수생 85명 중 대부분이 환갑을 넘긴 나이였다. 거쳐간 졸업생만 400명이 넘는다.

희망학교는 1968년 화순에서 학교를 진학하지 못한 청소년을 대상으로 정영식 초대 교장이 학교를 만들면서 시작됐다. 청소년 수강생들이 줄면서 1980년 이후 광주로 이전됐고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야학 형태로 자리 잡았다. 1988년 신안교회 故 박성수 장로가 ‘야학 목적으로 써 달라’는 유언을 남기면서 현재 계림동 야학반 건물을 기증했다.

2000년 관계자들이 뜻을 모아 희망학교평생교육 재단을 설립하고 재단 산하로 운영하고 있다.

영어 수업을 맡았던 한미준 원장은 학생들에게 ‘건강할 것’을 당부했다. 한 원장은 “한평생 원없이 공부하려면 건강해야 한다”며 “배움이 쉽지 않은데 모든 것을 이겨내고 졸업한 학생들이 대견스럽다”고 말했다.
송민섭 기자 minsub.so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