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서석대>동백과 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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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전남일보]서석대>동백과 봄길
최도철 미디어국장
  • 입력 : 2024. 02.19(월) 17:28
최도철 미디어국장
 강진 백련사 동백축제가 이번 주말부터 열린다는 소식이 아침신문에 실렸다. 절집과 초당을 오가며 다산과 혜장스님이 거닐었던 만덕산 동백림에서다.

 쇠잔해가는 삭신에, 마음에라도 봄물 들이려, 이태 전 이맘때 만덕산 오솔길에 몸을 부린 적이 있다. 백련사 일주문, 동백숲, 해월루, 다산초당에 이르는 길이었다.

 그날 보았던 기억의 편린을 소환하니 동백꽃에 얽힌 몇 가지 이야기들이 함께 떠오른다.

 동백은 능소화나 무궁화처럼 통째로 진다. 유치환이 그의 시 ‘동백꽃’에서 노래했듯 ‘목 놓아 울던 청춘의 피꽃’으로 피었다가 절정에 이르면 툭, 투둑 미련없이 떨어지는 것이다. 이를 두고 감성이 남다른 사람들은 하늘에서, 땅에서, 가슴에서 세 번 피는 꽃이라 했다.

 애달프고 처연해, 지는 모습도 아름다운 동백꽃은 시나 소설의 소재로 널리 쓰였고, 때로는 영화, 드라마, 가요에도 곧잘 등장했다.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가 부르는 국민가요 ‘동백아가씨’는 ‘헤일수 없이 수 많은 밤을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로 시작하고, 음유시인 정태춘은 ‘선운사 동백꽃이 하 좋다기에’라는 노래에서 ‘그 골짝 동백나무 잎사구만 푸르고 대숲에 베인 칼바람에 붉은 꽃송이들이 뚝 뚝~’이라는 가사를 되뇌인다.

 자유로운 영혼 송창식도 동백꽃을 노래했다.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예요~’. ‘선운사’라는 노래이다.

 추사가 제주 유배생활중 아내에게 보낸 서간에도 동백꽃이 나온다. 엄동설한을 견디고 붉은 꽃망울을 터뜨리는 동백을 두고 ‘동백꽃이 붉게 타오르는 이유는 당신 눈자위처럼 많이 울어서일 것이오’라며 애타는 그리움을 삭였다.

시와 시인의 행적을 따로 떼놓을 수 없어 늘 두 가지 그림자가 어른대지만, 동백을 소재로 한 시의 절창은 역시 언어의 연금술사 미당 서정주의 작, ‘선운사 동구(禪雲寺 洞口)’이다.

 ‘선운사 고랑으로/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작년 것만 오히려 남았습디다./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디다.’ 이 시에 홀려 선운사 동백을 보러 고창을 찾은 게 몇 번인지 모르겠다.

 봄이 오려는가. 우수가 지나면서 물기 밴 바람이 불더니, 벚꽃나무 가지에 연붉은 색이 감돌고, 수선화 새순이 손톱만큼 올라왔다. 개나리 꽃눈 틔우는 소리, 개울가 버들개지 뒤척이는 소리, 천지사방에서 봄소리도 들린다.

 이번 주말에는 강진이든, 고창이든 봄마실 한 번 갈 참이다. 산너머 조붓한 오솔길에도, 들너머 뽀얀 논밭에 찾아오는 봄님 맞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