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더이상 버틸 수 없어요” 짐싸는 교수·전임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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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전남일보]“더이상 버틸 수 없어요” 짐싸는 교수·전임의들
●대형병원 7일째 비상진료체계
의료계 “내달 의료대란 우려”
환자 “검진·수술 공백 두려워”
정부, 집단행동시 검·경 협력
  • 입력 : 2024. 02.26(월) 18:18
  • 정성현 기자 sunghyun.jung@jnilbo.com
정부의 의과대학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한지 일주일째인 26일 조선대학교 병원 입원과 퇴원 창구에는 다소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양배 기자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증원 방침에 반발하는 전공의(인턴·레지던트)들의 집단 사직 여파가 일주일째 지속되는 가운데, 그동안 의료 공백을 메워 온 교수·전임의(펠로)의 이탈이 가시화되고 있다. 의료계는 “정부의 재빠른 대처가 없다면 내달께 걷잡을 수 없는 의료대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부는 의사들의 현장 복귀 마지노선을 29일로 제시, 미복귀·집단행동에 대해 ‘검경 협력아래 엄정 대응할 것’을 천명했다.

26일 의료계에 따르면, 광주·전남 전임의들이 이달 말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재계약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임의란 전공의 과정(인턴 1년·레지던트 3~4년)을 마치고 전문의 자격 취득 후 병원에 남아 세부 전공을 배우는 의사를 말한다.

지역에서는 조선대병원에 근무 중인 전임의 14명 중 절반 이상이 근로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병원 측에 통보했다. 재임용 포기 의사를 번복하지 않는다면 이들은 다음 달인 3월부터 병원을 떠난다.

전남대병원 역시 오는 29일까지 전임의들에게 재계약 의사를 확인하는데, 상당수가 '다시 계약하지 않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조선대병원 전임의 A씨는 “전공의 집단이탈 이후 업무가 대폭 늘었다. 전문의(페이닥터 등)보다 못한 봉급에 연구는커녕 상시 비상근무만 하고 있으니 직업에 회의를 느끼는 이들이 많다”며 “정부-의료계 대립이 당분간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떠나 있겠다는 의사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의사 면허를 취득해 새로 전공의가 되는 ‘예비 인턴’들의 임용 포기도 속출하고 있다. 전남대병원에 입사키로 했던 인턴 예정자 101명 중 86명(85%)이 임용을 포기했다. 조선대병원에서도 신입 인턴 36명이 모두 임용포기서를 제출했다.
대형병원 전공의들이 집단사직을 예고한 시점이 다가온 가운데 최근 광주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뉴시스
눈앞으로 다가온 의료공백 현실화에 환자들은 불안감을 내비쳤다.

오는 7월 조선대병원에서 출산 예정인 30대 양모씨는 “조대병원에서 임신기간 내내 진료를 받고 있다. 출산 예정 시기까지 파업이 이어질까 걱정된다”며 “병원 담당 교수는 산모와 태아의 상태를 가장 잘 안다. 그간 쌓은 신뢰 관계도 깊다. 이제 와서 다른 병원을 알아보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양씨는 ‘갑작스러운 위급상황 시 대처가 쉽지 않다’는 점도 큰 문제로 지적했다. 그는 “몇 달 전 태교 여행 도중 작은 출혈이 있었다”며 “당시 곧장 응급실로 가 전문의로부터 적절한 처치를 받았다. 그런데 지금은 휴일·새벽에 위급상황이 생겨도 재빠른 조치를 받기 힘들다. 무엇보다 진료·수술 공백 걱정이 크다”고 강조했다.

보건의료노조는 ‘보건체계 붕괴 가능성’을 시사하며, 정부·의료계가 이른 시일 내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최희선 보건의료노조위원장은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인해 환자와 병원, 노동자 모두의 고통이 커지고 있다. 앞으로 1~2주가 최대 고비일 것”이라며 “전임의까지 이탈한다면 의료계는 ‘파국’을 맞이할 수 있다. 환자들에게는 최악이자 비극적인 상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병원은 진료 정상화를 위해 이탈 의사들에 조속한 업무 복귀를 설득하길 바란다”며 “정부 또한 의사들의 우려점을 보완하는 등 대화를 통한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엄정대응을 천명하며 행정처분 기조를 재확인했다. 행정안전부는 이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통해 집단 사직 전공의들에 오는 29일까지 복귀 마지노선을 적용한다고 밝혔다.

집단행동 주동자 등을 신속히 사법처리할 수 있도록 검·경 협력체계도 구축한다. 기획재정부는 의료공백 장기화에 대비해 대체 의료인력 인건비 지원을 위한 예비비 투입 검토를 추진한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전공의 집단행동으로 인해 의료현장의 혼란이 가중되면서 환자들의 생명·건강 위협이 현실화되고 있다”며 “(의료인력 인건비 지원 등의) 대책들이 전공의 공백을 메울 수는 없다. 떠났던 병원으로 돌아온다면 지나간 책임을 묻지 않겠다. 현장 혼란 최소화에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한편 전남대병원·조선대병원은 핵심 인력이었던 전공의들의 무더기 이탈 이후 비상 진료 체계를 가동, 수술은 응급·기존 예약만 진행하고 비응급·경증환자는 조기 퇴원 또는 2차 의료기관으로 전원하고 있다. 다만 이날 기준 응급의료기관 지정 병원(2차 병원) 19곳의 일반 병동 병상가동률이 평균 80%를 넘겨 조만간 '전원 불가 상태'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정성현 기자 sunghyun.ju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