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세상읽기·한정규>웅덩이에서 개구리가 부들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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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세상읽기·한정규>웅덩이에서 개구리가 부들부들
한정규 자유기고가
  • 입력 : 2024. 02.27(화) 14:25
한정규 자유기고가
입춘·우수가 지나기는 했어도 아직은 날씨가 차갑다. 차갑기만 한 게 아니고 며칠째 매서운 바람이 살갗을 후벼 판다. 성난 파도처럼 앙상한 나뭇가지를 흔들어댄다. 분명 입춘이 지나면 봄은 시작된다.

지난 2월 4일이 절기상으로 입춘이었으니 봄은 봄인데도 봄을 느낄 수가 없다.

들로 나아가 논두렁 밭두렁 길을 번갈아 걸어본다. 겨울 내내 얼었던 땅이 아직도 사각 거린다. 사각 사각 귀전을 파고드는 소리가 두근거림으로 바뀐다.

총각도 아닌 처녀도 아닌 감수성이 예민한 10대 후반 20대 청춘도 아닌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이 아직도 청춘들이 느끼는 이성과 감성이 남아 있음인지, 가슴이 꿍꿍 다듬이질이라니 살아 숨 쉬는 흔적인가 싶다. 넘어질까 잔뜩 긴장을 하고 번갈아 왼발 오른발을 옮겼다.

어디에선가 고통을 호소하는 소리가 가느다랗게 들린다.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폈더니 언덕아래 웅덩이에 물이 고여 있고 물 가까이에 겨울잠에서 갓 깨어 난 개구리 한 마리가 부들부들 떨며 내는 소리였다. 성질도 급한 개구리였다.

봄소식을 듣고 쫓아 나온 것 같았다. 그 녀석을 잡아 따뜻한 방을 꾸며 줄까 생각을 하며 웅덩이 가까이 다가갔더니 펄쩍 뛰어 달아난다. 펄쩍펄쩍 뛰는 모습이 몸이 성치 않아 보였다. 뛰어 달아나는 개구리에게 말을 건넸다.

“나 너를 돕고 싶은데 너는 내 심정도 모르고 도망을 치니 참으로 안타깝구나?”

개구리가 알아들었다는 듯 뛰던 발걸음을 멈추고 볼록 튀어나온 두 눈으로 처다 보며 “개굴개굴” 가느다랗게 소리를 내고서 또 다시 펄쩍 펄쩍 뛰었다.

그 개구리가 냈던 ‘개굴개굴’그 소리가 궁금했다.

이런 소리 아니었을까? 나 잡아 보아라! 그렇게 놀리며 나 당신 같은 사람에게 안 잡혀 절대로 잡히지 않아? 그래 당신 나를 잡아 죽이려고 하는 것 아닌지 알아, 이 추위에 나 얼어 죽을까 걱정이 돼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려고 하는 줄 알아, 하지만 나 인간들의 도움 없이도 얼어 죽지 않을 테니 걱정이랑 하지 마세요.

아니면 내 호의도 아랑 곳 하지 않고 당신 나 잡아 보양식으로 먹고 한 여름 잘 살려고 어림없지?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나쁜 사람 그랬을 수도 있다. 개굴개굴 그 소리가.

아무튼 그 개구리는 펄쩍펄쩍 뛰어 어디론가 가버렸다. 그 날 이후 날씨는 더욱 더 추웠다. 어디서 얼어 죽지나 않았는지 걱정이 됐다.

살랑살랑 여자들 치마 속을 드나들며 간질거리는 봄바람이 한라산 산마루를 넘어 추자도를 지나 남도 들녘을 질러 북상을 하고 있다.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은 그만 두고 저 멀리 남쪽 개천가 양지바른 곳에 무리지어 있는 개나리도 늦잠이 들었는지 기지개는커녕 꽃망울 하나 달고 있지 않다.

봄의 전령이라는 아지랑이는 언제나 찾아 올려는 지 냉기를 가득 머금은 바람만 오늘도 그칠 줄 모르고 불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