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 지역의료 마지노선 공공의료원도 "공백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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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전남일보] 지역의료 마지노선 공공의료원도 "공백 우려"
사태 장기화시 전문의 참여 가능
공공의 "위기때만 찾고 지원 뒷전”
내원객 "공공의료 붕괴 걱정돼"
전남도 "결원 없도록 방안 마련"
  • 입력 : 2024. 02.28(수) 18:45
  • 정성현 기자 sunghyun.jung@jnilbo.com
강진의료원을 찾은 한 내원객이 로비에서 진료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정성현 기자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에 반발한 광주·전남 의사들이 잇따라 현장을 떠나고 있는 가운데, 지역 의료 마지노선인 공공의료원도 의료 차질 등을 우려하고 있다. 가뜩이나 구하기 힘든 의사가 이번 사태로 떠난다면 공백이 된 빈자리를 메꿀 마땅한 방안이 없기 때문이다. 전남도는 공공의료원의 안정·지속가능성을 유지하기 위해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는 등 선제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 지역 의료 붕괴 불안감↑

“광주 대학병원에서 아버지가 입원이 안 된다는 말을 들었어요. 다행히 부랴부랴 지역 의료원을 찾아 치료할 수 있었죠. 여기가 없었다면 정말 눈앞이 깜깜했을 겁니다.”

최근 강진의료원 로비에서 만난 이모(51)씨는 얼마 전 가족의 응급상황을 떠올리며 혀를 내둘렀다. 그는 ‘의대 정원 확대 정부-의사 대립’ 뉴스를 접했지만, 이것이 실제 자기 일이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이씨는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져 대학병원에서 응급치료 받았다. 그런데 입원이 안 돼 나가라고 하더라”며 “대면 진료·수술·입원 예약이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의료대란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큰 병이 있는 환자·가족들은 지금 이 상황이 정말 속탈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199병상을 가진 강진의료원은 전남 서부권 거점 병원으로 하루 평균 400명이 방문한다. 병상 가동률은 40%대다. 의료원 내 전공의가 없어 아직 큰 피해는 없지만, 잇따른 교수·전임의·개원의 사직·파업 소식에 ‘혹 전문의 이탈이 시작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가족과 함께 정형외과를 찾은 김유주(45)씨는 “다리가 좋지 않아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주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 개인 병원이나 타지역 병원 이동이 쉽지 않다”며 “강진을 비롯해 순천·목포 거점 의료기관은 지역민에게 없어선 안 될 존재다. 이곳 의사들이 파업에 동참한다면 대안도 없어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날 기준 집계된 순천·목포의료원 내원객 수는 600여 명이다. 전남도 내 의료원이 멈추면 매일 1000명에 가까운 지역민들이 의료공백에 놓이는 셈이다.

김씨의 아들 정태준(23)씨는 “벌써 수도권 쪽 의료원에서 의사들이 사직서를 냈다는 소식이 들린다. 공공의료도 여파를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라며 “지방으로 내려올수록 의료 인프라가 취약해진다. 의사 수를 늘리는 것은 찬성하지만 필수·지역 의료 인프라에 타격이 없어야 한다. 생명과 직결된 문제 아닌가”라고 강조했다.
강진의료원에서 한 내원객이 진료를 받고 있다. 정성현 기자
● 의사 없으면 올스탑… 공공의료 ‘붕괴’

전공의들의 파업이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전남도가 운영하는 3개 공공병원은 지난 23일부터 비상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평일 진료 시간 2시간 확대 △24시간 응급진료 핫라인 구축 등이다.

공공의료원 입장에선 갈수록 무거워지는 어깨가 부담이다. 전국 병원에서 의료 공백을 메워 온 교수·전임의(펠로)들이 ‘더 이상 못 버티겠다’며 이탈을 가시화한 데다, 공공의들 또한 고강도 업무 등으로 파업에 동참하거나 이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청한 전남 한 의료원 공공의는 “코로나19로 공공의료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신세’라는 걸 느꼈다. 위기 때마다 손을 벌리지만 정작 문제가 해결되면 뒷전이 된다”며 “사명감으로 일하고 있지만 미래가 없는 현실에 회의감이 든다. 정부의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공공병원 지원 방안이 들어가지 않은 점도 아쉽다. 공공의 누군가 총대 메고 사직한다면 무더기 이탈이 나올수도 있다”고 귀띔했다.

정기호 강진의료원장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의료원에 전공의가 없어 충격은 덜하지만, 공공의도 결국 의사다. 이들이 파업에 동참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 됐다”며 “공공병원은 지역적 한계·(페이 닥터 등보다) 낮은 연봉 등으로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다. 집단사직 등 의료대란이 온다면 지역 의료체계가 붕괴될 수 있다. 내과·외과·소아과 등 필수 의료과 의사가 수혈될 수 있도록 사전 대비 체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백애영 전남도 보건복지국 사무관은 “도에서도 결원 발생이 생기지 않도록 예의주시 하고 있다. 거점 의료 기관 공백은 지역에 치명적이다. 공공병원과 사태 해결에 합심해 나가겠다”며 “정부-의료계 대립이 빨리 끝나길 바란다. 코로나 기간 공공병원이 국민들에게 큰 믿음을 준 만큼 이번에도 잘 이겨내 보겠다”고 말했다.
정성현 기자 sunghyun.ju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