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 출구 없는 의·정 대치…지역민들 "정부 중재·타협안을"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사회일반
[전남일보] 출구 없는 의·정 대치…지역민들 "정부 중재·타협안을"
지역 전공의 '면허 처분' 통지
의대-교수·학생 ‘2차갈등’ 우려
환자·시민 ‘지역의료붕괴’ 불안
의료계 "탄압 멈추고 대화해야"
  • 입력 : 2024. 03.10(일) 18:09
  • 정성현 기자 sunghyun.jung@jnilbo.com
지난 8일 영광의 한 종합병원을 찾은 내원객들이 진료실로 이동하고 있다. 정성현 기자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에 반대한 전공의들의 의료현장 이탈이 장기화됨에 따라 '정부가 갈등 대신 중재·타협안에 나서야 한다'는 지역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현장을 떠난 전공의들에 면허정지 등 행정 절차에 돌입, 의료계는 의대 교수·전임의 사직 등으로 정부를 압박하는 양상이다.

10일 의료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지난 5일부터 집단사직 후 병원에 돌아오지 않는 전공의들을 대상으로 면허 정지 사전통지서를 발송하고 있다. 통지서를 받은 전공의들은 오는 25일까지 의견을 제출해야 한다. 별다른 사유 없이 업무에 복귀하지 않는다면 관련 규정에 따라 면허 정지 처분에 들어간다. 지역에서는 전남대·조선대병원(3차병원) 320명 전공의 중 250여 명이 여전히 미 복귀 상태다. 광주기독병원(2차병원)도 30명이 이탈 중으로 확인됐다.

집단 사직 사태가 이어진 20일 동안 현장의 의사 공백은 더욱 심각해졌다. 수술실·응급실 등 전공의가 하던 업무를 메꿔온 전임의·교수들의 이탈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전남대병원은 신규 전임의 21명이 임용을 포기했다. 이에 지난 7일부터 성형외과·비뇨기과 등 비응급 진료과 2곳을 폐쇄하고 해당 의료진을 응급·중환자실과 필수의료과에 재배치했다. 조선대병원도 정원 19명 전임의 중 13명이 임용을 포기하면서 수술실 가동률 등을 50% 안팎으로 축소 운영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과도한 업무량 등에 지쳐 현장을 떠났다.

정부는 대형병원 진료 시스템 개편·진료지원(PA) 간호사 제도 개선 등 의료체계 정상화에 나서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적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전남대병원 간호사 김모씨는 “지난달 말 PA 간호사 의료범위가 확대됐다는 것을 들었다. 아직 특별히 하달된 내용은 없다”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진료해도 되는지 헷갈리는 상황이다. 전문적인 교육도 필요하다. 당장 의료공백 해소에는 별 도움 되지 않을 것 같다”고 귀띔했다.

여기에 의대 교수 집단사직 등의 가능성도 점쳐져 사태는 더 장기화될 전망이다. 그동안 의대(교수·학생)와 대학 본부는 의대증원 신청 규모를 두고 ‘2차갈등’을 벌여왔다. 광주·전남에서는 조선대가 125명에서 170명으로 45명 증원을 신청했다. 전남대는 정확한 증원 숫자를 공개하지 않았다. 일각에선 '총장이 의대교수 출신이기 때문에 소극적'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아직 지역 교수들의 사직 움직임은 없지만 전공의 처벌이 이뤄지면 집단행동에 나설 수 있다. 앞서 이들 대학에서는 의대 재학생 1100명이 의대 정원 증원 방침에 반발해 지난달부터 동맹 휴학에 돌입했다.
지난 8일 영광의 한 종합병원을 찾은 내원객들이 진료실로 이동하고 있다. 정성현 기자
의료현장 파행은 지역민들에게 불안감으로 다가오고 있다. 3차병원 연계가 필요한 농어촌 지역의 경우 이 고심이 더 크다.

지난 8일 영광 한 종합병원에서 만난 이모(66)씨는 “광주 대학병원에서 허리 수술을 받은 뒤 한 달간 입원 중이다. 최근 의료파업으로 전국이 시끄러운데 남 일 같지 않다. 내원 시기가 늦었다면 수술을 받지 못할뻔했다”며 “의료 사태가 확대되는 모양인데 지역까지 퍼질까 두렵다. 더 이상 일이 커지지 않도록 정부가 중재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종합병원 관계자 A씨는 “현재 대학병원이 응급환자 외 진료하지 않고 있다. 상급병원으로 보내야 하는 2차병원 입장에서 답답하다”며 “당장은 버틴다지만 전임의·교수·인턴 등이 그만둔다면 ‘지역의료붕괴’가 올 수 있다. 정부-의료계 간 대화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의료계는 ‘정부가 조건 없는 대화의 장’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광역시도의사회장협의회는 9일 성명을 통해 “정부는 법정 최고형, 면허 취소, 각종 명령 등 협박과 2000명 의대 정원 확대에 타협은 없다고 억압적인 자세로 몰아붙이고 있다”며 “10∼16년 뒤에나 효과가 있는 정원 확대보다는 당장 국민 건강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강구해야 한다. 전공의와 의대생들에 대한 부당한 탄압을 중단하고 대한의사협회와 원점에서 재논의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청한 지역 공공의료 관계자는 “‘진짜 의료대란’은 지금부터다. 개인·공공의료에 영향이 가게 된다면 공백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될 것”이라며 “정부는 의사 증원 규모 발표 후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필수 의료 패키지 등에는 지역·공공의료에 대한 대안이 없다. 의사들의 진료공백은 간호사들이 대신하는 식이다. 잘 대비했다고 볼 수 없다. 현 사태는 정부만이 해결할 수 있다. 타협을 통해 적절한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성현 기자 sunghyun.ju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