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문화향기·심명자>누구나 공(功)이 있으면 과(過)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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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문화향기·심명자>누구나 공(功)이 있으면 과(過)도 있다
심명자 대한독서문화예술협회 이사장
  • 입력 : 2024. 03.12(화) 10:54
심명자 이사장
박근혜 정부 때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를 국정교과서로 만들려고 시도했다. 특정 출판사의 역사 교과서에 5·18 민주화 운동은 언급하지도 않고,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을 두 페이지나 할애했던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설이 돌았다. 어린 시절 역사교육은 평생의 가치관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국정교과서로 만들어야만 박정희의 실정(失政)을 지우고 숭배를 이어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대대로 보수를 지지하는 서울의 한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란 30대 청년과의 최근 인터뷰는 어린 시절 습득한 역사관이 얼마나 굳건한지를 보여주었다. 이승만과 박정희는 우리나라를 잘 살게 해주었으며, 5·18은 광주에서 깡패들이 폭동을 일으켜 계엄군이 진압하러 내려왔다는 것으로 확고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정서와 가치 성장을 위한 교육을 뒤로 하고, 고속 경제성장을 위한 과잉경쟁의 폐단을 지금 전 세대가 떠안고 있다고 설명을 해주었다. 또한 전두환이 군사 반란을 일으키고 정권을 장악하기 위한 수순으로 광주 시민을 학살한 증거들이 차고 넘친다고도 알려주었지만 깊이 틀어박힌 왜곡된 역사관 때문에 진실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승만을 역사적 영웅으로 각색하여 개봉된 영화 ‘건국전쟁’은 관람자 수를 내세우며 흥행작이라고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영화가 개봉될 때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 정치인들이 관람 했으며, 그 영향인지 대형교회의 단체관람과 어르신 관람자들이 이어지고 있다.

진실을 토대로 제작되어야 다큐멘터리 영화로 인정할 수 있으나 이 영화는 많은 부분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다. 4·19 혁명은 이승만이 독재 정부 유지를 위해 3·15 부정선거를 저질러서 일어난 것이라고 이미 밝혀졌으며, 오랫동안 교과서에 싣고 있는 내용이다. 이 사실을 영화에서는 권력 유지를 위해 이기붕과 자유당 지도자들이 일으킨 것이지 이승만과는 무관하다고 돌렸다. 더 큰 문제는 국민들이 자유민주 의식을 빨리 갖게 된 것이 이승만의 업적이라고 과대 포장했다. 실제로는 해방 후 교육 선지자들이 고군분투하며 민중 계몽운동을 하고, 교육 방향을 잡아가다가 이승만 정부가 들어서 의무 교육을 실행했다. 이것을 오로지 이승만의 숭고한 성과로 제작해 놓았다.

목숨 바쳐 독립을 위해 투쟁한 독립운동가들의 후손들은 곤궁하게 살고, 친일파 후손들은 잘 먹고 잘살고 있지 않은가? 뿐만이 아니라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뒤집을 수 있는 것은 해방 후 진행되던 ‘반민족 특위’가 중단된 것이 가장 결정적 이유라고 할 수 있다.

해방 후 백범 김구는 독립운동을 방해한 자와 매국노에 대해 공개적으로 엄중히 처리할 것을 발표하며 반민족 처벌에 대한 의지를 분명하게 밝혔다. 하지만 남한을 신탁통치 하고 있던 미군정은 오히려 일제에 복종했던 조선인 경찰들이 미군정에도 그러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그들을 충분히 활용하려고 했다. 더불어 조선총독과 수하들까지도 한국 행정에 기용할 계획이니 ‘민족반역자·부일협력자·간상배에 대한 특별조례’를 인정할 리 없었다. 대신 고위관리로서 영어를 잘 구사하고, 교육 수준이 높고, 자유주의 이념을 주창하는 친미적 성향인 이승만을 전면에 내세웠다. 결국 반민족 특위는 김구의 암살을 계기로 중단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을 지시한 사람은 이승만이고, 그의 뒤에 미국이 있었기 때문이다. 친일파를 처벌하지 않고 옷만 바꿔 입은 채 권력을 이어가게 한 결과 일부 국민들이 왜곡된 역사를 믿고 기억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건국 전쟁’ 영화의 중반에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등장과 문재인 좌파 정권이라고 비판하는 것에 호응하는 관람자들의 모습을 한 종편 방송에서 보도했다. 이는 집단무의식의 단상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그릇된 정보를 지속적으로 알려줌으로써 참과 거짓의 판단력을 잃고 전략적 비관주의에 빠지는 현상을 위정자들이 백분 활용한 것이다.

우리와 비슷하게 2차 세계대전 후 독일도 쑥대밭이 되었다. 고대 로마제국 시대부터 신성로마제국, 근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화유산을 보유하던 독일 전역을 UN과 미국은 전쟁에 대응하기 위해 대부분을 폭파시켰다. 그 피해의 흔적을 고스란히 남겨두면서 그 위에 재건한 성당, 궁, 뮤지엄 등은 아픈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홀로코스트를 일으켜 유대인들을 무참히 학살한 현장도 후대인들이 기억하고,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잘 고증했다. 해마다 수억 원의 피해 보상금을 지불 하면서 국제적 채널을 통해 과거를 사과하고 있다. 우리 선조들은 자연에서 얻은 건축 자재로 집을 지었기 때문에 일제강점기나 6·25 전쟁 때 피해를 입은 민중들의 삶을 독일처럼 그대로 보존하기는 불가능한 것도 사실이다. 다만, 아픈 역사의 현장들을 보존할 수 있는 것마저도 철거하거나 사라지게 함으로써 역사 감추기가 더 쉬워지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시대를 이끄는 인물들 누구나 공(功)이 있으면 과(過)도 있다. 김구 역시 잠시 이승만을 도와 남한 단독 정부 수립에 찬성했다가 오판임을 깨닫고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듯이 말이다. 민중들은 실(過)을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인정하고 후대에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란다. 아픈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것은 다시는 그런 끔찍한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임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이를 조롱하듯 얼마 전, 일본학계가 이승만의 옥중저서 ‘독립정신’을 백 년 만에 출간하고, 원본을 경매에 내놓았다는 소식과 함께 이승만 재평가에 대해 언론들이 전했다. 왜 하필 선거철에 이런 뉴스를 보도하는지 그 이유쯤은 민중들이 충분히 파악할 줄 안다는 것을 이승만 우상화로 표심을 얻으려는 사람들은 인지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