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배움의 庭園·임효경>다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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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배움의 庭園·임효경>다시, 시작
임효경 완도중 교장
  • 입력 : 2024. 03.13(수) 13:45
임효경 교장
새로운 봄, 새 학기, 새로운 날이다. 지나놓고 보니,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하는 3월은 학교가 넘어야 할 큰 산이다. 오르는 길이 힘겹지만 일단 올라서면 금방 한 학기가 지나간다. 산 정상을 맛보고, 시원한 바람과 저 산 아래 풍경을 관조하고 오는 내리막길이 조심스럽지만 쉽고 빠른 것처럼.

3월 첫 월요일 아침, 약간 흐리고 바람이 쌀쌀한 날. 개학과 입학이 이루어지는 날이다. 오랜 습관, 교문 맞이를 하러 교문에 도착하니, 세상에, 3학년 학생자치회 선도부 학생들 10명이 줄지어 서서 외친다. 안녕하십니까? 교장 선생님. 아이고머니나, 이게 무슨 일이니? 줄지어 선 학생들 끄트머리에 학생들 속에 묻혀버릴 작은 체구의 3년 차 지현샘이 수줍은 미소를 짓고 서 있다. 학생자치부를 담당하신다고 하시더니 이렇게 열심을 내신 것이다. 첫날이니, 오늘은 나 혼자 학생들 온전히 맞이하리라 작정하고 나선 길이었는데…….

고맙고 대견하다. 사실, 워낙 씩씩하고 싹싹했던 작년 3학년 졸업생들이 아직 내 마음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역도, 축구, 플라잉디스크 등 운동에 좋은 성과를 냈을 뿐 아니라, 학생자치회 활동도 유난히 진심이어서 주변 학교의 모범이 되었던 아이들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정성이 들어있는 첫사랑이었다.

지금 3학년들은 작년에 내가 보기에 조금 덜 씩씩했고, 덜 싹싹했으며, 덜 뭉쳤다. 그래서, 축구도 걱정이고 학생자치회도 염려가 되었다. 그러나 웬걸 괜한 걱정과 염려였다는 예감이다. 우리 아이들은 어느새 이렇게 성장했고, 이렇게 달라졌으며, 이렇게 감동을 주는 것이다. 새로운 시작이고, 새로운 모습이다. 사랑이 슬슬 움직거린다.

오늘 아침 신입생 1학년 아이들은 아, 움츠러들어 있다. 중학교 입학식에는 학부모님들이 따라오지 않는다. 이제 좀 컸다고 생각하신다. 그래서 신입생들은 혼자 버스에서 내리거나, 부모님 승용차에서 내려 교문에 들어서야 한다. 어색하다. 더구나 교문 앞에 3학년 형들이 떠억 버티고 서 있으니, 버스에서 내려 길 건너면서도, 눈치를 살피고, 바로 앞으로 오지 못한다. 학생 통학로를 따라 형들 앞을 지나가야 하는데, 저리 구석으로 삥 돌아가려 한다. ‘어~~!! 이리로 와!!’ 소리에 주춤주춤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쭈뼛거린다. 낯선 땅에 첫발을 내딛는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에 속으로 웃는다. 싱그럽다.

한 사람이 나에게 오는 것도 엄청난 일이건만, 90명의 아이들이 나에게 밀려 들어왔다. 실로, 그들은 얼마나 또 나를 웃게 하고, 울게 하고, 감동을 주고, 환호하게 할까? 난 또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하고 염원할까? 새 학년 새 학기가 안전하고 건강하며, 활기차게 모두 성장하고, 모든 교육과정이 야무지게 갈무리하기를 바라면서. 나는 늙어가지만, 학교가 늘 새로워지니, 나도 마음은 늘 새롭다. 내가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아이들도 다 아는 것처럼, 나도 안다. 아이들이 나의 진심을 알고, 나를 반기는 것을. 이 정도면 나도 참 행복하다고,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고민이 된다. 저 새싹들의 움틈과 성장을 위해 이순(耳順)을 넘긴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까? 나이가 가르쳐 주는 대로 나는 순한 귀를 기울이기로 한다. 이 봄에 새싹들이 세상에 나오기 위해 용을 쓰며 흙을 들어 올리는 수고를 한다. 그처럼 저들도 수월하지 않을 사춘기라는 고비를 들어 넘기는 애를 쓸 것이다. 그 고비를 잘 넘기도록, 지켜보고, 귀를 기울여 잘 들어주기로 한다. 때때로 선한 바람과 빛을 저들에게 나누어 주기로 한다. 나는 그래도 좀 더 아니까, 나는 그래도 어느 만큼 이겨냈으니까, 나는 그래도 어느 정도 이루었으니까. 그들에게 이나마 나의 정과 힘을 나누어 줄 수 있어서 참 괜찮은 생이다 싶고, 그렇게 할 수 있어서 참 고맙다.

다섯 명의 새내기 선생님들도 마찬가지로 싱그런 기운을 내뿜고 새로운 학교 만들기에 일조하였다. 그 어려운 임용고시 합격한 귀한 재원들이 학교 안에서 첫 번째 업무를 나누어 맡는 시간에 ‘무엇이든 시켜주세요’라고 말하듯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이 귀여운 새내기 학생들 모양새 그대로였다. 드디어 학급을 맡고, 평가 업무, 연수 업무 그리고 정보 업무를 맡아 야심 찬 출발을 하였다.

입학식 날 선생님들 소개 시간에, 우리 학생들은 또 얼마나 열광하며 박수갈채를 보냈는지 모른다. 저들은 어떻게 선생님들의 이모저모를 알아차렸는지 소문이 자자했다. 대단한 선생님들이 나타났다고. 학생들은 선생님들을 믿고 따르는 일만 남았고, 꼭 그만큼 우리 학생들은 단단해지고, 성장할 것이다.

이 젊고 유능한 선생님들과 저 씩씩하고 활기찬 학생들이 우리나라의 교육을 책임지면서 우리나라의 미래를 바꿔 갈 원동력들이다. 우리 선생님들은 그동안 벼려 온 지식과 지혜를 가지고 교실 무대에서 빛을 발하여 줄 것이고, 우리 학생들은 그 빛을 오롯이 받아 미래로 쏘아 올릴 것이다. 환하게, 힘차게, 널리.

새로운 학기, 시작이 참 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