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정부-의료계 ‘강대강 대치’… “대화물꼬 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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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전남일보]정부-의료계 ‘강대강 대치’… “대화물꼬 터야”
●지역 전공의 사직 한달 ‘갈등 확산’
PA·공보의·군의관 투입 역부족
“의료진 피로누적… 현장 한계”
지역의대교수회 집단행동 논의
전문가 “파국 직전… 대화 필요”
  • 입력 : 2024. 03.18(월) 18:24
  • 정성현 기자 sunghyun.jung@jnilbo.com
지난 14일 조선대병원 내 의사·간호사들. 정성현 기자
정부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내고 의료 현장을 떠난 지 한 달이 됐지만 사태 해결 돌파구는 여전히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강경 추진·대응’을 천명하며 양보 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고 의료계는 의대 교수들이 집단 사직 움직임을 보이는 등 갈등이 확산되는 양상이다. 현장에 있는 의료진과 전문가들은 “이제는 정부가 대화의 물꼬를 터야 할 때”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18일 의료계에 따르면 광주·전남 전공의들은 지난달 19일 사직서를 제출하고 20일부터 근무를 중단했다. 이달 초에는 ‘예비 전공의’인 신규 인턴들마저 임용을 거부했다. 지역에선 전남대·조선대병원(3차병원) 320명 전공의 중 276명이 미복귀 상태다. 광주기독병원(2차병원)도 39명 중 30명이 이탈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상당수 인턴(전남대병원 86명·조선대병원 36명·광주기독병원 17명)들도 근무를 포기했다.

정부는 특단의 조치로 진료보조인력(PA) 간호사·공보의·군의관 등을 투입해 의료 공백 최소화를 꾀했으나 현장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는 입장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전남대병원 교수는 “차출된 인력이 이틀간 교육을 받고 현장에 투입됐다. 가벼운 업무를 대신해 숨통은 트였으나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며 “이들이 병원에 대해 잘 모르는 데다 응급 수술을 맡기기도 애매한 부분이 있다. 이 정도 인력으로 해결될 일이었다면 당초 의료 공백도 없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조선대병원 간호사 이모씨는 “이곳은 정부 인력지원도 없다. 현재 간호사들이 잔일을 처리하고 있다. 밀려오는 업무에 현장은 마비 직전”이라며 “피로감이 최고조다. 일각에선 ‘당장 일반의라도 채용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의료 질 저하를 논하기 전 ‘올스톱’부터 걱정해야 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전남대병원은 지난 11일 보건복지부로부터 각 지역서 차출된 군의관·공보의 등 17명을 파견받았다. 조선대병원은 정부에 공보의 파견을 신청했으나 배정받지 못했다. 전문의·간호사들이 곳곳에 긴급 배치되면서 조선대병원은 3월께 개강 예정이었던 병원형 정신건강 대안교육센터(Wee) 개소식도 내달로 미뤘다. 각 병원은 수술실 단축 운영·진료과 통합 등 고육지책으로 간신히 의료공백 최소화에 나서고 있다.
오는 25일부터 전국 의과대학 전공의에 이어 교수들까지 집단 사직을 예고하며 의료 공백 사태가 우려되는 가운데 18일 조선대 의과대학 2호관에서 한 의료 관계자가 히포크라테스 선서문 밑을 지나가고 있다. 나건호 기자
이런 가운데 의대 교수들이 정부 대책 마련을 호소하며 무더기 사직을 예고해 ‘의정갈등’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 15일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협의회) 소속 서울대 등 19개 의대 교수 대표들은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해 오는 25일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했다. 전남대·조선대병원 교수들 역시 협의회 소속으로, 병원 내부에서는 ‘비대위 지침에 따르겠다’는 분위기가 감지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조선대병원 소속 의대 교수들은 14일 교수평의회 임시총회를 열고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조만간 비대위원장을 선출한 뒤 정부의 의대 증원에 대한 입장·집단행동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전남대병원 소속 의대 교수들은 최근 SNS 단체방을 개설해 비대위 체제 전환 등을 논의, 오는 22일 ‘비대위 구성 설문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전남대병원에 비대위가 구성되면 전국 수련병원과 같이 △단체 사직 여부 △전공의 보호 방안 △정부 의대증원에 대한 입장 등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지역 대학병원 교수는 “정부와 의료계가 하루빨리 갈등을 해결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러는 것”이라며 “전공의들과는 다르게 사직서를 제출하더라도 수리될 때까지 현장을 지킬 예정”이라고 말했다.

의료계 내부에서는 교수들마저 병원을 떠날 경우 ‘파국에 이를 수 있다’며 재빠른 의정갈등 봉합을 주문했다.

정기호 강진의료원장은 “전공의 공백은 당장 전임의·교수 등으로 메웠지만 교수들 공백은 대처할 방법이 없다. 의대 교수들은 의사 중 가장 정점에 있는 사람들”이라며 “전공의 교육 또한 이들이 해야 한다. 교수들이 빠질 경우 병원이 ‘개점휴업’ 상태에 이를 수 있다. 집단행동 시 초대형 의료공백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2000명 증원이라는 입장을 더 이상 강경 고수하지 말고 모든 것을 열어둔 채 의료계와 재논의해야 한다”며 “의료계도 의협·학생·교수 등 각기 행동보단 대표 집단을 구성해 대화 채널을 만들어야 한다. 이제는 1대1로 대화하지 않는 이상 이 문제를 풀 방법이 없다”고 덧붙였다.
정성현 기자 sunghyun.ju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