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적 유전자·윤승태>해양학자의 환경일기 ‘스물아홉 번째 기록- 성공적인 남극 관측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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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적 유전자·윤승태>해양학자의 환경일기 ‘스물아홉 번째 기록- 성공적인 남극 관측을 다녀와서’
윤승태 경북대 지구시스템과학부 해양학전공 조교수
  • 입력 : 2024. 04.03(수) 11:02
미 항공우주국(NASA)이 녹고 있는 남극 빙하를 찍은 사진. NASA=AP/뉴시스
윤승태 조교수
작년 크리스마스 날 필자는 남극 관측에 참여하기 위해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가족과 두 달 가까이 떨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한편으로 마음이 무거웠지만 남극의 하얀 세상을 4년 만에 다시 본다는 생각에 가슴 설레는 출장길이었다. 인천 공항에서 출발하여 약 16시간의 긴 이동 끝에 쇄빙선 아라온호가 정박해 있는 리틀턴 항구에 도착했다. 4년 만에 도착한 리틀턴 항구의 여전히 조용하고 여유로운 마을의 풍경에 장시간 이동으로 쌓인 여독이 씻은 듯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아라온호에 도착 후 2달여 기간 동안 지낼 방을 배정받은 뒤 곧바로 관측 짐들을 정리하고 미리 실어두었던 짐들을 확인했다. 이번 항차에서는 4년 전 스웨이츠 빙하 및 파인 아일랜드 빙하 근처에 설치해 두었던 해양 계류선 2기를 회수하고 재계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작업 중 하나였는데, 필자가 책임자 역할을 맡다 보니 이것저것 신경 쓸 일들이 많았다. 이미 2년 전에 회수 시도를 했다가 계류선 근처에 발달한 해빙으로 인해 회수에 실패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꼭 계류선 2기를 회수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컸다.

이번 남극 항차의 목적지는 아문젠해 연안에 위치한 스웨이츠 빙하였다. 스웨이츠 빙하는 최근 들어 매우 빠른 속도로 녹고 있어 ‘운명의 날 빙하’라 일컬어질 정도로 붕괴 위험성이 매우 높은 곳이다. 스웨이츠 주변에는 거의 항상 해빙과 빙산이 많이 분포하고 있어 쇄빙선으로도 접근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처럼 현장 관측이 제한적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높은 연구 중요도에도 불구하고 스웨이츠 빙하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이다. 필자의 스웨이츠 빙하 관측은 2020년에 이어 두 번째로, 이번에는 스웨이츠 빙하의 비밀을 조금이나마 밝힐 수 있기를 기대하며 아문젠해로 향했다.

이번 항차는 4년 만에 스웨이츠 빙하 관측을 시도하는 항차이다 보니 세계 각지의 저명한 연구자들도 관측에 많이 참여했다. 스웨덴의 무인잠수정(AUV, Automatic Underwater Vehicle) 관측팀을 비롯해 미국의 수중 글라이더(Underwater Glider) 관측팀, 내륙 빙하코어 팀, 항공기반 CTD(Conductivity-Temperature-Depth) 관측팀 등 총 20명 정도의 외국 연구자들이 아라온호에 함께 승선했다.

두 달 중 이동 기간을 제외하고 약 3주 간의 연구 항차 기간 동안, 1기의 해양 계류선, 2기의 수중음향계 회수 및 2기의 해양 계류선 설치, 5번의 무인잠수정 미션 수행, 120개가 넘는 정점에서 CTD 수행, 물범 8개체에 부착 관측 수행, 다수의 항공기반 CTD 투하 등에 성공했다. 해양 계류선을 1기만 회수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었지만 전반적으로 매우 성공적인 관측이었고, 이들 자료를 통해 스웨이츠 빙하의 비밀을 밝혀낼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특히, 회수한 1기의 해양 계류선을 통해 약 4년 정도의 해수 특성 및 해류 변화 시계열 자료를 획득하여 해당 자료를 분석하면 스웨이츠 빙하로의 열 유입 변동과 원인 기작을 밝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연구 성과 이외에도 이번 항차에서 아라온호는 남극 응급 환자 구조, 장보고 기지 증축을 위한 화물선 예인 등의 쇄빙선 역할도 충실히 해냈다. 덕분에 항차 기간이 며칠 늘어나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한 항차 기간 내에 아문젠해와 로스해를 모두 가보는 뜻깊은 경험을 했다는 이점도 있었다.

남극 항차를 마치고 지난 2월 중순 한국에 복귀한 필자는 가족과 감격의 상봉을 한 뒤 3월부터 새학기 분위기에 적응 중이다. 해양 계류선을 비롯해 관측 결과들이 매우 흥미로워 빨리 분석하고픈 마음은 굴뚝같은데 2달여 기간 동안의 바다 위 생활로 육지 생활 적응이 마음처럼 쉽지는 않은 느낌이다. 좀 더 힘을 내서 독자분들에게 최대한 빠른 시일 내로 흥미로운 남극 연구 결과를 들려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마지막으로 이 칼럼을 빌어 성공적인 극지 관측에 힘써주신 아라온호 승조원분들, 그리고 극지 관측을 무사히 다녀올 수 있게 응원해주신 내 가족과 지인들께도 감사 말씀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