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5·18진상조사위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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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5·18진상조사위에게
노병하 취재1부 정치부장
  • 입력 : 2024. 04.03(수) 15:00
노병하 부장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았던 2월, 광주는 다른 지역과 달리 분노로 달궈지고 있었다.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조사 활동을 종료한 지 석 달 가까이 지났지만 진상규명 결정 이유가 담긴 ‘개별조사보고서’를 공개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보고서 미공개만으로도 부글부글하던 차인데 한술 더떠 진상조사위는 뜬금없이 광주전남 시도민을 대상으로 의견 수렴에 나섰다. 오는 6월까지 ‘종합보고서’를 작성해 대통령과 국회에 보고할 예정이며, 여기에 담길 ‘권고사항’에 대해 의견을 내달라는 내용이었다. 기한은 3월10일이었다.

공개하라는 보고서는 하지 않고 의견부터 묻는다는 이야기는 오랜시간 진상규명을 기다려온 지역의 여론을 적으로 돌리기에 충분했다.

누가 봐도 앞뒤가 맞지 않음을 넘어 기만행위에 가까운 일이었다. 의견수렴 기간도 짧았다. 제주 4.3 사건의 경우 진상규명 종합보고서에 대한 의견 수렴 기간이 6개월이었다.

사방에서 성명이 터져나왔고, 5·18 조사위 측은 결국 2월29일까지 개별조사보고서를 공개한 뒤 의견수렴 기한을 3월 말까지 연장하겠다고 했다.

그들이 낸 보고서를 검증하는 자원봉사에 필자도 참여했다. 보고서 전부를 합치니 대백과사전 3개 분량이었다. 그 중 왜곡이 가장 많은 군경피해를 검토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불과 며칠간 검토해서 잡아낸 심각한 오류와 왜곡만 5개가 넘었다.

군인들끼리 오인 사격했는데, 누구는 진상규명이고 누구는 진상규명 불능이었다. 한자리에서 벌어진 일인데 말이다. 밤에 사직공원을 돌던 계엄군들이 술을 마시는 청년들을 시민군이라 규정하고 쫓아가 사살했음에도 이에 대한 광주시민의 증언은 없었다. 한명의 군인이 사망했는데, 그 날은 광주시민이 모두 총기를 반납한 다음날인 27일 도청 탈환 작전이 펼쳐지던 날이었다. 광주시민들 손에 있던 총들은 모두 거둬진 상태였다. 이 사건은 진상규명 불능이다. 이해도 안되고 맥락도 없는 결과다. 조사라는 것을 하긴 했을까 싶을 정도다.

조사위가 어떤 곳인가. 광주 시민들의 큰 기대를 안고 4년전 출범했다. 지원단을 포함한 조사 인력만 100명에 가깝고, 투입된 예산만 매년 수십억, 많게는 100억원 규모를 소요했다.

그 결과가 이 모양이다. 이따위를 국회에 올린다는 그 발상이 어처구니 없고 화가 나 보고서를 보는 내내 미열에 시달려야 했다.

광주가 그리 우습고 만만한가. 광주가 가진 아픔이 ‘눈가리고 아웅’할 만큼 같잖았는가?

광주가 어떻게 그 긴 독재에서 버텨왔는줄 아시는가? 정의와 진실에 대한 지독한 갈망 하나로 고사 직전에도 악착같이 저항하며 살아왔기에 지금의 광주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미 오월단체들은 말하고 있다.

“다시 길거리로 나가야 할 모양입니다. 저들이 그렇게 만드네요.”

지금부터는 그대들이 결과를 감당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