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명 증원' 어떻게?…의료계 “혼란 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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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2000명 증원' 어떻게?…의료계 “혼란 가중”
윤 "기득권 굴복 안하겠다" 했지만
전공의 등 의료계 '직접 만남' 제안
비상경영 중이던 대학병원들 '촉각'
전남대·조선대·기독병원 협의체
“국면전환 위해 의·정갈등 해소하길"
  • 입력 : 2024. 04.03(수) 18:44
  • 정성현 기자 sunghyun.jung@jnilbo.com
의료 공백 장기화에 따라 환자들의 불편과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 1일 조선대병원에서 환자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의료 개혁과 관련한 대국민 담화를 시청하고 있다. 나건호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의과대학 증원에 타협은 없다”고 밝힌 지 만 하루 만에 ‘전공의 직접 만남’을 제안해 강대강 대치가 풀릴지 주목된다. 공을 넘겨 받은 전공의단체와 의대교수들은 ‘환영하지만 진정성에 의구심이 든다’며 조심스러운 반응이다. 의료대란 장기화로 비상경영 등을 하던 지역 의료계는 ‘재빠른 의·정갈등 해소로 국면이 전환 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는 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대통령이 전날 집단행동의 당사자인 전공의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말했다”며 “정부는 의료계와 열린 마음으로 논의해 나가겠다. 의료계도 합리적 논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와 소통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한전공의협의회에서는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지난 2월 정부에 제시한 ‘7대 요구안’ 입장만 유지 중이다.

당시 대한전공의협의회는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와 의대 2000명 증원 전면 백지화 △의사 수급 추계 기구 설치 및 증·감원 논의 △수련병원 전문의 인력 채용 확대 △불가항력 의료사고 법적 대책 제시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 △전공의에 대한 부당한 명령 철회·사과 △업무개시명령 전면 폐지 등을 요구했다.

이들이 입장 발표에 조심스러운 까닭은 ‘만나봐야 양측 입장차만 확인할 것’이라는 회의감 때문이다.

조선대 의대 관계자는 “정부가 전공의를 ‘콕’ 찝어 만나고자 하는 이유는 그들이 결국 현장으로 돌아와야 사태가 해결되기 때문”이라며 “중재를 위해 손을 내민 건 올바른 방향이지만 진솔함이 느껴지진 않는다. 생활고에 허덕이면서도 전공의들이 복귀하지 않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제안에 응할만한 해결 방향도 같이 제시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남 한 2차병원 전문의는 “사직을 고민 중이던 주변 교수들이 이틀 전 대통령 담화를 보고 ‘강력 투쟁’을 결심했다”며 “‘2000명 의대 정원에 합의는 없다’는 말을 공식적으로 발표한 사람이다. 그런데 갑자기 전공의와 대화를 하겠다니 진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의료 현장만 더 혼란스러워졌다. 되레 ‘정치적으로 의사들을 이용한다’는 의견까지 나온다”고 귀띔했다.

의대교수들도 비슷한 입장이다. 전국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무조건 만나자고 한다면 대화 제의의 진정성이 없다”며 “합리적 방안을 만든다는 전제하에 대통령과 전공의가 대화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제언했다.

대한의사협회도 입장문을 통해 “진정성이 담보되지 않았다”며 정부가 제시한 대화 제안을 거절했다.
의정간 갈등으로 전남대병원과 조선대 병원 등이 경영난에 직면한 가운데 지난 1일 조선대병원에서 한 환자가 대기 의자에 누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김양배 기자
전공의에 이어 전임의·의대 교수 이탈까지 걱정하게 된 지역 수련병원들은 재빨리 의·정 갈등이 봉합되길 바라고 있다. 지난달 부터 부서 통폐합을 비롯, 전문의·진료 지원 간호사(PA) 중심의 비상진료·경영체계를 진행하고 있지만 ‘이제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선 진료과에 정부가 파견한 공중보건의·군의관도 배치됐지만 전공의·전임의 공백을 메우기는 여의치 않다. 폭증한 당직 근무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와 체력적 한계를 보이고 있는 전문의들도 상당하다.

궁여지책으로 광주시와 전남대·조선대·광주기독병원은 이날 ‘병원 간 협업 체계 구축 회의’를 진행, 생명이 위급한 응급 중증 환자의 수술에 대해 각 병원이 돌아가면서 전담하기로 했다. 병원 1곳이 수술·치료를 맡으면 남은 두 병원 의료진이 휴식을 취하는 구조다.

전남대병원 관계자는 “의대 교수 상당수가 사직의사를 밝힌데다 조만간 주 52시간 근무에 돌입하는 과도 생긴다. 매일이 비상 상황”이라며 “수련을 위한 인턴 임용 신청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남아 있는 의료진들의 피로감은 커지는데 상황은 요지부동이니 답답할 노릇”이라고 말했다.

전남대·조선대병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 임용 마감일인 2일까지 전남대 101명·조선대 36명 등 전공의 수련생(인턴) 전원이 임용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날까지 임용 등록을 하지 않은 인턴들은 올해 수련을 받지 못한다.

공공의료계는 ‘사람 메꾸기 식의 대안은 이제 한계’라며 의·정갈등 해소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 한 의료 관계자는 “전공의 집단 사직 등으로 전국의 지역 보건의료인들이 긴급 차출됐다. 이는 결국 가뜩이나 부족한 지역 의료 인프라가 더 악화되는 계기가 됐다”며 “당장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건 그만큼 사명감을 가진 지역 보건인들이 힘써준 덕이다. 정부·의료계의 현명한 타협으로 더 이상 국민들이 불안에 떨지 않게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편, 정부는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인한 의료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국 보건소와 보건지소에서 비대면 진료를 한시적으로 허용하기로 했다. 경증질환자는 지역 보건소나 보건지소 비대면진료를 통해 상담과 진단·처방 등을 받을 수 있다.
정성현 기자 sunghyun.ju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