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에세이>디지털 세상, 노인을 위한 대한민국은 없다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테마칼럼
작가 에세이>디지털 세상, 노인을 위한 대한민국은 없다
장소영 수필가·광주문학편집위원
  • 입력 : 2024. 04.04(목) 11:07
장소영 수필가
‘어라?’. 500원짜리 동전을 넣는 투입구가 사라졌다. 낯선 기기 앞에서 순간 어리둥절 두리번거리다 사무실 쪽으로 향했다. 직원인 청년이 따라오라더니 회원 카드 발급요령을 알려준다. 일러주는 대로 신용카드를 넣고 적립식 회원 카드를 발급해 돌아서는데 한 손에 여전히 쥐고 있는 동전이 무색해 보인다. 오늘따라 유난히 파닥이는 날갯짓으로 두 다리를 쭈욱 뻗친 채 날아오른 은빛 학이 목을 늘여 ‘끼룩~’ 서글픈 울음소리를 낸 것만 같다. 안 그래도 쓰임새가 줄었는데 이곳마저도 거부하니 그 마음이 오죽 할까 싶다.

세차를 마치고 나오려는데 키오스크 앞에서 잔뜩 고개를 빼고 서성이는 노부부가 도움을 청한다. “내가 이거를 어찌하는지 몰라서…. 겁나서 세차를 못 하겠네.” 저게 곧 닥칠 내 모습이지 않을까 싶어 갑갑한 마음으로 쳐다보았다. 어느 음식점에서 키오스크 사용법을 익히던 노인들의 모습도 떠올랐다. 복지관 직원들의 도움으로 줄을 서서 돌아가며 기계를 마주하던 불안한 표정들. 음료 하나, 음식 하나 고르지 못해 지나쳐야하는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열심이었다. 실수도 하고 낙심도 하다 자신이 고른 음식을 가리키고 성공을 기뻐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속으로 파이팅을 외쳤더랬다.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태준의 ‘복덕방’이란 작품이 있다. 일제강점하의 근대화 물결 속에서 소외된 노인세대의 빈곤함과 좌절감을 세 노인을 통해 보여준다. 그들은 나이는 들었지만 꿈을 잃지 않고 노력한다. 하지만 결국 한 노인의 자살로 끝나고 만다. 시대가 달라졌음에도 노인 세대가 겪는 경험은 지금도 같다. 팬데믹 시기를 거치며 인건비 절약이니 편리성이니 해서 음식점, 병원, 금융기관, 터미널 등 지역 사회 전 분야에 키오스크가 크게 늘었지만, 막상 이를 활용하기가 쉽지 않다. 젊은 층도 따라가기 바쁘다고 하는 판인데 하물며 노인세대야 말해 무엇하랴.

노인세대가 새 시대에 적응하는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일상이 디지털화되며 불편함을 넘어 소외되고 있다. 그동안 음식점만 하더라도 직접대면 하는 이모, 삼촌, 언니 등을 외치며 이용해 왔다. 지금은 매장 입구 키오스크를 넘어 테이블마다 설치된 패드형 키오스크로 호출, 주문은 물론 결제가 가능한 곳까지 있다. ‘뭐 먹을래? 옵션 추가할래? 이것도 주문하는 건 어때? 할인 카드 있어? 먹고 갈래? 포장이야? 결제는 무엇으로 할래? 영수증 필요해?…’ 꼬부랑고개 넘어가듯 벅찬 요구에 노인들이 사용하기엔 글씨도 작고, 어려운 영어 표기가 많다. 디지털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 할지라도 도입속도 마저 너무 빠르다.

일본 여행 중 접했던 무인안내기는 주문시스템이 아닌 수금시스템으로 터치식보다는 버튼식이 많고 의외로 단순해 사용이 편했다. 자판기를 그냥 모니터로 옮긴 것과 같았다. 노인들뿐만 아니라 일어 모르는 외국인도 금방 사용하고 현금결제, 카드결제 다 되니 결제 후 교환권 종이를 카운터에 전달하면 되었다. 영국도 2005년 이전부터 키오스크를 도입했지만 슈퍼에서 물건을 사고, 카드 결제. 현금 결제가 가능해서 잔돈처리하기도 좋았다.

선진국이라 불리는 여러 나라에서는 여전히 두툼한 열쇠 꾸러미로 문을 열어야 한다. 노인 세대에 대한 배려로 디지털 속도를 조절하기에 기기의 변화가 즉각 반영되지 않는다는 설명이었다. 출입문조차도 디지털화 되어 열쇠를 사용하는 경우가 드문 우리들로서는 기대하기 힘든 사회적 분위기다.

그래선지 최근 발표한 ‘전 국민 인공지능 일상화’라는 모양새가 바람직하진 않아 보인다. 완벽하게 디지털 세상이 되면 사람간의 일상생활 속 교류마저 소멸될 것만 같은 위기감마저 느껴진다. 우리도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일정기간 동행할 시간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조차 현금, 카드 두 가지 모두 가능한 방향으로 나갔어야 하는 데 이런 배려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 한다. 노인층의 구겨진 자존심과 열등의식은 스스로만의 문제가 아니다. 신문물 앞에서 사용처를 잃은 동전처럼 말이다.

삶은 언제나 위험하고 불확실하다. 그러나 먼저 산 사람에 대한 일말의 자비는 베풀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슬프게도, 이 디지털 세상에 노인을 위한 대한민국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