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동순>유월엔 무등으로 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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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이동순>유월엔 무등으로 가세!
이동순 조선대 교수
  • 입력 : 2024. 04.17(수) 16:44
이동순 교수.
사람의 사람다움을 말하는 가장 아름다운 언어는 무등(無等)이다. 증심사 계곡 언저리에 작은 집을 짓고 살았던 세 사람의 삶이 그들의 정신이 고스란히 살아서 숨 쉬고 있는 곳이 무등이다. 무등에 가장 먼저 들어가 자리를 잡은 사람은 석아 최원순이다. 그는 일제의 압박을 온몸으로 맞서며 언어와 문자로 총독 정치는 악당 정치라고 호통을 쳤다. 뿐만 아니라 하늘 아래 모든 인간은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언설로 차별 철폐를 주장했다. 무등에 들어서도 아픈 몸을 이끌고 동분서주하였다. 그가 무등에 든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 자리에 ‘인간사망선고서’를 내고 들어간 또 한 사람이 있었다. 오방 최흥종이다. 사람이 사람으로 산다는 것의 숭고함을 삶으로 보여준 그다. 나환우를 위해 나환우와 함께 예수처럼 살았다. 가난한 자와 병든 자를 위하여 한평생을 바쳤다. 그가 무등을 향해서 무등에 든 것을 보면 무등은 생각없이 들 수 있는 곳은 아니라는 뜻이겠다.

그 자리에 널리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 민족혼의 복원을 위해 애썼던 사람 의재 허백련이 들었다. 묵에 향을 담아 그 정신을 승화시킨 남종화, 학교를 세우고 사랑으로 가르치고 사랑으로 길러낸 그가 차의 향기로 남아 있는 곳이 ‘춘설헌’이다.

무등의 삶을 살다 무등을 두고 간 세 사람이 낸 길을 따라 우리도 무등에 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무등(無等), 그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시작이자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 시작점이다. 겹겹의 시간이 쌓이고 쌓여 있는, 아름다운 삶의 언어인 무등이 우리들의 숨결 속에 우리들의 몸속에 녹아들게 말이다. 몸과 마음에 무등이 들어앉아 의를 구하고 가진 것을 나누고 더불어 사는 법을 알게 될 테니 말이다. 한 번이라도 불의 앞에 당당하고 꼿꼿하게 의를 쫓은 적이 있다면, 가난한 이에게 따뜻한 손길 내민 적이 있다면 무등에 들 자격이 있으니 모두 오시라. 삶의 향기와 꼿꼿한 정신이 숨 쉬고 있는 길을 따르다 보면 골목에서 골목으로 길을 놓아 무등에 닿은 숨결도 만날 수 있을테니까.

초록이 가득한 6월의 첫날과 둘쨋날, 석아·오방·의재 세 사람의 정신이 깃든 무등에서 ‘제2회 동구무등산인문축제’가 열린다. 우리의 일상과 멀리 있는 듯했던 세 인물의 삶과 정신을 만날 수 있다. 뜻을 세우고 기개와 의지로 앞서 길을 냈던 선구자들을 만나러 어깨동무하고 무등으로 들어가자. 세상은 달라지고 변하며 진보하고 발전하듯이 우리가 한 생애 전부를 그들처럼 살지는 못하더라도 잠깐이라도 닮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하늘의 별들도 내려와 등불켜고 등을 토닥여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