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지원>축제 패러다임의 전환, 무등산인문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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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김지원>축제 패러다임의 전환, 무등산인문축제
김지원 광주문화재단 전문위원
  • 입력 : 2024. 05.08(수) 18:02
김지원 광주문화재단 전문위원.
유럽에서 현대적인 의미의 축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 참상을 겪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유럽 문화의 부흥을 이끌기 위해 만들어졌다. 경제 재건과 지역정체성, 예술의 대중화 등과 같은 사회문화적 변화 과정에서 축제적인 연희형태가 새롭게 부각되었다. 1946년 칸 필름 페스티벌을 기점으로 1947년 아비뇽 페스티벌, 영국의 에든버러 페스티벌이 그것이다. 전쟁 당사국이었던 독일에서는 나치 정권하에 자행됐던 반인륜적 행위에 대한 반성과 자각으로 1955년, 카셀 도쿠멘타(Documenta)가 시작되었다.

한때 ‘대한민국은 축제공화국이다’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많은 지역축제가 개최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10년마다 전국 축제 실태조사를 시행하는데, 2016년 통계에 의하면 무려 1300개가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지방자치제 시행으로 2000년대 이후 지역축제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이다. 그렇다면 유독 우리나라만 축제가 많을까? 축제의 나라인 프랑스는 체계를 갖춘 축제만 골라봐도 6000여 개가 넘는다고 한다. 이웃 일본은 어느 정도 규모 있는 축제가 2만여 개가 있다고 하니 가히 마쓰리(Matsuri)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축제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지역의 고유성을 반영한 지역축제이다. 단오제, 춘향제, 줄다리기 등 비교적 오래된 축제들이 있는 반면, 대부분의 축제가 많게는 30~40년 정도의 역사를 가진 축제에서부터 10년이 채 안 된 축제들까지 다양하다. 지난 10여 년 간 정부의 지역축제 구조조정 노력에도 불구하고 축제의 수가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두가 공감하다시피 축제는 문화적 효과뿐만 아니라 지역활성화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다. 또한 지역의 고유성을 매개로 지역 경쟁력의 원천이자 지역브랜드와 다양한 부가가치 창출의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지방소멸화 시대에 어찌 보면 수도권과 경쟁할 수 있는 유리한 문화적 기제이자 문화 콘텐츠이다. 그러나 지난 30여 년간 지역의 많은 축제가 지나치게 지역경제 활성화와 지역 이미지 제고와 같은 외형적 성과에만 몰두해 왔다. 당연히 축제의 본질적인 의미와 과정, 가치가 간과되었으며 지역축제의 부작용과 더불어 근래에는 축제 무용론까지 등장했다.

이러한 데에는 일차적으로 축제를 개최하는 지자체와 정부의 책임이 크지만, 축제기획자, 연구자, 시민들도 공동의 시대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우리가 살아온 압축성장의 시대에는 축제의 고유기능과 문화적 맥락에서 중층적 의미를 해독할 여력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축제의 경제적 효과, 관광 효과, 축제 만족도, 시민 참여도 등 축제의 외형을 둘러싼 결과치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도시형 축제가 붐을 이루고 있는 현실에서 광주 동구 ‘무등산인문축제’의 위상은 독특하다. 여느 축제처럼 외형적 축제를 지향하지도 않고, ‘인문도시 동구’의 비전과 가치를 축제로 내재화하고 프로그램으로 담아냈다. 축제 인문학적 관점에서 보면 버거우면서도 기꺼운 짐을 진 셈이다. 올해 자연의 생기가 가장 충전한 6월 첫날, 이 도시를 온전하게 품고 있는 어머니 같은 무등산에서 인문 향연이 펼쳐진다. 지혜산책, 예술산책, 마음산책, 자연산책 인문도시 산책 등 다섯 가지 테마에 무려 26종류의 프로그램이 시민들을 환대할 것이다.

많은 현대인들은 과잉 활동성으로 인해 평온의 결핍증을 앓고 있다. 인문적 삶의 또 다른 생활 세계는 삶에 대한 관조와 경이감, 아름다움의 동경, 주의 깊은 사색, 영원한 존재성에 대한 성찰 등의 경로를 안내한다. 이 길은 한병철이 ‘피로사회’에서 언급했듯이 ‘깊은 심심함’으로부터 기인하지만, 경험과 익숙함으로부터 탈출이 쉽지 않다. 도시적 삶의 주기가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 상황일지라도 쉼을 위한, 지구를 위한, 내일을 위한, 그리고 나를 위한 인문의 숲, 동구인문축제에서 휴지기를 가져보는 것을 추천한다.